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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내모는 관광은 이제 그만

유엔관광기구 총회, 참석자 입 모아 “노, 오버투어리즘”
등록 2018-09-22 18:12 수정 2020-05-03 04:29
이탈리아 베네치아 시의회의 조반니 마르티니 의장(사진 가운데)이 9월1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유엔관광기구의 제7차 세계도시관광총회에서 베네치아가 겪는 오버투어리즘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관광재단 제공

이탈리아 베네치아 시의회의 조반니 마르티니 의장(사진 가운데)이 9월1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유엔관광기구의 제7차 세계도시관광총회에서 베네치아가 겪는 오버투어리즘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서울관광재단 제공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한국의 제주처럼 매우 심각한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고통을 겪고 있다. 숫자로 말하겠다. 15년 전 15만 명이었던 주민이 지금 5만3천 명으로 급감했다. 베네치아는 작은 섬인데, 한 해 27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니 감당할 수가 없다. 관광객을 적으로 생각하는 주민도 늘어나고 있다.”

9월17일과 18일 이틀 동안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유엔관광기구(UNWTO)의 제7차 세계도시관광총회에서 조반니 마르티니 베네치아 시의회 의장은 조용하면서 단호한 어조로 베네치아가 겪고 있는 오버투어리즘의 폐해를 설명했다.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오버투어리즘은 이번 도시관광총회의 모든 세션에서 빠지지 않고 가장 많이 거론된 열쇳말이었다.

관광객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베네치아

은 지난 7월 발행한 제1220호에서 국내 언론 처음으로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심층 기획기사로 보도했으며, 그 뒤 등에서 관련 기획기사들이 이어졌다. 이는 더 많은 관광객이 절대선이란 우리 사회의 오랜 고정관념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실제 오버투어리즘은 베네치아,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다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도, 전남 여수, 서울 종로구 북촌 등 우리나라 여러 도시에서도 심한 주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마르티니 의장은 “베네치아에 하루 들어오는 관광객이 주민 전체 수보다 훨씬 많은 7만여 명인데, 시에서는 1만5천 명을 지속가능한 최대치로 보고 그 이내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 유입을 제한할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어서, 인터넷 예약한 사람만 도시로 들어오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Experience Economy)의 저자 조지프 파인은 오버투어리즘을 극복할 명료한 해법을 제시했다. “단순하다. 입장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여행이란 가치 있는 체험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다. 입장료는 그 시간의 가치에 대한 비용이고, 입장료 수입은 관광지를 더 가치 있게 보존하는 재원으로 쓰인다.”

파인은 관광지 입장료의 성공 사례도 소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페블 비치엔 17마일의 아름다운 도로가 있다. 그 길을 드라이브하려는 운전자는 10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하고, 그 재원으로 비치 도로의 아름다움을 가꾼다. 중국 저장성 우전시는 150위안(약 2만5천원)의 도시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료는 우전시가 체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신호이다.”

그는 “체험 경제의 정수인 여행에서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관광의 진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여행자들은 진짜를 원한다. 진정성은 스스로 부르짖는 순간 의심받는다. 여러 관광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짝퉁을 홍보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인생을 바꾸는 여행, 또 다른 나로 돌아오는 경험을 원한다”면서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해주는 맞춤형 시간 설계야말로 최고의 경제가치를 낳는다”고 말했다.

둘쨋날 오전의 ‘도시재생과 도시관광’ 세션에서 유네스코의 페터 데브라인 선임연구원은 “지역주민도 사람이고 관광객도 사람”이라면서 “서로 구분해서 나누려고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지역주민과 관광객, 그리고 지역문화 간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공유하느냐가 중요하다. 오버투어리즘은 단순히 관광객 수의 문제가 아니라 관광객 행동과도 관련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주거지 근처 에어비앤비에서 밤새 술 마시고 파티하면 주민들이 좋아하겠나. 앙코르와트는 종교적 성지인데 거기에서 옷 벗고 활보한다. 관광객들이 책임 의식을 공유해야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시 관광청의 미겔 산 관광국장은 “종전까지는 관광의 영향을 긍정적으로만 보았는데, 많은 유럽 도시에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치우친 나머지 지역주민을 간과했던 탓이 크다”고 말했다.

주민과 손님 모두를 위한 관광
이매진피스의 임영신 대표가 총회 폐회 뒤의 기획 세션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서울관광재단 제공

이매진피스의 임영신 대표가 총회 폐회 뒤의 기획 세션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서울관광재단 제공

같은 날 오후 ‘모두를 위한 도시, 공정한 여행’ 세션에서는 오버투어리즘 홍역을 치르는 세계 여러 도시의 관광정책 관련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관광청의 니코 뮐더르 마케팅전략 매니저는 “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암스테르담 주민이 80만 명인데 에어비앤비 운영자들이 2만 개의 아파트를 임대해 영업하고 있다. 한 기업이 2만 개의 아파트를 갖고 있는 셈이다. 문제가 있다. 오버투어리즘이 정확한 용어는 아니지만, 관광객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암스테르담의 관광정책은 관광객 수를 늘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관광객이 줄더라도 더 오래 머물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암스테르담 주변 33개 도시로 관광객을 잘 분산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엔버 두미니는 주민 참여와 관광객의 분산을 오버투어리즘의 극복 대안으로 제시했다. “오버투어리즘은 인기 높은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다. 관광 자체는 주민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요소를 갖고 있다. 주민과 업체를 포함한 관광산업 주체들이 오버투어리즘을 관리하도록 이끄는 게 중요하다. 지역사회의 관여가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덜 붐비는 곳으로 관광객이 분산되도록 스마트폰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세르지 마리 관광 매니저는 “바르셀로나는 이해관계자들이 두루 참여하는 프로세스를 앞장서 마련했다”고 했다. “도시 브랜드 마케팅 전략을 구상할 때 처음부터 시민들이 참여한다. 관광객의 욕구에 정책을 맞추는 게 아니라 시 당국과 시민이 먼저 합의한다. 그래야 관광의 진정성을 높일 수 있다.” 그는 “관광객이 유리창으로 내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라며 “우리는 관광의 경제적 효과만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광시민’이 되자

유엔관광기구의 샌드라 카르바오 관광경쟁력 최고책임자는 마무리 발언에서 “관광의 성공에 스스로 도취해 있는 동안, 오버투어리즘이란 예기치 못한 반작용이 일어났다. 이제 오버투어리즘을 넘어 각 도시가 어떤 진정성 있는 관광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광시민’이란 개념을 환기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누가 관광객이고 누가 주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 그게 가장 바람직한 관광지의 모습일 것이다. 관광시민이 주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역의 문화유산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질 때, 관광지에서의 혜택도 가장 크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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