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정착의 지름길
남북관계가 오랜만에 해빙 분위기다. 북쪽 선수단이 오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꾸려지고, 예술단이 오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때를 상기시키는 형국이다. 일단 환영이다. 보수 정권기인 지난 10여 년간 살얼음판을 걷듯 악화일로이던 남북관계로 몸에 낫지 않는 상처가 있는 듯 늘 긴장하던 마음이 잠시나마 풀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잠깐의 해빙 국면으로 남북관계의 근원적 답답함이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이후 남북 정권의 성향이나 상황 변화에 따라 롤러코스터처럼 해빙과 동결, 화해와 적대 분위기가 번갈아 오는 동안, 한국 사회는 조만간 통일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졌다가 다시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양치기 소년을 믿지 않게 된 마을 사람들처럼 이번 남북 정권 주최 평창겨울올림픽 깜짝 이벤트에 근본적인 심드렁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부지만,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부에서는 단일팀 구성의 상징성을 들지만 지금 같은 한반도 정세에서 그것이 주는 상징적·정서적 효과가 1991년 남북 탁구 단일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번 단일팀이 한바탕 정치 이벤트이거나, 누구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운 정치쇼로 비칠 여지도 크다. 일부 국민의 반발은 남북 화해라는 대의를 몰각한 행동이기보다 스포츠가 안이하게 정치에 동원되는 사태 앞에서 정당한 상식과 예의가 거칠게 침해당한다는 느낌의 자연스러운 표출로 봐야 할 것이다.
자칫 돌이키기 어려운 극단적 대결로 치달을 수도 있는 한반도 정세에서 모처럼 열린 대화 국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차제에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것도 긴요한 일임이 틀림없다. 한편으론 급조된 이벤트식 화해 분위기가 과연 분단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늘 그렇듯이 근본적 해법에 이르지 못하고 한때의 국면 전환용 카드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지 근본적인 갈증과 회의를 떨칠 수 없다. 이젠 도돌이표로 끝나는 악보와 같은 남북관계의 오랜 타성에 더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 성찰은 ‘북한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서 시작돼야 한다.
남북은 간단하게 맺고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정서적·사실적으로 복잡한 과거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과 사회체제를 가진 두 개의 정상국가임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나아가 한반도 문제의 종착점이 ‘통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는 것도 인정하고, 문제에 대한 접근도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를 전제한 상태에서 두 이웃 국가의 평화 구축 관점에서 실천돼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거나 ‘우리는 하나’ 같은 감상적 구호나 서로를 ‘괴뢰집단’이나 ‘반국가단체’로 보는 시대착오적 적대의식을 동시에 청산해야 한다.
감상적 친밀감 또는 적대감이라는 조울증적 흥분 상태가 아니라, 국가 사이의 상호 존중, 호혜 평등 정신에 기초하며, 절차적 합리성에 입각한 외교적 예의가 남북관계에 임하는 기본 덕목이 될 때, 오히려 한반도 평화는 더 빨리 정착될 수 있지 않을까? 위험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모든 생산적인 발상의 전환은 처음엔 늘 위험해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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