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은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전세계 편집장이 모인 회의에서 당시 허프포스트 편집장을 맡고 있던 아리아나 허핑턴에게 물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모든 편집장이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농담이었다. 북한이 코미디 영화 에 분노해 소니픽처스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미국을 불사르겠다며 악담을 퍼붓던 시절이었다. 서구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김정은은 미국 애니메이션 가 그리는 지옥의 사담 후세인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었다.
허프포스트 에디터들은 업무용 메신저 프로그램 ‘슬랙’으로 매일매일 대화를 한다. 어느 날 나는 인터내셔널 편집장 방에 툭 하고 한마디를 남겼다. “지금 한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도가 어마어마하게 치솟고 있어.” 그냥 좀 웃기려고 한 소리였다. 반응이 엄청났다. 트럼프의 한국 내 인기도에 대한 정확한 기사를 번역해서 싣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왜냐면 트럼프의 인기를 설문조사할 만한 돈이 우리에겐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지난해 11월 설문조사 결과는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트럼프에 대한 호감도는 2017년 5월 9%에서 11월에는 25%로 상승했다. 지금 동일한 설문조사를 한다면 호감도는 더 높을 것이다. 참고로 올해 3월16일 갤럽 조사에 따르면 김정은 호감도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65%를 기록했다. 기록적인 호감도다.
사람들은 트럼프를 ‘트황상’이라고 부른다. 김정은이 평양냉면을 앞에 두고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고 하는 순간, 적어도 수백만 한국인의 마음은 육수 속 메밀면처럼 풀어졌을 것이 틀림없다. 한국인들은 불안한 지도자 트럼프와 김정은이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트럼프의 즉흥적인 기분파 외교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역설은 사실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을 위한 더 나은 대통령이 되었겠지만, 국제분쟁에서는 언제나 무시무시한 매파였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트럼프가 더 나은 미국 대통령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아이러니로 들리겠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인들은 그만큼 절박하다.
물론 한국과 그 외 국가들의 온도 차는 여전하다. 독일 언론은 꾸준히 북한을 온전히 믿으면 안 되는 이유들을 기사로 싣는다. 다른 허프포스트 기자들 역시 매우 조심스럽다. 한국 미디어와는 달리 종전협정 관련 기사에도 북한 인권에 대한 언급은 꼭 들어간다. 얼마 전 나는 ‘북한 지도자를 과도하게 악마로 캐리커처 하는 서구 미디어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러자 서구 기자 한 명이 댓글을 달았다. “그건 서구 미디어들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나는 아무런 댓글도 달지 않았다. 그의 지적이 전혀 일리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탓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 김정은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갑자기 연기했다.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 한다면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다시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외교다. 오랫동안 북한이 구사해온 손바닥 뒤집기 외교다. 우리는 그들이 약속을 종종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트럼프도 뒤집기의 대가다. 이란 핵협상을 뒤집어엎어버린 순간, 우리는 북한과 전개할 핵협상도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는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은 지금 지구에서 가장 믿을 만하지 않은 두 지도자를 믿고 기다리는 중이다. 싱가포르로 가는 길은 여전히 울퉁불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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