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8개월에 접어든 도담이가 가을을 타고 있다. 웃거나 울기만 하던 예전 모습과 달리 감정 표현이 다양해졌다. 요구가 많아지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칭얼거린다.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나라 잃은 백성처럼 통곡하는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서럽게 흐느끼기라도 하면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그저 기사님 들으라는 듯 “도담아, 거의 다 왔어”라고 달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를 공공장소에서 몇 차례 겪다보니 아내와 나는 수유실을 갖춘 곳으로만 발길을 향하는 ‘수유실 성애자’가 되었다. 모유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면서 우는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서 유일하게 수유실을 갖춘 주상복합몰에 가면 도담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유독 많다. 우리처럼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외식하고, 산책도 할 겸 이곳을 찾은 것이다. 재미있는 건, 쇼핑몰을 돌면서 마주치거나 식당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수유실에서 또 만난다는 사실이다. 이 몰에 마련된 수유실은 수유하는 공간과 기저귀를 가는 공간이 분리돼 있어 편리하다. 담당자가 수시로 관리해 위생적으로도 꽤 쾌적하다. 아내는 수유실을 몇 번 이용하더니 “이곳에 미혼 남녀보다 아이를 대동한 부부가 더 많은 이유는 수유실 때문일지 모른다. 가족이 몰을 찾기 때문에 식당마다 좌석 점유율이 높다”는 그럴싸한 분석을 내놓았다. 잘 관리되는 수유실 하나가 상권을 살리고 있다는 아내의 얘기가 결코 과장된 분석은 아닌 듯했다.
아이를 키울수록 한국은 좋은 육아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공공장소의 수유실만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주요 관공서와 대형 패밀리레스토랑, 백화점·대형할인점 정도를 제외하면 웬만한 식당과 카페에는 수유실이 없다. 혹여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거나,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천으로 가린 채 수유할 수밖에 없다.
설령 공공장소에 수유실이 있더라도 아이에겐 썩 안전한 공간이 못 된다. 얼마 전, 서울역과 용산역 등 주요 역사에 있는 모유 수유실의 위생 상태가 화장실 변기보다 무려 14배나 더럽다는 뉴스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결정적으로 모유를 먹이는 엄마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불편하다. ‘집에 있지 뭐하러 밖에 나와 이 고생을 하나’라는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엄마와 아이가 집 밖에 나오기 주저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사업자나 건물주에게 무작정 수유실을 갖춰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테이블 몇 개 크기의 공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수유실을 만드는 건 수지가 안 맞는 일이다. 앞서 소개한 주상복합몰의 예처럼, 수유실 하나가 더 많은 손님을 이끌 수도 있다. 아이 가진 부부의 지갑을 열게 하는 비법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다.
김성훈 기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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