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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민낯 보이지 않는 조제실

제1121호 ‘1년3개월, 나는 가짜 약사였다’ 보도 이후 들끓는 여론과 약사회의 반론… “불법 조제 문제 인정하나 조제실은 불가침 공간”
등록 2016-08-18 14:38 수정 2020-05-03 04:28
한 약국의 조제실 내부에 각종 약통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다. 이 약국은 약사 대신 불법적으로 약을 제조하는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있었다. 배지현 교육연수생

한 약국의 조제실 내부에 각종 약통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다. 이 약국은 약사 대신 불법적으로 약을 제조하는 ‘카운터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고 있었다. 배지현 교육연수생

“하얀 가운으로 위장한 ‘내부의 적’을 소탕하겠다.”

조찬휘 대한약사회 회장이 지난 7월26일 담화를 발표했다. 의 ‘가짜 약사’ 기사(제1121호 사회 ‘1년3개월, 나는 가짜 약사였다’ 참조)가 보도된 뒤,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카운터 알바’를 쓰는 약사들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대한약사회가 일주일 만에 취한 조처였다.

그는 “참담하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약국 내 종업원의 조제 행위 기사와 관련해 강도 높은 정화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약사법을 위반한 약사의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면허 취소를 요청하는 상황도 불사하는 자정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선언도 했다.

조 회장의 담화는 마치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듯 비장했다. “‘카운터’라 불리는 (약국) 직원에게 불법 조제를 시키는 후안무치한 약사가 우리 동료였다는 사실에 허탈감과 분노를 느낀다. 약사로서 도덕성과 신성한 의무를 스스로 짓밟은 동료의 배신”이라고도 말했다.

조 회장이 약사회 내부를 향해 이런 발언을 쏟아놓게 만든 의 기사는 ‘카운터 조제’를 환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약사가 “알약을 놓을 때 살살 놔서 밖에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라”고 지시하거나, 3천 포 넘는 약을 ‘카운터’를 시켜 미리 조제해놓는 등의 불법 조제 실태를 드러냈다. 어린아이들이 많이 먹는 가루약의 경우, 약을 갈아내는 분쇄기를 닦지 않아, 그 안에서 온갖 잔여물이 뒤섞인 뒤 약봉투에 담기는 경우도 있었다.

약사 업계에서 말하는 ‘카운터’란 불법적으로 약사의 조제 업무를 대신하는 약국 아르바이트생 또는 직원을 일컫는다. 이들의 대리 조제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약사법 제23조는 의약품 조제를 약사와 한약사만 할 수 있도록 정했다. 그런데도 조제실을 칸막이로 막은 채 이런 불법행위가 이뤄진다. 때로는 약사 가족들이 이런 ‘카운터’ 업무를 맡는다.

무자격 불법 조제 십수 년째 해결 안 돼

기사의 반향은 컸다. 기사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약사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엇갈렸다. 기사를 읽었다며 직접 전자우편을 보낸 약사들이 있었다. “왜 모든 약국이 카운터를 쓰는 것처럼 기사를 썼냐”고 따졌다. 조 회장이 담화문에서 “일부 약국의 일탈 행위”라며 선을 그었던 것과 비슷한 논리였다.

그러나 서울 지역 약국 4곳에서 직접 아르바이트하며 취재한 내용을 보면, 취재 대상이 된 모든 약국이 아르바이트생을 ‘카운터’로 쓰고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도 “약국 업계에 ‘카운터 알바’는 누구나 아는 흔한 일이다. 조제실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적발하는 게 어렵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다”라는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무자격자 불법 조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끊이지 않고 지적된 고질이다. 기사가 나간 뒤 기자와 만난 약사회 고위 간부는 “다수의 약사들이 불법적인 카운터를 쓰고 있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다. 약사 업계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약사회도 카운터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간부는 “기사에 등장하는 약사들이 ‘일부’라는 사실을 강조해서 기사를 고쳐달라. 후속 보도가 있다면, 약사회가 불법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꼭 반영해달라”고 요청해왔다.

한 약사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기사의 문제를 짚었다. 복약지도, 환자 상담, 약 관리, 처방전 점검 등 약사의 다른 중요한 업무에 대해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업무에 시달리므로 불법인 줄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카운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약사들도 있었다.

자신을 ‘약사’라고 밝힌 일부 누리꾼은 “(카운터가 담당하는) 포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적힌 약을 담는 건데 약사는 복약지도와 검수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 다른 현직 약사도 “약사의 역할은 처방의 적절성을 판단해 환자에게 질 높은 상담을 해주는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조제가 약사 업무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항의도 있었다.

반면 기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거나 기사에 댓글을 단 시민 수천 명의 목소리에선 우려가 많았다. 누리꾼 ‘화목’은 “6살, 2살인 두 딸의 아빠로서 참기 힘들다. 딸들이 잦은 감기 증상을 보여 자주 내복약을 먹이는데 걱정된다”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우리 동네에서도 3~4곳이 저렇다. 아이 가진 엄마로서 약국에 갈 때마다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카운터’로 일했던 누리꾼들도 경험담을 전했다. “스무 살 때 12시간씩 불법 조제를 했다. 환풍기에 먼지가 껴서 조제하는데 먼지 뭉치가 툭툭 떨어졌다”, “어린아이가 먹는 가루약 배분을 일정하게 잘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렇게 못한 날이 더 많았다” 등의 이야기들이었다.

