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1부 부모
① 엄마의 어깨
② 재활난민
③ 희망 긷는 법
④ 할머니의 마음
2부 아이
① 꿈 그리고 학교
② 형제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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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주가 좋아 네일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꿈인 13살 하은(왼쪽)이와 14살이 돼서야 동생과 같은 희귀난치성 질환 ‘아놀드키아리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 16살 미르. 엄마는 여전히 혼자 버스를 타지도, 시계를 보지도, 돈 계산을 하지도 못하는 두 딸이 제대로 자립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미르와 하은이와 엄마가 5평 남짓한 임대아파트 작은 방에 일렬로 앉았다. 맞은편에 TV가 있다. 7월13일, 세 모녀가 앉아 TV를 보는 모습 그대로 기자를 마주했다. 미르·하은·엄마는 ‘세트’다. 하루 24시간 떨어져 있을 때가 거의 없다. 미르는 16살, 고등학교 1학년 나이다. 하은이는 13살, 중학교 1학년 나이다. 하지만 학교에 갈 때도 집에 올 때도 엄마가 함께한다. 하은이는 아프고, 미르는 분리불안이 있다. 엄마가 5분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운다. 두 딸 모두 대여섯 살 유아와 다름없다.
하은이는 어릴 때부터 아픈 아이였다. 병치레가 잦았던 하은이는 6살 때 장염으로 입원했다가 척추가 휘는 척수공동증, 뇌에 비정상적으로 물(뇌척수액)이 차는 수두증, 그리고 뇌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희귀난치성 질환 아놀드키아리증후군 등을 차례로 진단받았다. 하은이는 끊임없는 두통, 요통 등에 시달렸다.
5분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 찾는 자매엄마는 이름만도 어려운 여러 병을 동시에 앓는 작은딸에게 매달렸다. 2009년 병을 진단받고 2012년 아놀드키아리증후군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 아놀드키아리증후군 탓에 나빠진 것으로 추정되는 눈을 치료하기 위한 시력교정술, 척수공동증 수술을 받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3년은 하은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하루하루 피 말리는 고통이었다. “애가 머리가 아프다고 밤낮으로 우는 거예요. 감기 걸리면 뇌압이 올라가서 밤새도록 울고, 열이 나면 또 펄펄 끓어 울고….” 아이는 아파서 울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울었다.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엄마는 고통을 말할 때 이 말을 자주 했다.
그동안 언니 미르는 ‘나 홀로’였다. 아빠도 있다. 하지만 아빠는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다. 생계를 위해 일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미르에게는 아픈 아빠보다 엄마가 더 필요했다. 엄마는 말했다. “미르는 자기 일을 알아서 딱딱딱 했어요. 제가 무슨 얘기하면 죽는 시늉까지 했던 아이예요. 말대답 한번 하지 않았어요.” 집에서 엄마가 미르에게 붙여준 별명은 ‘순둥이’였다. 순하디순한 큰딸 미르를 엄마는 믿고 의지했다.
하은이의 고통에 함께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 보내던 2012년 어느 날, 엄마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미르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잘하고 있다’고 믿고 의지하던 딸이 아닌 전혀 다른 딸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미르가 학교생활을 전혀 못한다는 거예요.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어요.” 선생님은 미르가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기초학습이 부진해 학교 공부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학교에 간 엄마는 미르가 기초학습 부진자에 속한다는 것보다 더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미르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한두 달, 혹은 1~2년 동안 벌어진 일이 아니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그랬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따돌림을 당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 받고. 어떤 애들은 발로 뼈 있는 데 차고. 담임선생님한테 이르면 일렀다고 째려봐요.” 미르는 16년 동안 살면서 가장 좋았던 때를 묻는 질문에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지금 다니는 (재활)학교로 옮겼을 때”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따돌림당한 딸미르·하은 자매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작은 임대아파트 텔레비전 앞이다.
엄마는 미르의 상황을 알고 곧바로 학교를 쉬게 하고 싶었지만, 이미 1학기가 거의 지나간 터여서 교내 특수학급으로 옮기는 것을 권유받았다. 미르는 특수학급의 기억도 좋지 않다. “선생님이 시계를 못 본다고 가방을 문 밖으로 집어던지고 나가라고 했어요.” 미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엄마에게 말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나왔어요.”
하은이가 신체적 고통을 겪는 동안, 언니 미르 역시 아팠다. 친구들의 따돌림,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 등을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채 초등학교 6년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것이다. 재활학교로 옮긴 뒤 “스트레스 안 받고 자유롭게 다니니까” 좋고 “친구도 많아서” 좋은 미르에게 여전히 마음의 상처는 남은 듯 보였다.
