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같은 소수자 이슈가 정치적·정책적 관심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4월25일 대선 후보 토론회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유력 대선 후보가 동성애에 대해 ‘어쨌든’ 정면으로 입장을 밝혔다. “동성애 반대하십니까?”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연속된 질문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반대하죠” “그럼요”라고 두 번에 걸쳐 명확히 답변했다. 당선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동성애자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논란은 밤새 SNS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토론회 다음날인 26일. 안보 관련 행사에 참석중이던 문재인 후보 앞으로 깃발을 든 사람이 다가섰다. 시위자는 전날 있은 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지만 순식간에 밖으로 끌려나갔다. 현장 사진이 곧바로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갔고, 문 지지자들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내가 현장에 있었으면 총으로 쏘았다”거나 “예의 없는 무개념 아줌마”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 시위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이자 성소수자인 장서연씨였다.
발언 이틀 뒤인 27일. 문 후보는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성소수자에게 아픔을 드린 것 같아 여러 가지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동성애는 찬성하고 반대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지향이고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해선 다시 입장을 못박았다. “그날 제가 질문받았던 것은 군대 내에서의 동성애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것이다. 군대는 동성들이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동성애가 허용된다면 많은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성애 강요가 있을 수 있고, 상급자에 의한 스토킹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성희롱, 성추행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건조하게 사안의 시비만 논해보자. ‘군대 내 동성애 금지’는 합리적인가? 이것은 단적으로 ‘군형법 제92조의 6’을 둘러싼 문제다. 제92조 1항부터 5항까지는 강간, 강제추행 등 일반 형법에서도 당연히 처벌되는 성범죄가 규정돼 있다. 그런데 6항은 단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 말은 곧, 근무시간이 끝나고 영외에서 해당 성행위를 해도 처벌된다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성과 여성 간의 항문성교는 해당되지 않고, 과거 군형법에서 ‘계간’이란 단어로 표현됐던 남성 간 항문성교만 해당된다.)
‘군형법 제92조의 6’ 존치론자는 동성애 강요 등이 ‘군기강’을 저해한다는 걸 근거로 들어왔고, 문재인 후보도 사실상 같은 견해다. 그러나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의 처벌 조항은 제92조의 1부터 5까지에 이미 명시돼 있다. ‘제92조의 6’은 그런 행위가 아니라 ‘남성 동성애자의 성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 조항이 정당화되려면 남성 간 합의된 성행위가 군기강을 해이하게 만들고 전투력을 저하시킨다는 실질적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그 근거는 명확히 제시된 적이 없다. 이것이 ‘군형법 제92조의 6’이 계속 동성애 혐오법이라 비판받고 헌법재판소에서도 꾸준히 위헌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나는 대통령이 탄핵되던 날 누구보다 먼저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간 문재인 후보에게 감동받았고, 이념 지향은 다르지만 동시대인으로서 신뢰하게 됐다. 그렇기에 더욱 동성애 반대 발언이 실망스러웠다. 현실정치란 난마처럼 얽힌 의제들 틈을 헤쳐나가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현실을 핑계로 타협하다보면 진보와 개혁은 끝없이 유예될 수밖에 없다. 정권 교체에 매몰돼 정작 뭘 위해 그걸 하는지를 망각하면 곤란하다. 결국 그건 우리 사회의 평범한 이들, 약자와 소수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아닌가? 문재인이란 정치인에게 대단한 진보의 비전을 기대하지 않는다. 바라는 게 있다면 진보의 가능성을 모두 틀어막지 말라는 것, 작은 물꼬라도 열어두라는 것이다. 그 작은 틈을 넓혀 드넓은 강과 대해로 만드는 건 다음 세대의 몫일 테니.
추신. 혐오표현 남발하는 홍준표씨의 발정적 사퇴를 요구한다.
글 박권일 칼럼니스트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프리랜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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