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 한민구에겐 네 번의 기회가 있었다. 5월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 참석했고, 17일엔 문 대통령의 국방부 초도순시에 배석했다. 26일엔 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위원 점심 간담회가 있었고, 28일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한 장관은 안보를 위해 자신들이 그렇게나 중요하다고 주장하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추가 반입 사실을 한 차례도 군 통수권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의용 안보실장이 “이미 사드 4기가 들어왔다면서요”라고 묻자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미 언론에 보도돼 사드 추가 반입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던 의 주장대로라면, 직무유기는 청와대가 아니라 한 장관이 했다. 이 사태가 ‘보고 누락’이 아니라 ‘허위 보고’인 이유다.
전임 국가안보실장 김관진은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 정지 중이던 지난 1월과 3월 미국에 갔다. 동북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평화협정 체제를 통해 북핵 위기를 풀지 말라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전쟁을 불사하는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풀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은 이 군인의 말을 무시하고, 북핵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이어갔다. 한국 정부는 여기서 배제됐다. 이걸 언론들은 ‘코리아 패싱’이라고 불렀다.
이 두 장면과 사드 반입 과정을 결합해보자. 미군은 3월6일 사드 발사대 2기를 한국에 반입했다. 미군은 이 과정을 동영상으로 공개했고, 국방부도 반입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4월26일 YTN이 사드 4기가 추가 반입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전과 달리 이 사실을 공식 확인해주지 않았다. 정부 공식 확인이 없으니 YTN 보도는 추정으로 남았다. 그리고 4월26일 새벽, 미군은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 사드를 배치했다. 소성리 할머니들이 몸을 던져 절차적 정당성도 사전 예고도 없던 사드 배치를 막으려 했지만, 남은 건 할머니 12명의 팔다리 골절과 눈물뿐이었다.
모든 것은 군에 의해서만 이뤄졌다. 군은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 멋대로 북한에 대한 강성 외교에 나섰다가 국제사회에서 보기 좋게 무시당하는 무능함을 보여줬다. 그래놓고 소성리 주민뿐만 아니라 군의 무기 도입 과정을 투명하게 파악해야 할 시민과 언론, 시민들을 대리하는 의회의 알 권리를 무시했다. 심지어 시민들의 지지를 통해 선출된 현직 대통령이자 군 통수권자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시민과 국가를 보호해야 하는 군의 존재론적 당위를 부정한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군은 2004년에도 비슷한 일을 벌였다. 한미연합사령부는 당시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하는 군사계획인 ‘작전계획 5029’ 작성을 군에 제안했다. ‘작전계획 5029’는 ‘북한 내부에서 급변 사태가 벌어지면 한국이 주도적으로 대처한다’는 방침을 세운 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김영삼·김대중 정부도 반대하던 일이다. 하지만 군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보고 없이 이를 한미연합사령부와 협의했고, 초안까지 완성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오자, 해군이 경고사격을 했다. 군은 당시 “북한 경비정에 경고방송을 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발표하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하지만 청와대 조사 결과, 북한 경비정이 군의 경고방송에 “지금 내려가는 것은 우리 어선이 아니고 중국 어선”이라고 밝히는 등 세 차례나 응답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군의 허위 보고였다. 당시 군의 대응이 정당했다고 주장한 사람이 ‘이명박근혜’ 정부 국가보훈처장을 지낸 박승춘 당시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이다.
만약 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사태에 분노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은 장면을 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렇게나 무능한 군이 존재론적 당위마저 부정하면서도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해올 수 있었던 까닭이다.
글 이재훈 기자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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