미르의 자라지 않는 손톱이 그 상처를 비춘다. 미르는 손톱이 자랄 틈을 주지 않고 물어뜯는다. 손톱을 물어뜯다가 더 뜯을 데가 없으면 손톱 밑 살갗까지 물어뜯는다. 진물이 나고 염증이 생길 정도로 물어뜯는다. “잠깐 조용하다 싶으면 손톱 아래 생살을 뜯고 있어요.” 엄마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열 손가락 손톱 밑을 다 물어뜯으면 그다음엔 발가락도 물어뜯는다. 1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약 처방만 계속됐다. “1년 동안 약을 먹었는데 크게 달라지는 게 없고 그렇지 않아도 미르가 먹는 약이 많아서” 지금은 정신과 약 먹는 것을 중단했다.
변비도 미르의 아픈 구석 가운데 하나다. 미르는 집 밖에서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어두컴컴한 곳이 무섭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화장실에 가두고 문을 안 열어줬대요.” 엄마가 말했다. 집 밖에선 화장실을 가지 못해 미르에게 심한 변비가 생겼다.
아이가 아프면 그야말로 모두가 아프다. 아픈 아이 당사자는 물론 형제자매도 아플 수밖에 없다. 이 아동복지 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중증질환을 앓는 아동으로 인한 의료비·생계비 도움을 요청한 103가구의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형제자매가 있는 76가구 가운데 19가구가 ‘형제자매가 분리불안, 폭력성 증대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대구에 사는 ㄱ(17)양은 한동안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켰다. 갑자기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 발병한 12살 남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엄마·아빠가 모두 서울로 가고, 집안의 모든 돈이 동생 치료비로 들어가면서 하고 싶던 미술 공부를 계속할 수 없게 된 터였다. “동생 수술, 병간호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는 동안 딸아이는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서 불도 안 켜고 라면만 끓여먹고 지냈더라고요.” 엄마는 안타까워했다.
ㄱ양은 결국 다니던 미술중점 중학교를 그만두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엄마는 “중요한 시기에 조금만 뒷바라지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당장 둘째가 아프니까, 둘째는 저러다 죽을지도 모르니까…”라며 뒷말을 흐렸다.
아픈 형제자매를 둔 아이들의 ‘마음’울산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ㄴ군은 희귀병을 앓는 동생 치료를 위해 서울에 가 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크다. 생계비를 버느라 바쁜 아빠와 둘이 생활하면서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큰아이도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지만 방법이 없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도 희귀난치병에 걸려 엄마의 관심이 동생에게만 집중되자 손목을 긋고 자살 기도를 한 아이(16)도 있었다. ‘아픈 아이’가 있는 가정에 체계적인 지원과 상담, 돌봄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아픈 아이’ 병원비를 감당하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마음이 아프고, 공부머리가 늦되다고만 생각했던 미르는 알고 보니 동생 하은이와 같은 병을 앓고 있었다. 2년 전,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미르가 심상치 않아 병원에 데려갔다. 검사 결과 미르도 하은이와 같은 아놀드키아리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날은 하은이 생일이었어요. 3월5일. 날짜도 잊을 수 없어요. 늘 하은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이번에는 미르가 입원해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하은이와 미르가 같은 병이라는 거예요. 하은이 때 했던 마음고생, 육체적 고통, 정신적 스트레스를 다시 반복해야 하나, 왜 연속으로 이러나 어이없고 기막히고….” 엄마는 지금도 미르가 하은이와 같은 아놀드키아리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던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턱 막히는 듯했다.
엄마의 마음에는 이제 큰딸 미르를 믿고 의지하기만 했던 자책감과 딸에 대한 미안함이 크게 자리잡았다. “죽는 순간까지 미안할 거예요. 내가 우리 애기한테 큰 실수를 했구나. 하은이한테 했던 걸 미르한테 했으면…. 미르도 애기였는데 하은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미르는 잘하니까, 잘하겠지’ 믿는 마음이 커서 방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신체 나이는 중고생 청소년기에 해당하지만 지적 연령은 대여섯 살 유아에 해당하는 미르와 하은이가 이번 여름방학에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물놀이’다. “워터파크 가고 싶어요.” “엄마는 절대 안 가요.” 자매는 이구동성 ‘워터파크’를 외쳤다. 그러나 엄마는 “한번 나가면 돈이 너무 많이 깨지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워터파크 같은 데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지체장애 4급인 남편, 엄마 없이는 5분도 못 지내는 두 딸이 있는 엄마는 기초생활수급 의료급여로 두 아이와 남편의 병원비, 생계비를 꾸린다.
“TV 그만 보고 물놀이 가고 싶어요”미르·하은·엄마 ‘세트’의 여름방학을 채워주는 건 텔레비전이다. 가장 저렴하게 ‘여가를 보내는 수단’이다. 미르는 여성 아이돌 이엑스아이디(EXID)의 팬이다. 하은이는 남성 5인조 아이돌 빅스(VIXX)의 팬이다. 함께 이들이 나오는 쇼프로그램을 볼 때가 가장 즐겁다. 두 자매의 올여름 소원은 물놀이고, 올해 소원은 아이돌그룹 콘서트에 가보는 것이다.
전주=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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