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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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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신교 박해하는 중국 난민인정 거부하는 한국

‘사교’로 규정해 신앙 전파만 해도 징역형…

한국 난민 신청한 신자 1천 명 중 한 명도 인정 못 받아
등록 2019-08-02 01:37 수정 2020-05-02 19:29
한국으로 망명한 전능신교 신자 샤오루이(38·가명)가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한국으로 망명한 전능신교 신자 샤오루이(38·가명)가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문명집법’(文明執法ㆍ법 집행을 문명적으로 하자).

2009년 4월4일 청명절 밤 9시께, 중국 후난성 주저우현 외곽의 한 낡은 건물 2층 취조실. 당시 20대 여성 샤오루이(38·가명) 눈에 벽 한가운데 덩그러니 걸려 있는 포스터 문구가 들어왔다. 네 남자 경찰에 둘러싸여 좁은 취조실로 들어온 샤오루이는 음습한 기운에 온몸이 오싹했다. 방 가운데 낡은 테이블과 철제 의자가 있다. 팔다리를 묶을 수 있게 장치가 된 의자였다. 곧 자신이 그 의자에 결박될 것임을 직감했다. 방 한쪽 벽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 아주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철망이 쳐져 있었다.

샤오루이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도였지만 중국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1949년 집권한 마르크스주의자 마오쩌둥 주석은 무신론자였다. 그는 강력하게 종교 탄압을 하진 않았지만 중국공산당에 호의적인 종교협회(개신교삼자교회, 중국불교협회, 중국이슬람협회, 중국도교협회, 중국천주교애국회) 다섯 개만 인정했다. 마오는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종교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마오의 기대와 달리 공식적인 삼자교회의 포섭을 거부한 ‘지하 교회’는 정부의 감시를 피해 인민들 사이에 더 깊이 뿌리내렸다.

문화대혁명 시기(1966~76년)에 마오와 홍위병은 불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를 탄압하고 신자들을 박해했다. 학계에선 수십만 명의 신자가 이 시기에 박해당하고 살해됐다고 보고한다. 마오 사망 후 권력을 잡고 개혁ㆍ개방을 주창했던 덩샤오핑은 제한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989년 천안문 시위와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 등을 목격하면서 종교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입장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마오로 돌아갔다. 중국공산당은 신종교인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이하 전능신교)와 심신수련법인 파룬궁을 ‘사교’(이단)로 규정하고 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신자 약 100만 명 추정

샤오루이는 1999년부터 전능신교 신자가 됐다. 1991년 중국에서 생긴 전능신교는 마태복음 제24장 27절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라는 내용에 따라 예수가 동방국인 중국에서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주장해 ‘동방번개’라고도 한다. 중국공산당은 중국 전역에 400만 명의 전능신교 신자가 있다고 파악하지만, 학계에선 이런 수치가 과장됐다며 실제로는 100만 명 정도 있다고 본다. 고향인 허베이성에서 부모와 함께 전능신교를 믿었던 샤오루이는 중국 곳곳을 돌며 교회 일을 했다.

사실상 종교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사교로 규정된 전능신교 신자는 공개된 곳에서 예배할 수 없었다. 몰래 모여 조심스럽게 기도해야 했다. 중국 형법 제300조는 ‘미신 집단, 사교 조직을 이용해 국가 법률을 위반하면 3년 이상 7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밝힌다. 중국 정부는 형법 제300조에 따라 범죄를 저지른 사교 신자만 처벌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신앙을 전파하거나, 사교의 서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처벌받았다.

중국 정부의 전능신교 탄압은 베이징올림픽이 있었던 2008년 더욱 노골화했다. 샤오루이는 “국가적으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중국 공안은 사교 ‘싹쓸이’ 작전을 폈다. 2008년엔 광둥성과 쓰촨성의 리더(교회 간부)가 모두 잡혀갔다”고 했다. 삼엄한 분위기에서 청명절을 맞아 다른 신자들과 함께 예배하고 길을 나섰던 샤오루이도 체포됐다.

2016년 한국행 택한 샤오루이

샤오루이는 취조실 벽의 글귀 ‘문명집법’을 보며 생각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법이란 무엇인가.’

곧, 고문이 시작됐다. 경찰들은 닥치는 대로 때렸다. 수갑을 채워 허공에 매단 채, 머리·몸·다리 가리지 않고 밤새 폭행했다. 당시 손등에 생긴 수갑의 흉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경찰은 교회 헌금이 어디로 갔는지, 교회의 다른 신자 정보를 물었다. 샤오루이는 입을 열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고문관 수도 늘었다. 한 남자가 말했다. “당에서 지령이 떨어졌는데 전능신교 신자는 죽여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다. 게다가 너는 다른 지역 사람이니 우리가 죽여도 아무도 모를 거다.”

