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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틈이 어디 있어요”

‘선천성 단장증후군’ 앓아 하루 20시간 호스를 매달고 사는 다솜이 엄마 이연숙씨… 국가가 외면한 치료비 ‘모금’에 기댈 수밖에 없는 까닭
등록 2016-05-25 17:38 수정 2020-05-03 04:28
연재  순서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프롤로그 -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1부 부모 ① 엄마의 어깨
*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 4시간 유치원 갈 때를 제외하고 다솜이는 늘 엄마와 지낸다. 엄마는 다솜이를 치료하고, 돌보고, 교육하는 일이 삶의 전부다. 사진작가 최남용

하루 4시간 유치원 갈 때를 제외하고 다솜이는 늘 엄마와 지낸다. 엄마는 다솜이를 치료하고, 돌보고, 교육하는 일이 삶의 전부다. 사진작가 최남용

다솜(5)이는 오후 내내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엄마 이연숙(36)씨는 그런 다솜이를 시야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5월18일 오후 4시. 베란다 방충망 사이로 보이는 놀이터에는, 어린이집에서 빠져나온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놀이터 엄마’들은 아이들 간식거리를 벤치에 놓고 수다꽃을 피웠다. 이르게 찾아온 초여름 날씨, 청청한 하늘 아래 놀이터의 흔한 풍경을 다솜이와 엄마는 가만히 내려다봤다.

9평 아파트에서 20시간 생활하는 모녀

베란다 밖을 내다보는 다솜이의 왼쪽 가슴에는 긴 호스가 연결돼 있다. 쇄골하정맥을 통해 특수영양제 티피엔(TPN)을 직접 주사하는 호스다. 다솜이는 ‘선천성 짧은창자증후군’을 앓고 있다. 다솜이의 소장 길이는 35~40cm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어른의 소장 길이는 6~7m다. 아이들도 건강을 유지하려면 소장 길이가 적어도 1m는 돼야 한다.

소장이 짧으면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는다. 다 토해내거나 설사로 흘러나온다. 영양분은 몸으로 흡수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솜이는 음식을 먹는 대신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동안 호스를 통해 혈관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줄에 매여’ 사는 이유다.

다솜이가 하루 20시간 호스에 ‘매여’ 있으니 엄마도 그 옆에 ‘매여’ 있다. 둘의 공간은 지난해 12월 운 좋게 당첨된 경기도 하남시 LH 임대아파트 한 칸이다. 9평(29.9m²)짜리 이 집에 살게 되어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보증금 1천만원에 관리비와 월세로 20만원이 들어간다.

치료를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2012년부터 다솜이와 엄마는 계속 서울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다. 그때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가 30만원이었다. 지금보다 10만원을 더 내며 살았지만, 햇빛이 들지 않았다. 늘 쿰쿰했다. 유리문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누군가 문을 쿵쿵 두드리면 다솜이는 놀라 숨고, 엄마는 덩달아 가슴이 내려앉았다. 작은 지하방에 모녀가 웅크리고 살았다. 그때에 비하면 베란다가 있고 햇빛이 드는 ‘9평 아파트’는 궁전이다.

항해사였던 다솜이 아빠는 2011년 4월 다솜이가 태어날 당시 항해 중이었다. 다솜이가 치료를 위해 서울 병원에 왔을 때는 ‘아픈 아이를 보는 게 힘들다’는 이유로 병원에 오지 않았다. 다솜이의 첫 생일은 엄마와 다솜이, 둘이서 병원에서 치렀다. 아이는 아프고, 돈은 계속 들어갔다.

“임신 8개월 때, 다솜이 장이 부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경제적 문제가 생길 것이고 우리는 분명 싸우게 될 거다, 서로 걱정을 많이 했죠.” 예감은 현실로 이어졌다. 부산 집 보증금 5천만원 중 3천만원은 병원비로 금방 소진됐다. 2천만원은 서울 집을 구하고 월세 내는 데 썼다. 돈은 계속 들어가는데 남편의 일은 고정적이지 않았다. 다툼이 이어졌다. 부부는 2014년 이혼했다. 남편은 그 뒤로 연락이 닿지 않는다.

돈 버는 사람은 없고,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도 없어졌다. 엄마는 이제 홀로 아이를 돌봐야 한다. 다솜이의 치료비도 마련해야 한다. 호구지책도 세워야 한다. 두 성인이 건강한 아이 하나를 제대로 키워내는 일에도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세상은 말한다. 두 성인이 아픈 아이 하나를 키워내는 일은 오죽할까. 마을도, 국가도 방관하는 사이 아픈 아이가 있는 가정은 여럿 무너졌다.

