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학의 제1원리는 내 표는 늘리고 남의 표는 줄이는 것이다. 표를 빼앗아오지 못할 거면 차라리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모든 선거공학은 이 전제 위에서 움직인다. 선거 전문가가 TV토론의 영향력을 크게 평가하지 않으면서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TV는 활자보다 훨씬 직관적 매체다. 글자를 통해 감지할 수 없는 것을 알게 해준다. 4월13일 진행된 대선 후보 TV토론은 이런 면에서 전형적이었다. 녹화 직후 떠돌아다닌 세평을 보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시쳇말로 죽 쑨 줄 알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토론 실력 문제가 심각했다.
안철수 후보는 나름 분전했지만 시종일관 경직된 자세로 ‘정치 초보’ 느낌을 줬다. 준비해온 논리가 무력화된 것은 순발력 부족을 절감케 했다. 예를 들면 ‘적폐’ 논란이다. 안철수 후보는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모두 적폐인가” “북한이 촛불시위 보도를 하면 촛불시위는 북한과 가까운 것이 되나”라는 논리를 폈다. 선거공학 관점에서 이는 문재인 후보의 ‘적폐 연대’ 공세를 유권자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는 좋은 수다.
문제는 아무리 수가 좋아도 수순이 잘못되면 소용없듯, 문재인 후보가 “국민이 무슨 죄인가. 적폐 세력은 구 여권 정당”이라 말하는 상황에서 꺼낼 논리는 아니었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안 후보가 보여줄 수 있었던 모범적 임기응변은 문재인 후보의 발언을 ‘말 바꾸기’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이런 식의 논의는 말꼬리 잡기에 가깝다. 문제는 그렇다고 안철수 후보가 정책 공약을 제대로 설명한 것도 아니라는 거다. 예를 들면 ‘학제 개편’ 문제다. 교육개혁 목표를 위해 왜 하필 학제 개편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고, 이번 정권에서 하겠다는 것인지 다음 정권에서 하겠다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도 명확한 답변을 못했다.
이런 모습은 안철수 후보를 선거공학의 문제를 넘어 정치철학을 갖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단설 유치원 설립 제한 논란이다. 이 논란은 안철수 후보가 사립 유치원장들이 모인 곳에서 ‘조직표’를 노린 발언을 과감하게 한 것에서 시작한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각종 무리한 논리를 동원했으나 오히려 학부모들의 반발이 확대됐다. 모습의 대척점에 선 것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다. 유승민 후보는 지지율이 낮고 유약한 이미지라는 단점이 있지만 자신의 정책 공약에 높은 이해도를 보여 ‘소신 있는 정치인’임을 어필하는 데 나름대로 성공했다.
물론 안철수 후보가 TV토론을 망쳤다고 당장 정치적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TV토론을 보고 문재인 후보 지지로 입장을 바꾸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의 ‘미소’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안정감을 주겠지만 경계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다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오히려 안철수 후보 지지층의 표심이 결집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TV토론에 반정치적 선거공학 이상의 것을 요구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그저 문재인 후보가 싫다는 이유로 또는 안철수 후보가 순수해 보인다는 이유로 표심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폐해를 우리는 이미 박근혜 정권에서 경험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편리한 구도에 안주할 게 아니라 정책적 쟁점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정치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남은 토론 일정에서 이런 일들이 꼭 실현되기 바란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칼럼니스트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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