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를 두 번이나 크게 놀라게 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JTBC)라는 탐사보도 프로다. 이 프로는 최근 과거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에서 무고한 시민들에게 자행한 조직적 간첩조작을 다뤘다.
나는 먼저 그 간첩조작 사건들이 오로지 실적을 올리고 조직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광범하고 무차별적으로 벌어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짐작은 했지만 설마 저 정도일가 싶게 마치 일상의 사무를 처리하듯 죄 없는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숙련된’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왜 사과하지 않는 걸까 </font></font>방송이 끝날 무렵엔 또 다른 의미에서 놀라움을 주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 시대, 그것도 민주정부라고 하던 김대중 정부 때 한 철학교수가 간첩 누명을 쓰고 곤욕을 치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담당 책임자인 전직 기무사 요원이 이제는 고인이 된 그 교수의 유가족을 찾아가 그때의 잘못을 사죄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그 모습은 대개 ‘애국’이라는 미명으로, 또는 위에서 시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논리로 사과는커녕 반성도 하지 않아온 관행(?)을 깨고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아마 우리 사회에선 거의 있어본 적 없는 희귀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짧았으나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그리 길지 않은 사과 한마디로 피해자 유가족의 오랜 원한과 울화가 풀리는 해원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언론 가 제작 배포한 영화 도 최근에 접한 인상적인 기록물이었다. 와는 대조적으로 이 영화엔 지난 이명박·박근혜 ‘도둑정권’ 시기에 수많은 기자와 프로듀서를 탄압해 그 영혼과 신체를 공히 피폐하게 만들고 공영방송과 준공영방송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킨 크고 작은 범법자들이 나온다. 그 인물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사과는커녕 유감의 뜻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듭되는 인터뷰 요청에 도망가고, 얼버무리고, 나아가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거나 협박을 해댄다. ‘뻔뻔스럽다’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는 후안무치한 인간들을 보며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타락할 수 있을지 차라리 연민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깨달았을 때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사과해야 하며, 사과는 빨리 할수록 좋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현실에서, 특히 공적 영역에서 이런 가르침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염치를 알 만한 공인들이 금방 들통날 거짓말과 말도 안 되는 부인과 발뺌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모습을, 자주 익숙하게 보아왔다. 도대체 왜 그럴까. 한시라도 빨리 뉘우치고 사과하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원도 훨씬 쉽고 빠르게 온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이들이 왜 저렇게 인간적 품위를 내팽개치며 구차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망가져가는 것일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친일파부터 세월호 책임자까지</font></font>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로 인해 잃는 게 많아서일 것이다. 그 잘못으로 돈이든 권력이든, 어떤 안락이든 원래 자기 것이 아니어서 자신이 취하면 안 될 것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을 낳고, 그러다보면 진실과 거짓이 혼동될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때가 되면 회피도 도망도 없이 뻔뻔해지고, 점점 더 뻔뻔함이 확신에 찬 당당함으로 바뀌고, 피해자에게 2차·3차의 가해도 서슴지 않는 괴물이 되어간다. 멀리 친일파부터 가까이 세월호 책임자들까지 이런 인간말종형의 괴물들이 살아남아 승리자가 되고 지배자가 되는 끔찍한 사회가 오늘의 한국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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