아이가 아프자 무너지는 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이 2015년 1월~2016년 3월 어린이재단에 중증질환을 앓는 아동 의료비·생계비 도움을 요청한 103가구를 분석한 결과, 그중 31가구가 한부모가정이었다. 이 가운데 21가구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이었다. 돌봄을 나눌 사람이 없어 엄마가 일할 수 없는 다솜이네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한 달에 받는 기초수급비 80만원 가운데 20만원은 월세와 관리비로 나간다. 매달 들어가는 최소한의 의료비는 다솜이가 생명을 이어갈 TPN 주사비 110여만원이다. 식비, 교통비, 통신비, 연 네댓 차례 발생하는 입원치료비 등을 고려하지 않아도 이미 적자다.

다솜이는 갑자기 몸무게가 줄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짧은창자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의 경우, 영양공급이 안 되면 사망으로 이어진다. 지난 2월에도 다솜이 몸무게가 13kg대로 떨어져 3주간 병원에 입원해, 겨우 14kg으로 끌어올렸다. 그래봐야 4살 아이 평균 몸무게다.

이 모든 치료비는 다 ‘제값’을 내야 한다. 선천성 짧은창자증후군은 ‘4대 중증질환’ 산정특례 질병이 아니다. 산정특례 질병이 되면 적어도 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이 10%다. 특례 질병이 아니면 입원 본인부담금은 20%, 외래 본인부담금은 30~60%에 이른다.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이 병이 왜 ‘산정특례 코드’ 하나 받을 수 없는지 엄마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주민센터, 구청은 물론이고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와대 신문고 등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편지를 쓰고 부탁하고 따졌다. 바뀐 것은 없었다. 아픈 딸아이를 치료하고, 교육하고, 제대로 길러내며, 자신의 삶까지 무너뜨리지 않아야 하는 모든 책임이 다솜 엄마 이연숙씨 두 어깨에 무겁게 얹혀 있다.

“엄마로서 내 딸을 살려야 할 책임”
다솜이는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동안 특수영양제를 맞기 위해 호스를 매달고 9평 집 안에서만 지내야 한다. 사진작가 최남용

다솜이는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동안 특수영양제를 맞기 위해 호스를 매달고 9평 집 안에서만 지내야 한다. 사진작가 최남용

치료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결국 도움을 요청하는 일 말고 없었다. 이씨는 아동복지 전문 민간기관을 찾았다. 기관과 연계돼 2014년 KBS 모금방송에 나갔다. 2015년에는 SBS, 올해는 MBC에서 모금방송을 했다. 그렇게 해서 하루 4만5천원~5만원, 한 달이면 120만원이 들어가는 TPN 주사 비용을 비롯해 한 달에 두 번 해야 하는 혈액검사·정기검진 등 각종 병원비를 마련했다.

사생활이 방송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연숙씨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살면서 나쁜 일 한 것도 없어요. 내 얼굴 방송에 나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아요.” 이연숙씨에게는 ‘엄마’가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직업이자 정체성이다. “엄마로서, 내 딸을 치료하고 살려야 할 책임이 있어요. 지금 내가 어디 가서 돈을 벌 수도 없잖아요. 다솜이 봐야죠.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솜이다. 최근 아동구호 전문기관 등과 연계해 소장 이식 수술비용 1억여원을 마련하기 위해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소장이식술은 면역거부반응 등 여러 위험이 있고 국내에서 아직 많이 시행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TPN을 공급하는 주삿바늘과 호스를 달고 사는 일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의료진은 말했다.

엄청난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엄마는 열심히 구호기관을 알아보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솜이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 어렵다. “다솜이는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엄마가 자기 이야기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말을 안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다솜이가 조금 더 자라면 엄마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어요.”

엄마는 국가가 외면한 치료비를 ‘온정’과 ‘행운’에 불안하게 기댄 채, 하루 20시간을 다솜이와 보낸다. “하루 20시간 둘이 집 안에만 있다보니 이 안에서 다솜이에게 뭘 보여줄 수 있을지, 뭐하고 놀고 뭐하고 웃을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함께 웃을 수 있을까

인형놀이, 색칠공부, 스티커놀이, 찰흙놀이, 그림책읽기 등 온갖 놀이를 다 해도 해는 지지 않는다. 고민하다 엄마는 친구가 없는 다솜이를 위해 달팽이 두 마리를 들여왔다. 달봉이, 달순이라 이름 붙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흙을 갈아준다. 비를 좋아하는 달팽이를 위해 미지근한 샤워기 물로 ‘비 오는 날’ 재연도 한다. 달봉이·달순이 밥으로 상추를 넣어주는 일은 다솜이 몫이다. 화장실 옆 작은 어항에는 물고기 10여 마리가 산다. 물고기 밥 주는 일도 다솜이 몫이다. 다솜이가 어항 근처로 오면 물고기들이 밥 주는 줄 알고 모여든다. 엄마와 딸은 그 모습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

줄에 ‘매여’ 지내지만 집 안에서나마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엄마는 호스 다섯 개를 테이프 등으로 연결해 긴 줄을 만들었다. 다솜이는 긴 호스 덕에 베란다에서 화장실까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엄마가 마련해준 ‘작은 자유’다.

