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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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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무지가 저널리즘 위기 자초

‘부산 HIV 감염 여성‘ 비뚤어진 보도로 증오만 키운 언론
등록 2017-12-09 11:02 수정 2020-05-03 04:28

우리 언론은 잘 팔리는 주제만 골라 쓴다. 자신이 잘 몰라도, 근거 없는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내도 언론은 쓰고 또 쓴다. 문제가 되면 슬그머니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해버리면 되고,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들먹이며 ‘갑질’을 한다. 언론이 스스로 저널리즘을 좀먹는 이상한 사회다.

문제는 언론이 사회를 ‘무지’로 몰아가고 ‘혐오’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런 언론을 ‘흉기’라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언론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과 에이즈(AIDS) 환자를 보도할 때다. 언론은 이들을 박멸해야 할 ‘바이러스’로 본다. 지난 10월 중순 ‘부산 성매매 에이즈녀’에 대한 기사들이 딱 그렇다. 언론은 당사자를 ‘악마’로 만들었다. HIV와 에이즈의 차이를 모르고, 두 가지가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조차 독자에게 알리지 않고 혐오와 증오를 만들어냈다. 언론이 얻은 페이지뷰만큼 혐오는 더 쌓였다.

책임지지 않는, 무지막지한 폭력이다. 선을 긋고 교정해야 한다. 마침 박수진 기자가 꼭 필요한 기사를 썼다. 제1187호 표지이야기 ‘누가 그녀를 악마로 만들었나’는 문제의 부산 HIV 감염 여성의 이야기다. 기사에 따르면, 그녀는 최초에 누군가로부터 HIV에 감염된 피해자다. 지적장애 3급이고, ‘맞는 것’을 두려워하며,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에이즈 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HIV 감염인이지만 가족의 꾸준한 관리로 가장 최근 검사에서는 HIV가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언론은 그녀를 ‘에이즈녀’로 만들어버렸다.

온갖 편견, 오해, 차별, 혐오가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를 둘러싸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국가조차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사이 당사자와 가족들은 가난으로 내몰린다. 언론이 사회에 공유해야 할 이야기, 지적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기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근래 내가 본 기사는 앞서 소개한 기사와 대구·경북 지역 대안언론 의 박중엽 기자가 쓴 기사가 전부다. 박 기자는 ‘HIV 감염인, 가난의 면역결핍사회 한국을 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혐오 기사에 노출돼온 독자들과 혐오 기사를 양산하는 기자들이 꼭 참고해야 할 내용을 다뤘다. 그가 그리는 것은 “가장 공포에 떠는 사람”인 감염인, 간병과 노동에 힘겨워하는 가족, 대한에이즈예방협회 활동가의 사연 등이다. 우리가 이미 읽은 혐오 기사에는 없는 것들이다.

몇몇 매체와 기자들의 노력으로 간간이 좋은 기사가 나온다. 그러나 양적으로 상대가 안 된다. 나는 이 땅의 사회부 기자님들께 감히 조언이라는 것을 하려 한다. 기자님들이 취재하느라, 기사 쓰느라, 마감에 쫓겨 기사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나와바리’(담당영역)에서 물먹을 때(타사가 단독 보도를 할 때)만 기사를 열심히 읽는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앞의 두 기사와 함께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책 을 꼭 읽어달라. 명색이 기자가 무지와 혐오를 퍼뜨려서는 안 되지 않나.

박장준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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