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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기러기’ 엄마는 ‘난민’

근육이 점점 소실되는 ‘선천성 근병증’ 앓는 딸 위해 치료 이주 떠난 엄마와 딸… 아빠는 생이별에 가슴앓이
등록 2016-06-08 16:02 수정 2020-05-03 04:28
연재  순서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프롤로그 -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1부 부모
① 엄마의 어깨

② 재활난민
*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선천성 근병증’을 앓는 채원이의 치료를 위해 엄마는 남편과 함께 살던 주거지 전북 군산을 떠나 경기도 광주에서 6개월 ‘치료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혼자 군산에 남은 아빠(오른쪽)는 최근 아침 6~7시에야 겨우 잠을 이루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선천성 근병증’을 앓는 채원이의 치료를 위해 엄마는 남편과 함께 살던 주거지 전북 군산을 떠나 경기도 광주에서 6개월 ‘치료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혼자 군산에 남은 아빠(오른쪽)는 최근 아침 6~7시에야 겨우 잠을 이루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전북 군산 소룡동 작은 골목길 단독주택 1층. 이승민(38)씨는 매일 저녁 8~9시께 퇴근해 집 현관문을 열고 10여 발자국을 걸어 TV 앞으로 간다. TV를 켠다. 적막한 집에서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TV를 켜는 것이다. 집에는 방 두 칸, 부엌과 거실이 있지만 그는 욕실과 TV 앞에 놓인 소파 언저리만 오간다. 부엌에 들어가지 않은 지 10일이 넘었다. 저녁은 주로 밖에서 사온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운다.

깡총깡총 뛰지 못하는 5살 채원이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작은 골목길 안 다세대주택 반지하. 저녁 8시30분~9시, 딸아이 채원이가 잠들고 나면 엄마 강지은(33)씨도 TV를 켜고 맥주 한잔 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자정이나 새벽 1시까지 TV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여러 생각에 빠진다. 처음 와보는 수도권 도시에서 강씨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객지 생활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강지은씨와 이승민씨는 5살 채원이의 엄마, 그리고 아빠다. 2001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났고, 무던하고도 길게 7년 동안 연애했고, 2008년 결혼했다. 결혼하고 금방 아이를 갖고 싶었다. 3년 만에 예쁜 딸아이가 생겼다. 아빠는 한자사전을 펴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채색할 채, 수놓을 원. 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하고 수놓으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줬다.

예쁘게 자라던 채원이는 걷기 시작하면서 부쩍 다리에 힘이 없었다. 잘 넘어졌다. 넘어지면 다른 아이들은 무릎이 까지는데, 채원이는 유독 얼굴을 다쳤다. 몸이 약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성장하면서 고개를 잘 가누지 못해 목이 툭툭 떨어지는 채원이를 발견했다. 계단을 오르내리지도 못했다. 깡총깡총 뛰지도 못했다. 세 돌이 지난 2014년 8월, 전북대병원에 갔다. 의사는 몇 분 보자마자 서울대병원에서 검사받도록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근전도검사를 했다. 전류가 흐르는 긴 주삿바늘이 3살 채원이의 양 다리 근육 깊이 들어갔다. 전신마취를 했는데도 깨어났는지 채원이가 격렬하게 울었다. 엄마는 너무 긴 바늘에 깜짝 놀랐다. 아빠는 차라리 내 팔다리를 잘라갔으면 했다.

근전도검사와 이어진 조직검사를 통해 알게 된 채원이 병명은 ‘선천성 근병증’이다. 근육이 몸에서 점점 빠져나가는 병이다. 운동과 치료를 통해 근육을 채워줘야 한다. 너무 많은 운동도 근피로도를 높여 근육 소실을 불러올 수 있다. 적절한 운동치료가 평생 필요한 병이다. 원인은 물론 완치 방법도 발견하지 못한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선천성 근병증이 무서운 이유는 호흡기관을 구성하는 근육에 문제가 잘 생겨서 호흡기 질환이 합병증으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돌 무렵부터 채원이가 폐렴에 자주 걸려 1년에 서너 차례 입원한 것도 선천성 근병증 때문이었다.

의사는 엄마에게 채원이가 언제 호흡장애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사서 사용법을 익혀둬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 걷지 못하게 될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말도 진료 때마다 들어야 했다

소아 낮병동 하루 6시간 주 5일 치료

채원이는 경기도 광주의 한 재활병원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재활치료를 받는다.

