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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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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스피커 <한국경제>의 균열

흔들리는 ‘강성귀족자본’ 대변하는 한경 논설위원들께
등록 2017-06-15 17:05 수정 2020-05-03 04:28

격변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에 동력을 집중해 우리 사회의 방향을 틀어내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불평등·격차·차별을 해소하는 개혁을 두고 그 속도와 강도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하고 있다. 대표적 주제가 ‘노동’이다. 대통령은 취임 사흘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감독관을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고, 최저시급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청와대는 직접 비정규직 총량과 비율을 들여다보겠다고 약속했다.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벌 저격수’로 이름난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지명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재벌 관리·감독 강화…. 모든 상황이 자본에 불리하다. 국정 농단의 공범인 재벌들은 쥐 죽은 듯 바닥에 엎드려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자본을 위한 이익단체들마저 몸을 사린다. 자유한국당의 ‘강성귀족노조’ 타령도 다시 들리지 않는다. 자본의 태도와 입장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럴 때는 (한경)를 보면 좋다. 현대자동차, 삼성, LG, SK, 두산, 효성, 한화, 금호, 대한항공 같은 재벌 대기업이 주주인 이 신문은 ‘자본의 스피커’로 흔들리지 않게 자본의 이익을 사수해왔다. 평소 트래픽 장사를 열심히 하지만 자본 관련 문제에는 정색하고 선봉으로 달려드는 게 이 신문이다. 자본에 반하는 정책을 끝까지 물어뜯고, 노동조합을 가장 적극적으로 혐오한다.
그런데 한경이 요즘 이상하다. 아주 미세하지만 균열이 생긴 것 같다. 사설과 기사가 충돌한다.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한경은 6월7일치에 ‘이마트 사례가 보여준 정규직 전환의 숱한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마트는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는데, 이후 노조가 임금과 복리후생상의 차별을 문제 제기하며 갈등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런 저간의 복잡한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 제로(0)’를 추진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틀 뒤 6월9일치 15면에 실린 ‘비정규직 비율 4%대…식품업계 유독 ‘갓뚜기’가 넘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선 자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경은 여전히 ‘자본의 스피커’로서 ‘강성귀족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런데 균열이 생겼다. 그것이 아주 미세한 수준이더라도 독자들은 느낀다. 한경 논설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후배 기자들을 억누를 건가, 아니면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건가. 또 당부한다. 지금은 불평등·격차·차별을 해소하고 그에 맞게 사회와 제도를 재구성해야 할 때다. 지금껏 거꾸로 들어온 펜을 고쳐 잡아달라. 그럴 수 있어야 기자다.
박장준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
*매체비평지 와 기자 출신인 박장준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의 ‘기자님, 기자님’을 3주에 한 번씩 싣습니다. 박장준씨는 칼럼을 시작하며 “노조 전임자는 ‘기자님’ 앞에선 철저히 을이다. 을의 처지로 기자들을 실명으로 칭찬하고 비판하는 것이 두렵지만 용기를 내본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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