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아키에 스캔들’이 일본열도를 흔들던 때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어떻게든 ‘설명’되는 스토리를 만들어본 거다.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은 가고이케 야스노리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 일본 국회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아베 신조 총리 부부가 100만엔을 줬다고 폭로한 대목이다. 상식적으로는 반대여야 한다. 가고이케 이사장이 뒷돈을 대고 그 대가로 국유지를 헐값에 불하받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오히려 아베 총리가 가고이케 이사장에게 돈을 줬다는 거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의문은 ‘이념’으로 이해할 때만 풀린다. 즉, 아베 총리가 일본 극우 세력의 이념적 부흥을 위해 여러 방식으로 ‘헌금’을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다. 이렇게 봐도 수수께끼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가고이케가 아베 신조라는 독실한 ‘신자’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기 위해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내 가설은 극우 세력 내 ‘선수교체론’이 존재했다는 거다. 아베 총리는 세 번째 연임을 통해 역대 최장수 총리를 노린다. 아베 총리로 ‘보통 국가화’를 완성하려는 게 일본 내 극우파의 기획이다. 그런데 개헌 작업은 사실 지지부진했다. 오히려 일왕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며 아베 총리와 대립하는 불경한(?) 일이 벌어졌다.
그때 일본 정계의 다크호스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떠올랐다. 아베 총리는 그를 견제하기 위해 4월 중의원 해산으로 분위기 일신을 모색했지만 아키에 스캔들 탓에 계획은 좌초됐다. 7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은 고이케 도지사가 만든 지역 신당 ‘도민 퍼스트회’에 제1당 자리를 빼앗길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 도지사 역시 극우 인사로 분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략 그림이 그려진다. 혹시 아키에 스캔들은 ‘고이케 유리코 총리’가 탄생할 수 있는 기회 아니었을까? 3월 말 방한한 오자와 이치로 생활당 대표는 고이케 도지사의 행보를 두고 “타이밍상 도의회 선거에 집중해야 하니 바로 총리 선거에 나가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쨌든 ‘고이케 유리코 총리설’은 실체가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일본 우익이 개헌을 미적대는 아베 총리를 교체하려 한다는 ‘빅 픽처’설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조금씩 현실화되는 일본의 개헌론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과 인터뷰에서 일본의 군대 보유와 교전권 금지를 못박은 헌법 제9조에 자위대 관련 서술을 넣겠다는 개헌 구상을 언급했다. 교전권을 포기하는 조항은 그대로 두더라도 헌법에 자위대 보유 근거만은 분명히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헌론 점화의 유력한 재료는 북핵 문제를 정점으로 한 동북아시아 위기다. 아베 내각은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강경 대응하며 공포감을 조성해왔다. 미국이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동북아 일대를 흔드는 바로 지금이 일본 내 극우 세력에게는 기회이고, 아베 총리는 최선을 다해 기대에 부응하기로 한 셈이다. 일본의 본격적인 군사대국화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한국의 새 대통령이 해결해야 하는 외교의 가장 큰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독자들이 이 글을 볼 때쯤 새 대통령은 이미 선출돼 있을 것이다. 새 대통령이 미국·일본·중국이 만들어놓은 난장판에 성공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는 솔직히 판단 불가다. 물론 파탄적인 외교정책으로 일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책임 역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비극과 실수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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