채원이는 경기도 광주의 한 재활병원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재활치료를 받는다.

내버려두면 근육이 소실돼 아예 걸을 수 없게 되는 채원이는 지금 경기도 광주 한 재활병원 소아 낮병동에서 하루 6시간씩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5월31일에도 여느 때처럼 오전 9시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오전 9시 물리치료, 9시30분 작업치료, 10시 자전거타기(기구치료), 10시30분 상지도수치료, 11시 심리치료(미술·음악 치료), 낮 12시 수중치료, 1시 작업치료, 1시30분 물리치료. 2시30분 물리도수치료까지 모두 9가지 치료를 약 6시간 동안 받는다. 재활치료 이후 넘어지지 않고 비교적 잘 걷게 된 채원이는 요즘 고개 조절, 상체 몸통의 근력 조절 치료를 받고 있다.

엄마는 채원이의 치료가 끝나면 다음 치료 장소로 옮겨줘야 한다. 30분 주기로 치료 방법이 바뀐다. 오가는 시간을 제하고 20여 분 동안 대기하는 일상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 5일 이어진다.

집중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채원이와 엄마는 전북 군산에서 경기도 광주로 왔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반지하 투룸을 얻어 살고 있다. 치료가 끝나면 병원에서 10분 거리인 집으로 오고 다음날 오전 8시40분께 다시 병원으로 출발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이른바 ‘재활 난민’이다. 2014년 10월 선천성 근병증 진단을 받은 뒤 전국의 소아 재활치료 시설이 있는 병원을 검색했다. 군산에는 사설 치료기관을 제외하고 관련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그나마 군산에서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대전으로 갔다. ‘난민 생활’의 시작이었다.

전국적으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동은 장애아동을 기준으로 20만 명인데, 소아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 수는 턱없이 못 미친다. 김종명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정책분과장(가정의학과 의사)은 “소아 재활치료의 경우 물리치료사·음악치료사·미술치료사·작업치료사 등이 일대일 방식으로 치료해야 하고 장비도 많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며 “그러나 성인에 비해 환자가 적고 의료수가도 현저히 낮다보니 치료를 할수록 적자가 난다. 그러니 전문 치료기관이 부족하고 병원들은 수요만큼 치료 설비나 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건양대병원 박창일 의료원장도 지난해 열린 ‘어린이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어린이 재활치료는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때 더 효과가 있다. 포괄적 재활치료가 필요하지만 현재 의료보험제도상 치료수가로는 병원 경영이 어려워 민간 병원에서 어린이 재활병원을 설립해 운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전문재활병원만 놓고 보면 일본에 180곳, 독일에 140곳이 있지만 한국에는 지난 4월 문을 연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1곳이 전부다.

이 때문에 소아재활치료센터가 있는 병원의 경우 대기자가 많다. 대기자는 많고 병상을 무제한 늘릴 수 없다보니 치료 기간을 3~6개월로 제한한다. 채원이네도 지난해 대전 충남대병원에서 3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면 퇴원해야 했다. 이어서 예약해놓은 또 다른 민간병원에서 6개월 입원치료를 했다. 이곳도 역시 6개월이 지나면 나가야 했다. 다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군산에서 두어 달 지내다 지난 2월 광주로 ‘치료 이주’를 왔다.

병원 없어 ‘재활 난민’ 양산하는 의료 현실

아빠의 유일한 낙은 딸 채원이와 영상통화를 하는 일이다.

아빠의 유일한 낙은 딸 채원이와 영상통화를 하는 일이다.

채원 엄마는 “3개월 단위로 병원을 옮겨다녀야 하고 다음 치료받을 곳을 찾아다녀야 하는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아빠는 채원이가 치료를 쉬다 다시 또 악화되는 게 걱정이다. “지난해에도 대전에서 6개월 치료받은 뒤 군산으로 내려왔다. 군산에는 적절히 치료받을 의료시설이 없어서 비싼 사설 치료기관에 다녔는데 걷는 능력 등이 현저히 나빠지는 게 눈에 보였다.”

