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화 기자
“난민 인정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인도적 측면을 고려하여 ‘인도적 체류자’로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절망과 희망을 나누는 경계는 상대적이다. 난민불인정통지서도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절망이었을 난민불인정통지서가 예멘인 살라(39·사진)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살라는 4월26일 법무부가 보낸 통지서를 받아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통지서가 지난 2년간 잃어버렸던 내 삶을 되돌려줬다. 그동안 꽉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희망이 된 난민불인정통지서은 제1234호 ‘출국유예, 난민 불인정자 일도 치료도 뭣도 못한다’ 기사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외국인등록증도 없이 어렵게 사는 예멘 난민들의 삶을 조명했다. 이들은 출국명령을 받았지만 예멘 내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한국을 떠날 결심을 차마 하지 못했다. 살라는 2016년 11월 외국인등록증을 반납하고 2~3개월에 한 번 출국 기간을 유예받으며 버텨왔다. ‘취업 불가’라고 선명하게 찍힌 푸른 도장은 낙인이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었던 그는 자기 ‘삶’을 살지 못했다. 그저 ‘생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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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명령을 받는 예멘인은 늘어가는데 출국유예자 규모조차 파악하지 않던 법무부는 보도 이후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국유예 예멘인 중 일부를 불러 다시 난민 면접을 볼 기회를 주고, 인도적 체류자로 신분을 바꿔주었다. 살라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가 보도 이후 다시 면접을 보고 인도적 체류자로 전환된 예멘인이 최소 1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빨리 집에 가, 예멘으로 돌아가.” 살라에게 늘 가라고만 했던 출입국청이 지난 3월 말에는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이미 난민 신청 기회를 모두 써버린 그는 어리둥절했지만 면접에서 그동안 겪은 일을 차분하게 모두 말했다. 그 결과, 인도적 체류자로 신분이 바뀌었고 5월20일 다시 외국인등록증을 받는다. 꼭 2년6개월 만이다.
예멘인 인도적 체류 전환 최소 10명살라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외국인등록증이 없었던 때를 떠올렸다. 일할 수 없었던 그의 집에는 물밖에 먹을 것이 없었다. 주변에 일할 수 있는 외국인들에게 끼니를 의지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가을 넘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지는 등 크게 다쳤다. 다행히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와 서울 녹색병원이 무료로 수술과 치료에 나서줬다. 지금은 완전히 치유됐다. “관심을 갖고 보도해주고 지지를 보내줘 고맙다”며 에 감사의 뜻을 전한 살라는 외국인등록증을 받는 대로 집 근처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할 계획이다.
난민을 돕는 시민사회단체들은 법무부가 출국유예 예멘인들을 불러 난민 면접 기회를 주고 인도적 체류로 전환해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예멘인들을 외국인등록증도 없이 출국유예로 한국에 머물게 하는 것은 난민협약에 반할 여지가 크다. 아직 출국유예 상태로 머무는 예멘인들을 심사하고 인도적 체류가 가능하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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