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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마음으로 하겠다”

‘어린이 병원비 걱정 제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발의한 윤소하 정의당 의원 “국민의 삶 살피는 민생·진보 정책 추진하는 것이 정의당의 몫”
등록 2016-06-15 17:05 수정 2020-05-03 04:28
아이슬란드 99.2%, 네덜란드 98.7%, 스웨덴 98.3%, 체코 96.9%, 슬로바키아 95.1%, 폴란드 94.7%, 덴마크 94.4%, 노르웨이 94.2%, 에스토니아·프랑스 93%, 일본 90%.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 가입국의 입원진료비 국가 보장 수준이다. OECD 평균은 85.8%. 한국은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59.8%다. 100점과 1등을 좋아하는 나라지만 60점도 못 받았다.
큰 병에 걸린 사람이 의술이 없어서 사망하는 게 아니라,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경제적·심리적 토대가 무너지고 삶이 무너지는 것은 ‘근대국가’가 들어선 이래 있어서는 안 되는 매우 후진적인 일이다. 그러나 입원진료비 보장률 59.8%, 전체 의료비 보장률 55%(OECD 평가 기준)라는 낮은 보장 수준을 가진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과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는 우선 0~15살 아이들부터라도, 또 전체 의료비가 아니라 더 중한 입원진료비부터라도 국가가 책임지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정의당이 팔을 걷어붙이고 이 문제를 가장 먼저 받아안았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6월9일 서울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아픈 아이를 둔 부모를 만나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것처럼 아픈 아이들의 병원비도 국가가 부담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다른 야당들이 처음에 관심을 갖다가 무상의료가 야기하는 과잉 복지 논쟁이나 정치적 고려 때문에 뒤로 빠져버렸지만, 정의당이 총대 메고 국회 안에서 꼭 제도화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복지국가 연구자 에스핑 안데르센은 말했다. “복지국가는 정치가 낳은 아이이며, 정치의 미래이기도 하다.” 정치가 어떤 전략을 수립해서 이행하느냐에 따라 ‘복지국가 시대’가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20대 국회가 시작됐다. 20대 국회는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 ‘아이를 살리는’ 제도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취재 박수진 기자, 사진 김진수 기자, 편집 정환봉 기자, 디자인 장광석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삶의 현장을 국회로 잇겠다.” “현장을 배워야 한다.”

0~15살 아이들의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보장하게 하는 ‘어린이 병원비 걱정제로법’(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의원실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가장 많이 꺼낸 단어는 ‘현장’이었다. 정의당 비례대표 4번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그는 전남 목포를 기반으로 ‘현장’에서 30년 동안 잔뼈가 굵었다.

2010년 목포에서 전국 최초로 무상급식조례안을 주민발의로 제정했고, 목포 장애인 시설인 농아원의 비리·폭력 사건 진상 해결에도 앞장섰다. 조선소 노동자의 체불임금 등 하청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해 분주하게 뛰었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전남 진도 팽목항을 드나들며 지금까지 주검을 수습하지 못한 가족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윤 의원은 30년 동안 목포를 기반으로 ‘현장’의 많은 사안에 발을 담갔다. 20대 국회에서는 정의당의 보건복지 정책 총괄 역할을 맡았다. 그 첫 번째 임무가 ‘어린이 입원진료비 국가책임제’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6월7일 초선 의원 윤소하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이가 아프면 공동체가 아프다” 정의당이 6월7일 ‘정책미래내각’을 출범시켰다. 여기서 국민건강복지부 본부장을 맡았는데 어떤 일을 할 건가.

정의당은 소수당이다보니 국회의원이 되면 상임위 중심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의정활동이 그 의원만의 성과가 아니라 당의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의원을 중심으로 한 내각을 꾸렸다. 노동, 국민건강복지, 외교안보, 생태에너지, 청년미래, 중소상공인 등 6개 부처가 있는데 국민건강복지부는 ‘건강권의 평등성’을 위해 뛸 것이다.

우선 세 가지 과제가 있다. 현재 지역가입자의 77.7%가 연소득 500만원 이하임에도 불합리한 평가소득 인정으로 과다한 건강보험료를 내는 등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에 문제가 있어 이를 해결해야 한다. 또 0~15살 어린이 병원비 중 입원진료비 국가 보장, 노인의 틀니·임플란트 본인부담률 인하가 주요 과제다.

앞서 말한 세 과제 중에서도 ‘어린이 병원비 국가책임제’를 자신의 첫 번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유는 뭔가.

