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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애도

세월호 인양
등록 2017-03-28 18:33 수정 2020-05-03 04:28
컴퓨터 그래픽/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컴퓨터 그래픽/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3월23일 새벽 3시45분. 전남 진도 맹골수도의 검은 물 위로 세월호 선체 우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객실과 조타실이 있는 흰색 상부는 녹슬고 부식돼 검게 물들어 있었다. 화물칸이 있는 파란색 하부는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붉은 속내를 드러냈다. 선체의 형상이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마음 한쪽에 묻어둔 기억도 또렷하게 소환됐다. 2014년 4월16일. 검은 바다 위에서 점점 기울어가던, 그렇게 304명의 비명을 집어삼키던, 저 배를 어찌 바로 세울 수 없나 절규하던, 그 세월호였다. 그 세월호였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슴 한쪽에서 솟구쳤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한 건, TV를 통해 세월호가 기울어가는 장면을 몇 시간 동안 보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침몰하는 배 4층 ‘B-19’ 객실 창문에서 학생들이 탈출하기 위해 침대용 철제 은색 사다리로 끝없이 창문을 치던 모습. 하지만 두꺼운 창문이 깨지지 않고 검은 바다로 잠기던 모습. 그 창문 앞바다에 해경 경비정이 떠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머뭇대던 모습.

생사의 간극을 오가는 그 모습을 부릅뜬 눈으로 보면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을 찢을 것 같은 무력감. 내가 무력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전에는 알지 못했다. 잠겨 있던 세월호의 실체가 물 위로 떠오르면서 잠겨 있던 그 통증도 1073일 만에 다시 떠올랐다.

박근혜 한 사람이 내려가니 세월호와 미수습자 9명이 올라왔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쉽게 올릴 것을 박근혜는 왜 3년 동안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았느냐’고 개탄했다. 인양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박근혜가 최종권자였기 때문에 세월호 인양이 지지부진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근혜를 보좌한 청와대 직원들이 탄핵 결정 때까지 누구도 파면 이후를 대비하지 않았던 것처럼, 박근혜가 최종권자인 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은 누구도 앞장서서 세월호 인양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자기 일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규정에 어긋난 것은 결국 처벌받게 되지만 덜 잘한 것은 처벌받지 않는다’고 말하고, ‘나는 영혼 없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최종권자를 섬기는 사람이기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자세로 일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모든 과정에 이런 관료주의가 지배적으로 침투해 있다. 1073일 동안 세월호는 맹골수도의 빠른 조류에 녹슬고 부식됐지만, 관료들의 이 이데올로기는 녹슬지도 부식되지도 않은 채 한국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세월호가 올라온다는 것은 이제야 온전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온전한 애도란, 304명의 사망자와 더불어 미수습자 9명을 비로소 함께 추모하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세월호라는 거대한 실체를 눈앞에 두고 참사의 원인을 비로소 하나씩 재구성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아가 최종권자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행위까지 이어갈 수 있다면 애도는 하나의 완결성을 지니게 된다. 최종권자 책임 추궁은 김이수·이진성 두 헌법재판관이 탄핵 결정 ‘보충의견’에서 말한 것처럼 “그 자체로 구조 작업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며,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정부가 위기 상황의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어 최소한의 위로를 받고 그 재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

세월호가 인양되기 시작한 날, 그 최종권자는 변함없이 변호사들을 불러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고심했고, 미용사들을 불러 머리를 만졌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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