샤오루이는 덜컥 겁이 났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고통을 잊으려고 애썼다. 6일 동안 고문당하면서 음식을 먹지 못한 그는 온몸이 부어올랐다. 그렇게 구치소와 취조실을 오갔던 샤오루이에게 한 달 뒤 검사가 찾아왔다. “경찰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지만 검사는 ‘고문이 없었다’고 기록했다.

재판에서 죄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샤오루이는 “중국 헌법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돼 있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한 것뿐이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했지만 판사는 “전능신교를 믿는 자체가 범법 행위다”라고 판결했다.

샤오루이는 형법 제300조 위반으로 3년6개월의 징역형을 살았다. 2012년 10월, 형 만기를 채우고 출소했지만 공안의 샤오루이 탄압은 끝나지 않았다. 2013년 1월부터 중국 정부는 이미 형기를 마친 신자도 석방 뒤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계속 탄압했다. 샤오루이가 고향을 떠나 중국 곳곳을 떠돌았던 이유다.

2014년 5월엔 산둥성의 한 맥도널드 점포에서 6명의 전능신교 신자가 무고한 여성 한 명을 마구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뉴스 보도가 나오면서 중국 정부의 전능신교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이 사건을 연구했던 이탈리아의 종교사회학자이자 중국 내 종교 탄압 실태를 고발하는 온라인 매체 의 편집장 마시모 인트로빈은 “해당 사건의 가해자들은 전능신교와 관련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 있는 전능신교 신자들이 7월22일 오전 서울 중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중국 사이비 전능신교 피해자 가족’의 가족 찾기 집회·시위가 중국 공산당에 기획된 것이라며 맞불 집회를 열고 있다. 이재호 기자

한국에 있는 전능신교 신자들이 7월22일 오전 서울 중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중국 사이비 전능신교 피해자 가족’의 가족 찾기 집회·시위가 중국 공산당에 기획된 것이라며 맞불 집회를 열고 있다. 이재호 기자

중국이 ‘종교 박해 국가’로 보일까봐

중국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샤오루이는 한국에서 난민의 사회권을 보장하고 처우 개선을 명시한 ‘난민법’이 시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2016년 한국행을 택했다. 난민 신청을 했지만 샤오루이는 법적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재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게 됐다. 길에 다니면서 이어폰으로 설교를 들을 때, 공원에서 성경을 읽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중국 정부는 중국에 종교 박해가 없다며 우리를 돌려보내라고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우리는 중국에 돌아가면 바로 체포된다.”

중국 정부의 종교 박해가 계속되면서 샤오루이처럼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하는 중국인도 늘고 있다. 2010년 7명이던 중국 난민 신청자는 2017년 1413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1994년부터 2018년 말까지 총 4839명이 난민 신청을 했는데 이 중 1천여 명이 전능신교 교인이다. 이외에 파룬궁 수련자,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이슬람 신자도 포함돼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 난민 신청자 중 20명을 난민으로 인정했고, 36명에게 인도적 체류 지위를 주었다. 하지만 전능신교 교인 1천 명 중에선 단 한 명도 난민 인정이나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지 못했다. 캐나다(인정률 74%)와 뉴질랜드(78%) 등지에서 전능신교 신자를 난민으로 인정한 것과는 상반되는 결과다.

샤오루이의 난민 신청을 돕고 있는 난민인권네트워크의 이일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중국에서 종교 박해가 일어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선뜻 법적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4대 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이슬람) 외에 이단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중국과 외교적 관계 등을 고려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종교 박해 국가로 인식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섣불리 종교적 이유로 난민 지위를 신청한 중국인을 법적 난민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으로 난민 인정자 나올까

이런 한국과 달리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갈등하는 미국은 중국의 종교 박해 사실을 폭로하며 대외적으로 강하게 비판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7월18일 ‘종교의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회의’에서 “중국은 우리 시대 최악의 인권 위기 지역으로 세기의 오점”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루 전날인 17일 중국, 북한 등 17개국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온 난민 27명을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이들 난민 중에는 파룬궁 수련자와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중국 난민이 포함됐다. 미국의 연방정부위원회 중 하나인 국제종교 자유위원회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2018년까지 중국공산당이 수십만 명의 전능신교 교인을 감시하고 구속하는 등 박해를 가했다”고 보고했다.

이일 변호사는 “한국 정부도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면 박해당할 것을 알기 때문에 강제송환까지는 하지 않는다. 박해 위험이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서도 법원이나 행정부의 결정으로 전능신교 난민 인정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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