현직 약사도 지적한 ‘가짜 약사’ 문제
환자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일부 약국 조제실에서 불법적인 대리 조제가 일어나고 있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가짜 약사’의 약 조제를 막을 대안이 절실하다. 한겨레 자료

환자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일부 약국 조제실에서 불법적인 대리 조제가 일어나고 있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가짜 약사’의 약 조제를 막을 대안이 절실하다. 한겨레 자료

한 누리꾼은 “수능이 끝나고 돈을 벌어야 해서 약국에 갔는데 조제를 시키더라. 그땐 그냥 시키는 대로 했는데 일을 그만둔 이후 약국을 못 간다”고 했다. 약사가 약을 조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약국 처방을 받을 때마다 인터넷으로 미리 약의 이름과 모양·색깔을 확인해 약을 받아온다든가, ‘카운터’ 가능성이 아예 없는 ‘1인 약국’을 찾아다닌다는 이도 있었다.

현직 약사라고 신분을 밝힌 이들의 고백도 있었다. 약국을 운영한다는 누리꾼 ‘남자답게’는 “많은 약국이 불법 조제를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도 현 제도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조제실 투명 개방, 차등수가제, 약국보조원, CCTV 설치 의무화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조제실 투명 개방에 대해 약사회는 “‘카운터 알바’의 문제를 인정하지만, 조제실은 약사 이외에는 불가침 공간”이라며 사실상 ‘불가’하다는 뜻을 취재 과정에서 밝힌 바 있다.

보건의료 전문지 의 기사를 보면, 국내에도 조제실 전면을 투명하게 개방한 사례가 있다. 최근 일부 약국에선 조제 과정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부분 투명창을 쓰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약국을 운영한다는 한 약사는 과의 통화에서 “일본의 경우, 약사법으로 조제실 내부 공개를 강제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높은 수가 체계로 인한 시설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에선 법률이 만들어져도 이미 시설을 갖춘 기존 약국을 일일이 단속해 조제실을 투명화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므로, 조제실을 개방하는 약국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조제 과정 투명화를 확산해볼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조제실 투명화? 약국보조원 제도?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도입한 ‘약국보조원’ 제도는 어떨까? 약국보조원은 일정한 기간(프랑스의 경우 2년) 조제 교육을 받고, 이후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약국에서 조제 업무를 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국내 일부 약사들도 “조제가 더 간단한 업무로 바뀌고 있는 만큼, 정식 보조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교적 단순한 업무인 조제를 숙련된 보조원에게 맡기고, 약사는 복약지도·상담 등 더 전문적인 업무에 집중하는 게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는 논리다.

그러나 당장 국내에는 약국보조원을 양성할 체계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제도가 있다 해도 영세한 약국들의 경우 ‘또 다른 카운터 알바’를 구할 가능성이 있다. 약국보조원이 늘어나면, 근무약사(약국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약사) 자리가 줄면서 결국 약사들의 수준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약사들은 “약국보조원이 생기면, 1인 약국은 서서히 줄어 자본에 따라 움직이는 대형 약국 체제로 변할 수 있다. 동네 약국이 사라지면 피해는 결국 일반 시민들이 받게 된다”고 지적한다.

현실적 해결책으로 현행 ‘차등수가제’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차등수가제는 약사 한 명이 하루 75건 이상 조제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정한 조제료 100%를 받고, 그 이상은 비율에 따라 조제료를 낮춰 차등화하는 제도다. 76~100건은 애초 조제료의 90%, 101~150건은 75%, 151건은 50%로 책정돼 있다. 차등수가제를 대폭 강화하면, ‘카운터 알바’를 고용해 조제 건수를 늘려도 약사의 수익이 크게 늘어나진 않게 된다. 이를 통해 ‘가짜 약사’의 실효성이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차등수가제는 의약분업 문제와도 복잡하게 연계돼 국내 의료 체계 전반을 흔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관련 보도 뒤, 강서구 약사회는 7월27일부터 이틀 동안 무자격자 조제 행위, 약사 가운 착용 등 자율 점검을 했다. 보건복지부도 약국의 실태 점검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찬휘 대한약사회 회장은 사과 담화문에서 “국민 여러분에게 직접 신고를 받고, 그 신고에 의거한 자체 조사와 함께 모든 기구를 가동해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약국을 이용할 수 있는 풍토를 가꿔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국 약국의 위생 상태, 근무자 관리 실태도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정 선언했으나 대안은 어디에

담화문이 나온 때와 비슷한 시기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연락이 왔다. “기사에 등장하는 약국을 조사하려고 한다. 해당 약국명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카운터 알바를 쓰는 약국 3곳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3일이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카운터 알바를 구하는 약국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불법 영업 약국을 막고 이들을 지도·감독해야 할 공단은 제구실을 할 수 있을까?

배지현 교육연수생 creativebjh@naver.com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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