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일 노시인이 눈시울 적시는 모습이 얼마 전 일본 유수의 신문에 나왔다. 군사분계선 위 남북 정상의 만남을 세계 언론이 도배할 때, 노시인의 마음을 묻는 인터뷰였다. 시인은 많고 많은 장면 중 눈물 장면을 내보냈다며 민망해했지만, 원적을 북한 원산으로 둔 시인에게 그날의 떨림은 말할 수 없었으리. 1949년 광기의 제주4·3 한복판에서 목숨 걸고 검은 바다를 건넜다. 홀로 스며든 일본 땅에서 숱한 생사의 기로를 넘어 넘어 이미 오래전 그는 재일의 대표적 시인이 됐다.
한반도가 뉴스의 중심에 설 때 우선 주목받는 재일동포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 김시종 시인. 최근 일본 전통의 출판사 후지와라서점이 12권 출간을 기념하며 ‘지금 왜 김시종인가’를 주제로 도쿄와 오사카에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재일 노시인의 눈물예전보다 몸이 수월치 않다면서도 노시인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를 설득할 수 있는 지구상 수뇌지요. 우리가 국가적 통일이 되는 데는 국제적 관계 속의 외적 요인과 우리 안의 내적 요인이 성숙하기 위한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래도 동족끼리의 융합은 의지력이 발휘되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생각한다. 남북 수뇌회담은 동족끼리 내적 요인을 푸는 큰 고리가 됐다고.
동·서독 장벽이 무너질 때처럼, 시인의 생각도 그랬다. 우리도 서로서로 융화하고 왕래하면 그것이 실질적인 통일 아니겠는가. 만나면 안 된다는 사람끼리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남과 북을 경계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재일, 그들이 있다. 재일동포는 분단이 남긴 디아스포라 바다의 또 다른 초상이다. 재일동포들, 종종 가족끼리 정치적 견해는 달라도 관혼상제를 같이 지낸다. 그렇게 한고비 한고비 살아왔다. 그럼에도, 우리의 재일동포를 향한 시선은 아직도 무겁다. 이념의 벽을 안고 보는 시선들부터 풀려야 한다.
재일을 사는 사람들. 김시종 시인의 말씀. “암석 위에 하얀 모근이 엉켜 사는 것이 재일동포의 심정이다. 남북이 갈라져 있으니, 언젠가 같이 살 수밖에 없다.” 남북 상황에 민감한 재일 사회. 그들은 지난 4월 말, 도쿄와 오사카에서 열린 4·3위령제에서도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과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함께 참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인은 재일동포들에게 스스로 만든 말인 ‘선험성’, 앞서 실험하는 존재란 뜻의 이 말을 쓴다. 동족 화합의 선험성을 가진 재일동포는 이미 그런 훈련을 해오고 있다. “이제 꿈같은 일이 오고 있지요.” 노시인의 목이 멘다.
그는 지난 4월 란 일본어 시집을 냈다. 7년 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을 주제로 한 작품집. 일본열도의 등판을 연상하는 등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을 의미한다. 여기엔 지금 일본이 과연 어느 쪽을 향하면 되겠느냐는 깊은 뜻이 담겼다. 어쩌면 한반도의 정세를 반영하는 제목 같다.
등바닥의 지도뜨거운 민주의 6월이 다시 왔다. 6월은 선택의 계절이다. 세계의 눈은 파도보다 더 변화무쌍한 한반도 상황에 몰려 있다. 북-미 회담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1년이 시험대에 오르는 6·13 지방선거도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숱하게 실타래가 꼬이고 극적으로 풀렸다.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물론 평화가 어디 벼락처럼 오겠는가. 희망과 좌절, 갈등의 시간이 쌓이고 쌓이며 오고 있을 터이다. 그 길까지 가는 동안 거쳐야 할 여러 단계들, 복병은 여기저기 숨어 있을지 모른다.
오래 그날을 꿈꾸고, 오랜 대화 훈련을 해온 자에게 모든 난제는 다시 한번 넘어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단단한 평화란 아마 누룩의 시간 같은 것 아니겠는가. 오래오래 안으로 부글부글 끓으며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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