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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법’의 심화

개헌
등록 2017-03-21 17:57 수정 2020-05-03 04: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죄가 무슨 죄야, 죄지은 놈이 나쁜 거지.” 영화 의 대사다. 극중 마동팔 검사는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말하는데, 이는 명백히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진부한 도덕에 대한 냉소적 안티테제다. 영화는 1997년 개봉했다. 바로 몇 달 뒤 한국 경제는 드라마틱하게 침몰한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이른바 엘리트가 얼마나 ‘쌈마이’였는지 세계에 생중계되는 사태였다.

영화 의 대단함은 1990년대라는 시대의 ‘쌈마이성’에 대한 조롱을 넘어, 영화 속 미래 시점이 보여주듯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미래도 ‘쌈마이’일 거라고 예언했다는 점에 있다. 예언은 ‘박근혜·최순실·삼성 스캔들’이라는 형태로 실현됐다. 사회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게 후진 존재였는지 이제 우리는 잘 안다. 차라리 1997년은 목가족이라 느낄 정도로,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쌈마이의 끝’을 보았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개헌 국민투표를 합의해 전격 발표했다. 레토릭만 들으면 1987년 헌법이 만악의 근원 같다. 그들을 보며 마동팔 검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헌법이 무슨 죄야, 니들이 나쁜 놈이지.” 1987년 인민항쟁은 헌법을 포괄한 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왔고, 우리는 이를 흔히 ‘87년 체제’라 부른다. 식자들 상당수는 틈만 나면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고 말하면서 빨리 우리가 새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87년 체제의 한계라 지적하는 것은 절차적 민주화와 대비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미비함, 너무 강한 대통령의 권한, 지역주의, 보스 정치 같은 것들이다.

이 한계들 중에서 정말 헌법과 직결된 건 ‘너무 강한 대통령의 권한’ 부분이다. 나머지는 사실 87년 헌법의 한계라기보다 한국 자본주의의 한계 또는 한국 정치의 한계라고 불러야 적절하다. 절차적 민주화(대통령직선제)라는 얕은 수준의 민주주의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깊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정말 87년 헌법 때문인가?

의회정치가 사회적 불평등을 시정하는 데 극도로 무기력한 직접적 원인은 보수 기득권 위주의 선거제도가 대표성을 왜곡하고, 진보정당 및 노동조합 등 진보정치의 입지와 지지 기반이 극도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87년 헌법이나 87년 체제에 대한 담론은 그간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거나 확대해석됐다. 그것은 일종의 청산주의에 기반한다. 예컨대 87년 체제는 그 전의 체제를 ‘일소’하며 세워졌고, 30년이 흐른 지금은 다시 그것을 일소할 체제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마치 신발을 갈아신 듯 체제가 바뀌어왔다는 것인데, 이런 시각이 현실에 부합하는지 의문스럽다.

오늘 우리가 겪는 중대한 사회경제 문제들 중 어떤 것은 1987년 이후에 나타났지만, 어떤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연원을 두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박정희 정권 시절 확립된 한국 특유의 재벌 시스템이다. 오늘날 한국인이 강하게 내면화한 이데올로기인 물질주의·성과주의·능력주의도 87년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시대에 공고화됐다. 인간 박정희가 죽었다고 해서 박정희 레짐, 박정희주의가 사라진 건 결코 아니었다. 도저히 깰 수 없을 것 같던 박정희 레짐에 87년 체제가 제법 큰 균열을 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극복한 것도 아니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연이은 집권은 박정희 레짐이 여전히 한국 사회의 ‘주인기표’임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삼성 이재용의 구속과 박근혜의 탄핵은 반세기 넘게 지속된 박정희 레짐과 정말 결별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만약 현 시기 한국 사회의 과제가 박정희 레짐의 진정한 청산이라면, 그리고 87년 체제가 박정희 레짐을 극복하기 위한 미완의 시도였다면, 우리의 논의는 지금까지와는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즉, 87년 헌법을 폐기 처분하는 게 아니라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헌법 제119조 2항,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의 구체화란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전혀 상상치 못한 형태가 될 수도 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개혁 없는 개헌은 협잡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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