다솜이가 먹지 못하므로 엄마는 먹는 일에 관심이 없다. 다솜이는 아침과 저녁으로 누룽지물 150cc, 점심에는 특수분유 50cc를 마신다. 엄마는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냄비밥을 한다. 조금 태워서 누룽지를 만들고, 밥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밥할 때 찌개도 많이 끓여 냉장고에 넣어둔다. 끼니때가 되면 엄마는 냉장고에서 밥과 국을 꺼내 전자레인지로 데워 후루룩 말아 먹는다. 누룽지물을 끓일 필요가 없을 때는 주로 라면으로 때웠다. 엄마 말고는 친구가 없는 딸을 위해 밥하고 설거지하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TPN을 맞지 않아도 되는 하루 4시간. 이 시간은 올해 6살이 된 다솜이가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이다. 다솜이는 지난 3월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침 8시30분, 다솜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와 9시까지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다솜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점심을 먹지 못해 12시에 데려온다. 어차피 유치원에 있는 시간은 4시간을 넘을 수 없다.

5월19일 오전 8시30분, 주사를 뺀 다솜이가 가느다란 다리로 아파트 현관에서 뛰어나왔다. “다솜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주사기를 빼는 시간.” 다솜이가 망아지처럼 뛰었다. 베란다로 내다보던 바깥세상에 직접 나서는 시간이다.

서른여섯 엄마는 벌써 흰머리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난 오전 9시부터 11시30분까지 2시간30분은 ‘엄마만의 시간’이다. 다솜 엄마는 휴대전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벤트할 때 100원을 내고 내려받은 흘러간 ‘최신가요’를 들으며 집으로 간다. 엄마의 유일한 낙이다. 집에 가면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듬뿍 타서 다솜이를 다시 데리러 갈 11시30분까지 천천히 마시며 청소를 한다.

외롭지 않은지 물어보았다. “다솜이가 이러고 있는데 외로울 틈이 어디 있어요.” 엄마가 말한다. 답답하지 않은지 물어보았다. “어른인 저도 답답한데 저 녀석은 어떻겠어요.” 엄마가 말한다. 다솜이의 시간까지 함께 사는 엄마의 시간은 두 배로 흘러가는 모양이다. 서른여섯 이연숙씨의 앞머리에는 벌써 흰머리가 가득하다. 아이에게 흰머리를 보이지 않으려고 연숙씨는 머리를 새카맣게 염색했다. 엄마의 유일한 치장이다.

엄마의  편지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우리 딸 다솜.
태어나자마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해야 했고 수차례 감염으로 수술대에 많이 올라갔던 내 딸 다솜. 선천성 단장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는 믿기 싫었지. 먹지 못해서 먹어도 소화·흡수가 되지 않는 병. 그래서 결국 의사선생님 말에 엄마는 그냥 울고만 있어야 했지.
아기 때 갈수록 우유를 안 먹으려는 너에게 이것저것 시도를 하는데 그 작은 눈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우유 먹기 싫어요” “속이 안 좋아요”라고 보내는 네 눈빛을 잊을 수 없어.
계속되는 구토와 잦은 설사가 널 얼마나 힘들게 했겠니. 서울로 와서도 좋은 일이 생겨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소장을 이식받아야 한다는 말에 엄마는 가슴이 내려앉아버렸어.
6살이 된 너에게 생일 때 미역국 국물만 먹이는 게 너무 속상하다. 아직도 영양제를 맞고 살고 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밝게 웃어주는 딸 다솜이가 있어 엄마는 힘들어도 버틸 수 있어.
다솜아 우리가 이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소장 이식 잘돼서 맛있는 집만 찾아다녀보자.
엄마의 소원은 다솜이가 맛있는 음식 잘 먹는 거야. 그리고 엄마가 맛있는 것만, 몸에 좋다는 음식만 만들어주고 싶어.
다 나으면 네가 좋아하는 동물도 키우고 살자.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딸 사랑해.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0~15살(현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의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책임지자'는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정책 실현이 되기 전까지 아픈 아이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큰 가족들을 만나고 도움이 시급한 가정과 그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호~호~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생명을 모금에 의존하는 현실'을 바꾸기 전까지 역시 또 '모금'을 해야 하는 모순된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후원은 '호~호~펀드'를 통해서 직접 하실 수도 있습니다.
*후원 계좌: 농협중앙회 10573964784416 (예금주 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1588-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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