딸 채원이와 아내가 ‘재활 난민’ 생활을 하면서 아빠 이승민씨는 ‘기러기 아빠’가 됐다. 아이가 아프면 ‘기러기 아빠’의 마음도 아프다. “불면증이 심해졌어요.” 6월1일 군산에서 만난 이승민씨가 말했다. “어제는 근래 들어 제일 일찍 잤어요.” 잠든 시간은 새벽 4시30분이었다. 그보다 하루 전에는 아침 6시30분, 그 하루 전에는 아침 7시에 잠들었다. 잠을 청하려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켰던 TV를 껐다가도 적막함이 싫어 다시 켠다. “사람 소리, 생활 소음이 필요해서요.”

아빠는 걱정이 많다. 경기도 광주에서 재활치료에 들어가는 병원비만 한 달에 150만~180만원이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제외하면 모두 비급여 항목이어서 병원비가 많다. “어릴수록 치료 효과가 좋다고 하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많이 치료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아빠의 마음이다. 미용재료 납품 영업을 하는 그의 한 달 수입은 매달 다르지만 200만원이 안 된다.

아빠는 원래 미용사였다. 18년간 해왔다. 2009년에는 미용실을 열고 직접 운영했다. 그러나 채원이가 폐렴 등으로 입원하기 시작하면서 가게를 비워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2014년 3월 가게 문을 닫고 미용사로 취직했다.

2014년 여름, 채원이 병을 진단받기 위해 한 달에 두어 차례씩 서울을 오가면서 하루 종일 가게를 지켜야 하는 미용사 일을 지속할 수 없었다. 채원이 돌 지나고 보험설계사를 시작했던 엄마도 아이의 병을 진단받은 뒤부터 일을 할 수 없었다. 아빠의 일자리가 불안하고 엄마는 일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병원비가 늘어나자 2014년 4천만원의 빚이 생겼다.

온종일 고정적으로 가게에 있어야 하는 미용사 대신 찾은 밥벌이가 미용재료 영업이었다. 일종의 자영업이어서 수입은 들쭉날쭉하고, 광주로 가면서 병원비·주거비 등이 더 들어 빚은 2년 만에 6천만원으로 늘어났다.

어떻게 하면 부채를 더 늘리지 않고 채원이 치료를 지속할지, 2년 뒤 초등학교는 어디로 보내야 할지, 당장 ‘치료제한기간 6개월’이 끝나는 8월이면 또 어디서 치료받아야 할지 아빠의 고민은 끝이 없다. 그러다보면 잠이 찾아올 틈이 없다. 해가 뜨는 아침 6~7시쯤 겨우 잠들어 2시간 정도 잠깐 눈 붙이고 미용실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께 영업에 나선다.

말수가 적은 아빠 이승민씨는 지난주 처음으로 아내에게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침 7시였다. “그냥 내려오면 안 되냐”고도 했다. LH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3500만원을 받아 지난 2월 새 집으로 이사오자마자 집을 떠나 객지 반지하에서 생활하는 아내와 딸이 처량했다. 내내 TV소리만 끼고 살아야 하는 자신도 처량했다. “마음이 많이 약해졌나봐요. 채원이 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자꾸 보고 싶은 마음에 그런 말을 했어요.” 이씨가 계면쩍어하며 말했다.

아빠는 채원이가 군산에 내려올 때만 기다린다. 버스 타고 3시간 넘는 거리여서 채원이가 힘들어하는 터라 두어 달에 한 번씩만 내려온다. 그래도 이달에는 6월6일 연휴가 있어 5월5일 연휴에 이어 한 달 만에 아내와 딸이 온다. “매일 저녁 채원이랑 영상통화할 때, 채원이가 내려올 때만 기다리죠.” 하루 종일 딸이 보고 싶다는 아빠가 TV를 앞에 두고 말했다.

딸 걱정, 가계 걱정에 잠 못 드는 밤들

아픈 아이를 둔 ‘기러기 가족’은 채원이네뿐만 아니다. 지난해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의료비를 신청한 103가구 가운데 26가구가 아이 치료를 위해 서울 등 대도시 병원을 이용하고 있었다.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치료 난민’ 생활을 한다는 말이다. 아빠 이승민씨는 “지방에서도 격차 없이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경기도), 군산(전북)=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0~15살(현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의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책임지자'는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정책 실현이 되기 전까지 아픈 아이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큰 가족들을 만나고 도움이 시급한 가정과 그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호~호~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생명을 모금에 의존하는 현실'을 바꾸기 전까지 역시 또 '모금'을 해야 하는 모순된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후원은 '호~호~펀드'를 통해서 직접 하실 수도 있습니다.
*후원 계좌: 농협중앙회 10573964784416 (예금주 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1588-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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