이 던진 화두 ‘아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는 대단히 상징적이라고 본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아프면 가족만 아픈 게 아니라, 내 이웃이 아프고 나아가 공동체가 아픈 것이다. 아이가 아프면 결국 공동체가 깨지는 것이다. 그건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어린이들이 의료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해결하는 것은 내가 하려는 정치와도 관련 있다. 예비후보 때부터 기자들이 물어보더라.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요?’ 나는 항상 서슴없이 ‘어머니요’라고 답했다. 좀 뜨악해하더라. 김대중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데….

내가 ‘어머니’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아버지보다 훨씬 정치가다. 어머니는 50살, 60살 먹은 아들한테도 가장 먼저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가족의 삶을 살피는 것이다. 정치가도 국민이 어디 아픈지 밥은 잘 먹었는지 살펴야 한다. 가족공동체의 어머니 같은 품성을 정치 지도자가 가져야 한다. 어머니의 정치를 하겠다.

정치 무대는 삶의 현장소수정당인 정의당의 입지로는 법안 통과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나.

나는 30년 동안 현장에 있었다. 그때 느낀 게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현장을 정치로 이어가는 방식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2010년 전국 최초로 목포에서 주민발의 무상급식 조례를 만들었다. 목포시민 1만480명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까지 적어 조례안 발의에 서명했다. 이걸 위해 골목골목을 누볐다. 그때 몸으로 깨친 점이 복지 문제가 위에서 정책을 만들어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복지 요구를 위로 전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시민들도 ‘정치의 맛’을 느낀다.

‘어린이 병원비 국가책임제’ 법안도 일단 발의는 했지만 다시 입법청원 서명운동을 벌일 것이다. 시민들이 서명한 법안이 통과되게 하는 ‘정치의 맛’을 느끼게 하고 싶다. 시민들의 뜻은 거대 야당 등 다른 정당을 압박할 것이다.


<i>“부모가 병원비 걱정 없이 아픈 아이 치료에만 전념하게 하는 법인데 정치인이 어떤 명분으로 반대하겠는가.”</i>
그래도 다른 정당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도 이 정책에 관심 있는 의원이 소수지만 있다. 그들을 중심으로 공동토론회를 열어 이슈를 확장할 것이다. 게다가 이 정책은 ‘과잉 복지’ 논란이 있을 수 없는 사안이다. 일단 예산이 5152억원밖에 들지 않는다. 2015년 8월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 흑자가 16조6천억원이다. 여기서 3%만 투자하면 된다. 또한 예산 규모를 줄이기 위해 대상 연령을 의무교육인 중학생 연령 만 15살로 했다. ‘무상의료’가 아니라 대상을 제한한 ‘어린이 병원비 걱정 제로’ 정책이다. 부모가 병원비 걱정 없이 아픈 아이 치료에만 전념하게 하는 법인데 정치인이 어떤 명분으로 반대하겠는가.

예방의학적 측면에서 보면 장기적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건강 격차는 성인기·노년기의 건강 격차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 보면 모든 어린이의 건강권을 소득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보장하는 것이 미래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노동·청년 등 정의당이 강점을 가진 이슈가 아닌 새로운 의제 설정으로 보인다. 제3당의 이니셔티브까지 뺏긴 상황에서 ‘민생 정책’으로 정의당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돌파구인가.

요즘 어딜 가나 ‘존재감’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당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3당’의 역할을 온전히 하고 있는가. 국민의당은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거대 양당을 견제하고 새로운 정치 대안 세력으로서의 ‘제3당’은 아니다. 결국 지금 정의당에 요구되는 역할은 선명 야당, 진짜 민생 정당이다. 진보 정책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의 본령을 회복하고 확장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어린이 병원비 걱정 제로’는 진보정치의 본령을 회복하는 정책이다. 계급 문제를 떠나 국민의 삶을 온전히 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책임 강화해야”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상임위 활동과 관련한 입법 계획은 뭔가.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당사자와 노동자, 시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데 의정활동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린이 병원비 걱정 제로’는 대표적으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다음으로는 누리과정 재정 문제 해결,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개정을 계획하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개정한 조항인데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사업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서울시나 성남시가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데 중앙정부가 개입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더 많이 책임지고 지방자치단체는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복지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현재 거꾸로 가고 있다. 더불어 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행복하도록 사회복지사 노동권 보장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먹거리 안전성 문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 문제부터 다룰 계획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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