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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가는 길, 맞닥뜨릴 진짜 민낯들

소외된 이웃을 ‘부끄러운 민낯’으로 치부한 <매일경제>
등록 2018-02-03 23:59 수정 2020-05-03 04:28
*이 글은 1월27일치 1면 <font color="#C21A1A">‘평창 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font> 기사에 나온 그들의 ‘바람’이 현실이 됐을 경우를 가정해 작성했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세계 시민 여러분 환영합니다. 여러분이 탑승한 열차는 서울역을 출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강원도 원주를 거쳐 평창으로 가는 고속열차입니다. 올림픽을 위해 새로 만든 노선입니다. 즐겁고 편안한 여행이 되도록 제가 한국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열차, 출발합니다.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한국철도공사 소속 기관사입니다. 열차 내 검표, 승객 응대, 안전 업무 등을 하는 승무원들은 철도공사 소속이 아니라는 점 알려드립니다. 한국은 철도를 운행하는 회사와 철로를 관리하는 회사가 따로 있고, 같은 열차 안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소속 회사도 다릅니다. 승무원 유니폼에 붙은 ‘배지’는 외주화와 차별을 금지하라는 내용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중략) 지금 지나는 곳은 용산입니다. 창밖을 봐주십시오. 큰 가림막에 스피드스케이팅과 스키점프를 하는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뒤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실 텐데요, “무너져가는 노후 주택과 녹슨 철제 지붕, 폐타이어와 쪼개진 기왓장”이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한강트럼프월드 등 고층 빌딩들과 겹쳐지면 서울은 엄청난 빈부 격차를 지닌 도시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언론사가 ‘한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낸 뒤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용산은 사연이 많은 지역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곳은 9년 전 재개발에 반대하는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인 곳입니다. 경찰은 대테러 부대를 동원해 강제 진압했는데 이 때문에 불이 났고 철거민 5명이 숨졌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재개발 열풍이 불고 강제 진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중략) 이곳은 두물머리입니다. 한국은 10여 년 전 느닷없이 전국 대부분의 강에 보를 설치하는 ‘4대강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이곳이 바로 사업의 마지막 구간이었습니다. 정부는 “강을 살리겠다”고 했지만 결국 토목·건설회사만 한몫 챙겼습니다. 강과 생태계는 파괴됐고 고인 물 때문에 녹조가 심각해졌습니다.

(중략) 드디어 평창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수많은 카메라와 리포터를 마주칠 텐데요, 이 언론인들은 대부분 프리랜서나 외주제작사 소속입니다. 이들은 임금을 떼이거나 월급으로 상품권·협찬물품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알파인스키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가리왕산을 삭벌(나무를 남김없이 모두 벰)하는 등 정부가 올림픽을 명분으로 강원도의 자연을 크게 훼손했다는 점을 꼭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 말씀 드립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격변 중입니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시민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위의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정규직·비정규직 차별과 격차를 줄이고, 여성·장애인·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국의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을의 민주주의’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올림픽, 즐기시기 바랍니다.

박장준 희망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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