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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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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콩고 공정선거 한국 난민이 바란다

한국에서 민주콩고 민주화 불씨 지피는 난민 헨리
등록 2019-01-05 04:47 수정 2020-05-02 19:29
2018년 12월30일 콩고민주공화국 난민들의 모임인 ‘프리덤 파이터’(자유투사)가 서울 동작구에 있는 난민들의 피란처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2018년 12월30일 콩고민주공화국 난민들의 모임인 ‘프리덤 파이터’(자유투사)가 서울 동작구에 있는 난민들의 피란처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투표가 아니라 혼돈, 자체였다.”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 온 난민 놈비 헨리(45)는 2018년 12월30일(현지시각) 고국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깊은 실망감을 나타냈다.

민주콩고를 18년 동안 통치한 조제프 카빌라(48) 대통령이 차일피일 미뤄온 선거가 마침내 이뤄졌지만 헨리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선거가 각종 의혹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카빌라 정부는 대선 다음날인 31일 오후부터 전국의 통신망을 임의로 끊었다. 정부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에 관한) 거짓 결과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유포돼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인터넷과 문자메시지(SMS) 서비스를 차단했다”고 밝혔다. 민주콩고 국민의 페이스북 등을 보면 야권의 대선 주자인 펠릭스 치세케디(56) 민주사회진보연합 대표가 중간개표 결과 앞서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고 있다.

민주콩고의 이번 대선에서는 야권의 두 주자, 치세케디 대표와 마르탱 파율루(61)와 범여권연합의 대표인 에마뉘엘 라마자니 샤다리(59) 전 내무장관이 삼각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시민사회는 야권 주자가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외신들은 카빌라 대통령의 측근인 샤다리 전 장관이 이기면 2023년 차기 대선에 카빌라 대통령이 다시 나설 수도 있다고 점쳐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바람은 더욱 뜨거운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이기면 민주콩고가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1960년 이후 첫 평화적 정권 교체로 기록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통신망 차단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 설득에 나설 수 없는 정부의 궁색한 결정이었다. 국민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정부는 막무가내였다. 잠정적인 선거 결과가 나오는 1월6일까지 통신망 차단 조처를 거두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민주콩고 ‘프리덤 파이터’들
‘프리덤 파이터’의 대표 놈비 헨리.

‘프리덤 파이터’의 대표 놈비 헨리.

헨리가 언급한 단어 ‘혼돈’은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드니 무퀘게(64)가 미국의 일간 에 기고한 글에서 따온 것이었다. 무퀘게는 12월23일 예정됐던 대선이 일주일 연기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고글에서 “민주콩고가 ‘혼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고 상황을 묘사했다.

당시 선거일이 연기됐던 이유는 선거에 사용될 전자투표 기계가 대거 불에 타 망가졌기 때문이다. 대선을 열흘 앞둔 12월13일 수도 킨샤사의 한 창고에서 불이 나 8천 대의 전자투표 단말기가 불에 탔다. 대선 후보들은 서로 책임을 돌리며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잡아떼기 바빴다. 결국 이번 선거는 전자투표와 선거용지를 활용한 기존 투표 방법, 두 가지 모두를 활용해 치러졌다. 이때 불탄 전자투표 단말기가 한국에서 건너간 것이었다(제1228 호 정치 ‘엇나간 선거 한류’ 참조).

“민주콩고는 문맹률(23%)이 높고, 모바일 기계를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 제발 투표 기계를 보내는 것을 중단해달라.” ‘프리덤 파이터’(자유투사)는 2018년 8월9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대년 사무총장을 방문해 이러한 내용을 전달했다.

2차 콩고 내전 여파에 한국으로

자유투사는 지난해 4월, 헨리를 포함해 한국에 사는 민주콩고인 30여 명이 결성한 모임이다. 이들은 반군과 내전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한국으로 온 난민들이다. ‘민주콩고의 정의와 변화, 진보를 위해서 싸운다’를 구호로 민주콩고 정부의 불법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들의 고발은 중앙선관위의 조사로 이어졌고, 김용희 전 사무총장이 전자투표 기계 업체 선정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김대년 사무총장의 사퇴로 이어졌다. 공정선거의 최후 보루인 중앙선관위가 민주콩고의 부정선거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압박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유투사의 대표를 맡은 헨리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전자투표 기계 회사는 다른 나라보다 2~3배 높은 가격으로 민주콩고에 팔았는데, 그 돈이 누구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는지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한 추가 조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헨리는 1974년 민주콩고의 남쪽 도시 루붐바시에서 태어났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서 수도인 킨샤사로 가 199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ISC대학에 진학했지만 이듬해인 1998년에 2차 콩고내전이 터져 학업을 중단했다. 아프리카 역사상 최악의 내전으로 꼽히는 2차 콩고내전은 잠정적인 인명 피해가 50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될 만큼 참혹한 전쟁이었다. 2차 콩고내전은 공식적으로는 2003년 끝났지만 그 뒤로도 크고 작은 소요가 끊이지 않았다. 부모님을 따라 동쪽 지방인 고마로 향했지만 그곳 상황은 더 처참했다. 르완다 접경에 있는 고마에는 반군이 끊임없이 출몰했다.

2006년 헨리는 고마 지역을 장악하고 정부군과 싸우던 콩고인민방위군(CNDP)에게 납치됐다. 콩고인민방위군은 르완다 투치족에 우호적인 군대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키부 지역을 놓고 민주콩고 정부군과 다퉜다. 민주콩고는 전기자동차와 각종 전자제품의 배터리 원료인 코발트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나라로 꼽힌다. 헨리는 “수시로 콩고인민방위군과 같은 반군들이 고마로 몰려와 닥치는 대로 죽이고, 식량을 훔쳐갔다. 말을 듣지 않으면 팔다리를 잘랐고, 젊은 사람들은 납치했다”고 했다. 반군은 납치한 젊은이들을 성폭행하고, 전쟁터로 끌고 갔다. 무퀘게는 르완다 접경인 부카부 지역에서 이처럼 반군에게 납치당해 성폭행당한 피해자들을 20년 동안 보살핀 공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헨리는 콩고인민방위군에 납치당한 뒤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했고, 르완다와 우간다, 케냐를 거쳐 2007년 한국으로 왔다.

헨리가 고국을 떠난 지 12년이 흘렀지만 민주콩고는 여전히 불안하다. 자유투사들이 생계를 위해 일하기 바쁜 중에도 2주에 한 번씩 모여 회의를 열고 민주콩고의 현안을 토론하는 이유다. 이들은 “한국 정부나 기업이 민주콩고 정부와 계약해 사업을 하거나, 어떤 지원을 해도 그 혜택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고 고스란히 정부 관계자의 사익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흘러도 주민들의 삶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기업이 지원해도 주민 삶 개선 안 돼”

“드니 무퀘게는 민주콩고가 대통령으로 원하는 사람이다.” 자유투사들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퀘게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헨리는 “아픈 사람들의 치료를 오랫동안 도운 그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고 진심으로 민주콩고를 위할 수 있는 인물이다. 많은 국민은 그가 정치에 나서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자유투사들은 한국 기업의 불법적인 민주콩고의 자원 취득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우리 민주콩고 난민들은 고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과 고향을 떠나온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콩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겠다.”  

글·사진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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