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재인 대통령 칭찬에 침이 마를 지경이다. 특히 새 정부 출범 뒤 이어지는 인사는 혁신이란 말이 전혀 아깝지 않다. 피우진 예비역 중령의 국가보훈처장 임명은 그야말로 정점이었다. 첫 여성 보훈처장이란 상징성 외에 그 삶 자체로 민주시민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도 결정적 악수가 있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임명 건이다. 검사를 그만둔 뒤 변호사 시절 전력이 문제다. 갑을오토텍이란 기업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것이다. 이 회사 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을 방패 삼지 않기 위해 어느 노조보다 노력해왔다. 스스로 임금을 줄여 일자리 나누기에 나섰던 노동자다. 그런데 사 쪽은 이를 악용해 그 일자리에 노조 파괴 ‘용병’을 채용했다. 대표이사 박효상은 비밀리에 경찰·특전사 출신자를 뽑아 노조 파괴 교육을 했고, 이들을 신입사원으로 고용해 본격적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이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 그는 징역 10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임명이 알려지자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데 정작 비난이 쏟아진 곳은 민주노총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흔드는 시도다” “변호사가 의뢰인에 충실한 게 무슨 죄냐?” “그게 반부패비서관 업무와 무슨 상관이냐?” 심지어 “민주노총이야말로 적폐 청산 대상”이라거나 “귀족노조는 두들겨패야 한다” 등의 협박과 폭언도 적지 않았다. 박형철 변호사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공지문에서 “국민들께 송구하다”면서도, “사건을 맡은 것은 이전 경영진이 기소된 이후인 지난해 봄부터였고, 변호사로서 사 측에 불법행위를 하지 말도록 조언했었다”고 해명했다.
과연 민주노총이 억지 논리로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를 흔드는 걸까? ‘귀족노조 때려잡은 일이므로 전혀 잘못이 아니다’라는 식의 비이성적 비난을 빼면, 임명 찬성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갑을오토텍 대리인 전력은 문제지만 반부패비서관 업무와 무관하므로 임명해도 된다. 갑을오토텍 대리인 전력이 반부패비서관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 논리를 용납해버리면 과거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라도 업무와 직접 관련만 없으면 공직에 임명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지고 보면 세금 체납, 부동산 투기, 성추행, 혐오발언 같은 행동도 공직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다. 일만 잘하면 공직자로 쓸 수 있다는 것인데, 당연하게도 이 관점이 일반화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두 번째 찬성 논리. ‘박형철 변호사는 경영진이 기소된 이후 대리인이 되었고 사 쪽에 불법행위를 하지 말도록 조언했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여기서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지점은 박 변호사 ‘개입 이후 사태의 전개’다. 2016년 6월 말부터 7월 말에 걸쳐 사 쪽 박형철 대표 변호사는 노조 쪽을 겨냥해 집중적으로 고소장을 낸다. 7월 초 노조의 합법 파업이 시작되자 사 쪽은 88명이나 되는 관리직 인원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하는데, 이 정도 규모의 관리직 투입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자연 감소 결원이나 신규 업무와 무관한 대체 인력, 즉 쟁의행위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7월26일 사 쪽은 직장폐쇄를 단행해 아직도 사태는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18일에는 이 회사 노동자가 오랜 직장폐쇄로 인한 생계 압박과 심리적 고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까지 있었다. 요컨대, 노조 파괴 공작으로 폭발한 사태에 법률 대리인으로 개입해 사태를 장기화한 장본인 중 하나가 박형철 변호사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도덕성과 관계없이 신의·성실을 다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여기에도 한계선이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 윤리장전’ 첫 항은 다음과 같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 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 즉, 무엇보다 공적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갑을오토텍은 일반적인 기업이 아니다. 노조 파괴 공작의 대명사이자 2000년대 이후 노동 탄압의 상징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의 인사 혁신은 눈부셨다. 그러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임명은 ‘옥에 티’ 수준을 넘어선 잘못이다.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글 박권일 칼럼니스트컴퓨터그래픽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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