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가 지난해 TV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제목만 보자면 19세기를 무대로 할 것 같지만 천만에, 우리가 보게 될 것은 21세기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1987년에 쓴 이 이야기는 도래할 21세기를 품고서 마침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도착한 것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에서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삼아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자국민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를 창조했다. ‘시녀’는 남성에게 복종하고 자유를 구속당하는 여성과 같은 말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할 권리는 여성에게 없다. 길리어드는 여성을 오로지 임신과 출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며 통제하기에 이른다. 이 무시무시한 디스토피아에서 ‘여성’은 없고 오로지 ‘시녀’만 있을 뿐이다.
시녀만 있는 디스토피아마거릿 애트우드의 문장으로 구축된 이 엄중한 세계가 환상에 가깝다면, 영화를 통해 물성을 입고 펼쳐지는 이미지는 디스토피아를 지금-여기로 가져오기에 그 충격이 남다르다. 여성들이 자기 이름으로 된 예금통장과 신용카드, 출근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세계. 사랑하는 이와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세계. 다만 상류 계급에 복종하고,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세계.
거리를 가득 채운 건물과 거리는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익숙하지만, 발목까지 덮는 핏빛 드레스를 입고 얼굴을 가린 여성들이 줄지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이 기묘한 광경에 단숨에 빠져드는 것도 우리가 이룩해온 현재를 간단히 전복하는 폭력이 당장 겪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섹스를 하고, 각자 고독한 시간을 누리고, 다가올 무언가에 기대를 품는다. 우리는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면 어떨까. 이 모든 것이 금지된 시대가 한 차례 지나갔고, 언젠가 다시 다가올 수도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니라 임박해 있다면, 누군가에게는 지금 당장 이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다면, 어떨까.
우리가 누리는 이 사소한 일상을 당장 멈추게 하려면 아주 사소한 것부터 뒤흔드는 통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소한 통제에 지지 않으려고 자신을 예민하고 명민하게 단련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우리의 자유를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서. 폭력이 우리의 삶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질투에 사로잡힌 폭력아마도 폭력에 얼굴이 있다면 사랑이나 자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게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곧장 질투에 사로잡힐 것이다. 폭력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것을 제거하려 든다. 오직 사랑만이 거세된 세계에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법은 있다.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럴 수 있다면 말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에 이렇게 썼다. “섹스를 못해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사랑의 결핍으로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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