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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들

등록 2019-04-12 11:24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견디기만 하다 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다. 사람은 예민하지 못해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자각하는 순간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차라리 눈감아버리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은 자꾸만 우리더러 방심하지 말고 자신을 ‘알아차리라’고 하지만, 알면서도 일부러 안 하는 것도 있다.

겉으로는 멀쩡

분노는 뜨겁다. 화염에 휩싸인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도 더는 참기 힘들어 그러하겠지만 듣는 사람도 화상을 입는다.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자 사이에서 조사와 중재를 맡아야 하는 나의 지인들은 잊어버리려고, 분노를 조절하려고, 우울을 다스리려고, 느닷없이 땅이 들리는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시시때때로 약을 먹는다. 그렇게 몸에 약을 달고 사는 ‘약쟁이’가 늘어만 간다.

문제는 그들이 겉은 멀쩡해 보인다는 건데, 당연하다. 그들은 아프단 내색 없이, 심지어 불이익을 당할까 숨겨가며 일과 생활을 이어간다. 간혹 병가를 쓰기도 하지만 밀린 일 걱정이 태산을 이루면 아픈 몸은 그 산에 눌린다. 나는 두렵다. 어느 밤 혹은 이른 새벽, 다급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는 건 아닐까. 실제로 지난 몇 해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을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보아야 했다. 침대에 기대 희미하게 웃어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미 병원 지하실로 옮겨진 이도 있었다.

사인(死因)에는 오래 앓아온 암도 있었지만, 스트레스와 과로로 짐작된다던 뇌출혈도 있었다. 십 년도 더 전에는 사는 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도 있었다. 북적이던 다른 장례식장과 달리 그의 마지막은 한산했다. 가족이 알리지 않아서였는데 한 사람의 끝을 부끄럽다, 아니다로 종지부 찍는 일은 ‘아직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었다. 손끝까지 소매를 끌어내려 손목을 가리던 친구의 불안한 몸짓을, 아둔했던 우리는 전조로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누구를 탓할까. 어쩌다 그가 화제에 오르면 안타까운 말들이 오갔지만 그게 전부였다.

혼란스럽다. 예민하면 약을 먹어가며 버텨야 하고, 무감하면 손쓸 수 없는 단계에 이른 몸을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라니. 뫼비우스 띠 같은 현실에서 자신을 돌보고, 옆 사람을 살피고, 사회가 건강하기를 기원할 수 있을까. 내 선에서 가능한 일은 공황장애를 앓는 동료에게 가끔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차도를 묻는 정도인데, 안부를 묻는 일마저도 그의 병 이력을 내가 기억한다는 걸 그가 고맙게 느낄지 부담스러워할지 알 수 없어 주저한다. 표현되지 않는 마음은 소용없다는 속설에 기대지만 사실은 내 마음 편하려고 건넨 감정이 잦았다.

뫼비우스 띠 같은 현실

생각을 끊으려고 집어든 시집에는 하필 이런 시. 시야가 흐려진다.

“너도 그만 일어나서 한술 떠/ 밥을 먹어야 약도 먹지/ 병도 오래면 정들어서 안 떠난다/ 일어나, 일어나요”(박준의 ‘목소리’ 중에서)

*이번호부터 ‘노 땡큐!’를 집필하는 김민아씨는 제4회 손바닥문학상 대상(‘총각슈퍼 올림’)을 받았고, 과 소설 를 썼다.
김민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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