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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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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미 작가의 9월26일] 코로나 독거, 동거를 준비하다

9월26일 한강에서 작가 둘이 그린 미래
등록 2020-12-23 16:32 수정 2020-12-24 10:20
황유미 작가가 지금 혼자 살고 있는 집. 이사는 내년에 한다. 황유미 제공

황유미 작가가 지금 혼자 살고 있는 집. 이사는 내년에 한다. 황유미 제공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쥐고 흔든 2020년이 지나간다. 코로나19로 누구는 생명을 잃고 누구는 직장을 잃었다. ‘비대면’이 시대정신이 돼버린 세상을 거리두기, 모임 금지, 폐쇄와 봉쇄 같은 흉흉한 언어가 지배한다. 끝은커녕 진정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 ‘전 지구적 유행’(팬데믹)이 사그라지더라도 우리는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고개 숙이고 눈물만 흘린 2020년은 아니었다. 우리 삶을 더 높고 밝은 곳으로 밀어올리기 위한 싸움 또한 지속됐다. 장애나 성적 지향, 정치 성향,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말자며 ‘차별금지법’을,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자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여성을 무자비한 착취 대상으로 삼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범인들을 사법의 심판대에 올렸다.
고난과 희망이 교차한 2020년, <한겨레21> 독자에게 생생한 정보를 전한 취재원과 필자 19명이 ‘올해의 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보내왔다. _편집자주
9월26일 토요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말에 회의적이었다. 그 정도는 그냥 혼자 들면 편하잖아? 백지장이 아닌 A4용지 두 묶음도 양손에 하나씩 거뜬히 혼자 들어 옮기는 사람을 동경했다. 1인 가구로 혼자 산 지 6년째지만 여전히 매일 아침 만끽하는 자유가 달콤해 행복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기상했다. 그러니까 나는 백지장이 아닌 어지간한 하중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누군가와 짐을 같이 나눠 드는 그림은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작가의 부고를 듣고서

“코로나 때문에”라는 말로 많은 이와 만남을 미뤄야 했다. 언제든 태블릿피시와 블루투스 키보드만 챙기면 아무 데서나 일할 수 있던 날도 과거가 되었다. 기약 없이 ‘다음번에’라는 말과 함께 많은 모임이 취소되는 동안 한 작가의 부고를 접했다. ‘지금처럼 이대로 살고 싶다’는 삶의 모토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게 그때쯤이었다.

일상적인 활동과 사회적 교류에 제약이 생긴 상황에서 혼자 일하는 동료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나는 자주 낯간지러운 메시지를 그리 친하지도 않은 이들에게 불쑥 보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업무용으로나,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는 용도로만 쓰던 평소의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때쯤 나는 사람만 보면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한 마리가 된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강아지만큼 귀엽지 않다는 것 빼고는 강아지랑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사람에게 다가가 꼬리를 흔들며 치대기 일쑤였던 차에, 퇴사한 직후 한창 서점에 자주 드나들던 시절에 알게 된 서귤 작가를 만났다.

사람과 대면하는 모든 상황을 서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먼저 만남을 제안해준 상대를 만나면 꼬리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흔들린다. 외출하는 순간부터 혹시 나의 외로움이 부담스러운 형태로 표출되지 않도록 조심하자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외로움이 쌓인 상태에서 갑자기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쉽게 흥분한다. 언어와 몸짓부터 달라지고, 누군가에겐 위협적이다 싶을 정도로 혼자 앞서가다가 말실수할 수도 있다. 나는 자주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내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복기하며 괴로워했다. 그날도 경박하게 흔들리는 꼬리를 감추고 상대와 보조를 맞추려 애쓰는데, 그녀가 나에게 불쑥 이렇게 물었다.

“제가 내년에 이사하는데, 방이 남아서요. 우리 집에서 같이 살래요?”

그날은 우리가 처음 단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날이었다. 물론 나는 서귤 작가를 실제로 보기 전에도 SNS를 통해 그녀가 꾸준히 연재하던 만화와 독립출판으로 낸 책을 읽으며 응원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알게 된 지 3년째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내가 방탄소년단과 알고 지낸 지 7년째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한마디로 사적으로는 철저히 남인 나에게 대뜸 같이 살자니.

마치 소개팅인 줄 알고 나왔는데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부터 작성하자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깜짝 놀란 나는 아예 집 주소를 알려주려는 성격 급한 그녀를 만류하며 다급히 물었다. 갑자기 왜 동거인을 구하는 건지, 작가님은 혼자 사는 삶을 선호할 줄 알았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아는 그녀 역시 나 못지않게 무리 짓는 일에 염증을 느끼는 성향이라 생각했기에 누군가와 생활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을 선호할 것 같지는 않았다.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서요.”

그 순간 나는 지난 반년간 구하지 못했던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일할 수 있지? 오랫동안 건강하게 일하며 살아가려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해답은 찾지 못했다. 업무 공간과 휴게 공간을 분리할 수 없는 원룸을 벗어나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부동산 앱에 접속해 투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름이 다 지나도록 각종 전세자금 대출과 지원 정책을 뒤져가며 관심 지역 부동산중개소에 전화해 물어보기도 했지만, 예산과 조건에 맞는 매물은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창작 노동자에게 공상 같은 투룸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야 한다는 또래 친구들의 전략은 대출이 원활하지 않은 프리랜서 창작 노동자에겐 허망한 공상과 다름없었고, 역세권에 있다는 청년주택은 지금보다 더 좁은 전용면적에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조건이었다. 부동산 정책이 몇 차례 발표될 때마다 요동치는 전세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당분간 해답은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 혼자 어떻게든 당면한 문제를 풀어보려 다양한 경우의 수를 대입해가며 애썼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애초에 혼자 풀 수 없는 문제를 쥐어 들고 있었으니, 결론이 나지 않을 수밖에.

마스크를 쓰고 한강을 따라 산책하며 나는 지난 반년간 내가 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처음으로 혼자가 아닌 삶도 궁금해졌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털어놓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강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같이 사는 삶을 위해 정리해야 하는 몇 가지 사항을 정했다. 한강을 두 바퀴째 돌 때는 거실을 우리의 작업실로 쓰자는 말이 나왔다. 한강 한 바퀴를 도는 사이에 주어가 ‘우리’로 바뀌었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책상에 앉아 제 할 일을 하는 그림을 그려보았다.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 심심하면 귤을 나눠 먹는 그림도 그려보니, 여전히 어색하지 않았다. 어색하지 않은 사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충분한 것 같았다.

같이 일하고 같이 귤 먹고

구두계약을 마치고 미래의 동거인과 말없이 한강을 조금 더 걸었다. 흐르지 않고 잔잔하게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강물이 보였다. 처음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립한 이후 이따금 혼자 강물을 보러 한강에 갔다. 시끄러운 세상사는 내 알 바가 아니라는 듯 고요한 강물을 보면서 주위 소음을 차단한 채 침묵하는 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내 오랜 의식 중 하나였다. 여전히 잔잔한 강물은 침묵을 통해 괜찮은 상태임을 증명하려는 것 같았고, 내 옆에 선 미래의 동거인은 침묵을 깨뜨리고 말했다. 앞으로 건강하게 잘 살아보자고.

황유미 작가

*황유미 작가는 <한겨레21>이 사랑하는 작가입니다. <한겨레21> 제1326호는 ‘<한겨레21>이 사랑한 작가 21명’이라는 주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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