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래 남한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호칭은 ‘빨갱이’였다. 아마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그보다 더 낙인효과가 큰 호칭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약발’이 예전만 못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젠 ‘빨갱이’란 이름에 부합하는 존재가 남한 사회에서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동안 너무 남발돼 낙인효과가 현저히 약화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점차 추억이 되어가는 ‘빨갱이’란 호칭이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 혐오와 공격성의 총량을 전부 차지했다면 이제 그것은 점차 다른 호칭들과 총량을 나누고 있다. ‘빨갱이’를 대신하는 ‘종북좌빨’도 여전히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 약자이기 때문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차별받고 배제되며, 제 목소리를 내는 순간 혐오와 공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이를테면 ‘꼴페미’라든가 무슨무슨 ‘충’ 같은 혐오명칭(혐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화된 피혐오층 혹은 혐칭 가운데 이참에 꼭 한번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다. 1989년 임의단체로 출발해 1999년 합법적 노동조합 자격을 획득한 이 조직은, 창립 전은 물론 창립 이후에도 계속 소속 교사들의 반복되는 징계나 해고를 포함해 참으로 많은 유·무형의 탄압을 받아왔다. 지난해에는 해직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판결을 받아 다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교조 합법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는 노동관계법 해석에 대한 문제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합법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문제들에선 쾌도난마인 새 정부가 이 문제에는 아직 침묵하고 있다.
왜일까. 전교조 합법화 문제가 여론의 절대적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한 언론사에서 진행 중인 전교조 합법화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찬반이 팽팽하다 못해 반대 의견이 조금 더 우세한 충격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전교조의 교육 이념과 실천 방식이 전통적 우파들의 눈엣가시가 되고 ‘어린 학생들’을 의식화한다는 이유로 탄압받아온 것까지는 숙명이라고 하자. 그러나 다른 사안에선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전교조에 대해서는 곧잘 눈살을 찌푸린다.
여기엔 단순히 보수·진보라는 전통적 프레임을 넘어서는 또 다른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절대다수가 말로는 공교육 정상화를 말하면서도 초·중등 교육을 전교조 교사가 주도할 경우 자녀들의 상급학교 입시 준비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는 비이성적인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전교조 혐오의 또 다른 기원이다. 이 점을 간과하고는 전교조에 대한 지독한 혐오와 배척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하여 전교조는 조직 이름 자체가 곧 혐오가 되어버린 가공할 만한 적대적 환경과 싸워나가야 한다.
어떤 혐오도 이성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혐오들은 하다못해 세계적 보편성을 지녔다. 우리 사회의 전교조 혐오는 매우 한국적으로 ‘특수하게’ 비이성적이다.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고, 교사를 식민지 시대 이후 국가의 오랜 통제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교사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이 비이성적 집단무의식의 희생양이 되고, 이른바 ‘민주정부’라는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찬밥 신세가 되어야 한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계간 주간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전광훈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 데려오면 1인당 5만원 주겠다”
공수처 차량 파손하고 ‘난동’…윤석열 지지자들 ‘무법천지’ [영상]
윤석열,구치소 복귀…변호인단 “좋은 결과 기대”
윤석열 구속되면 수용복 입고 ‘머그샷’
공수처 직원 위협하고, 차량 타이어에 구멍…“강력 처벌 요청”
윤석열 지지자 17명 현장 체포…서부지법 담 넘어 난입
윤석열, 구속영장 심사서 40분 발언…3시간 공방, 휴정 뒤 재개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
“우리 엄마 해줘서 고마워, 매일 올게”…눈물의 제주항공 추모식
“사필귀정, 윤석열 구속 의심치 않아”…광화문에 응원봉 15만개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