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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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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복을 입고 싶어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고등학교 시절 통째로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열일곱 살 강우의 기쁨과 슬픔
등록 2016-09-20 18:23 수정 2020-05-03 04:28
연재  순서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프롤로그 -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1부 부모
① 엄마의 어깨
② 재활난민
③ 희망 긷는 법
④ 할머니의 마음

2부 아이
① 꿈 그리고 학교
② 형제자매
③ 아픈 아이의 학습권

*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강우는 병원학교에서 만들기, 독서, 악기 수업 등을 듣는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대신 이곳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며 정서적으로 위안을 받는다. 신소윤 기자

강우는 병원학교에서 만들기, 독서, 악기 수업 등을 듣는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대신 이곳에서 친구들과 소통하며 정서적으로 위안을 받는다. 신소윤 기자

두 번째 가을이 찾아왔다. 지난해 봄 백혈병 진단을 받고 경남의 한 병원에서 투병 중인 강우(17·가명)의 계절이 7번 바뀌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지난해 초 자꾸만 몸이 아팠다. 처음에는 감기 몸살인 줄 알았다. 기침과 콧물이 멎질 않아 이비인후과에 갔다. 한 달 가까이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좀체 낫지 않았다. 증상이 좀 가라앉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열이 나고 소화가 안 됐다. 먹은 걸 계속 게워냈다. 장염인 줄 알고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다.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되물었으나 자세히 얘기는 해주지 않고 어떤 수치가 이상하다며 피검사를 다시 받아보라고만 했다.

“그게 작년 언제쯤인가요?” “3월5일이오.” 강우가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내 잊을 수 없는 날.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새것 같은 교복

현실을 의심할 틈도 없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아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던 강우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곧장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백혈구 수치가 44만이었다(4천~1만이 정상). 정상 최대치보다 백혈구 수가 44배 많다는 뜻이다.

강우는 중환자실에서의 나흘을 되새길 때면 절로 몸서리를 쳤다. 자라면서 동네 병원도 자주 찾지 않았던 강우가 무방비 상태로 경험한 중환자실은 단 1시간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공간이었다. “자동으로 혈압 재는 기계가 1시간마다 팔을 죄니까요.” 잠 못 들게 하는 것은 혈압 재는 기계뿐만이 아니었다. 소변줄을 꽂고 용변도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했다.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생을 연장하는 기계들의 소음으로 가득한 낯선 병실에서 홀로 밤을 보내야 했다.

4일 만에 몸무게가 7kg 줄었다. “몸은 아파도, 정신은 말짱하니까 너무 괴로웠어요. 가까운 침대에 계시던 분이 돌아가시고, 옆에서 사람들은 울고…. 면회 시간에만 들어올 수 있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의사 선생님들만 보면 부탁했어요. 제발 일반 병실로 가면 안 되겠느냐고.”

목과 허벅지에 바늘을 꽂고 혈장투석으로 피를 걸러냈다. 2015년 3월9일에 준무균실로 옮겼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중환자실에서의 나흘이 그렇게 지나고, 더 길고 아득한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강우가 준무균실로 옮기는 날로부터 여드레 전,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1월부터 내내 아팠던 강우는 “몇 발자국만 걸어도 100m를 전력 질주한 것처럼” 숨이 차고 힘들었다. 아빠가 매일 교문 앞까지 데려다줬다. 새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어울려 뜀박질 한번 제대로 못해봤다. 단 4일 동안 입었던 강우의 교복은 아직도 새것처럼 빳빳하다.

같이 입학한 친구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 강우는 또래 아이들이 겪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병원에서는 치료 기간을 3년 이상 잡았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소아암 중 가장 흔히 발병하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치료 프로토콜을 통일해 맞춤 치료를 해오고 있다. 항암치료를 하고 쉬는 과정을 반복한다. 강우도 일련의 치료 과정을 따른다. 대체로 2~3년, 길게는 성장기 전체를 치료 기간으로 잡는다.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된 강우의 병동 생활은 친구들이 졸업할 즈음에야 겨우 끝날 수 있다.

나가는 게 소원인 병원 생활
강우는, 친구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병원에 갇혀 있는 자신의 상황이 때때로 갑갑하다. 강우가 엄마와 함께 병실로 걸어가고 있다. 신소윤 기자

강우는, 친구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 병원에 갇혀 있는 자신의 상황이 때때로 갑갑하다. 강우가 엄마와 함께 병실로 걸어가고 있다. 신소윤 기자

강우처럼 급성장기에 있는 경우 병의 진행도 몸이 자라는 것만큼 빠르다. 집중 치료 기간인 첫 1년은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항암 스케줄을 마치고 면역 수치를 확인해 정상에 가까우면 잠깐이라도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강우의 경우 간 수치가 높고 수시로 열이 올라 병원을 벗어날 수 없었다.

“퇴원하더라도 일주일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면역 수치가 안 올라가고 바닥을 치면 병원에서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로 다시 항암치료에 들어가는 거죠. 몇 달을 연이어서 집에 못 가기도 했어요. 그때는 정말….” 강우 엄마 한미영(42·가명)씨가 말끝을 흐렸다. “미치죠.” 강우가 남은 말을 채워넣었다.

병원에서 강우의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한다. 눈을 뜨자마자 약을 먹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잔다. 몸에 힘이 없으니 쏟아지는 건 잠뿐이다. 낮 12시쯤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중학교 때 친구들 소식을 전해듣기도 하고, 인터넷 서핑도 한다. 좋아하는 게임인 ‘세븐나이츠’를 열어보기도 하고, 영화를 볼 때도 있다. 병동의 다른 아이들이 그렇듯 작은 화면을 통해 병원 밖 세상에 겨우 가닿는다. 오후에는 공부를 하고, 저녁을 먹고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쉬다가 밤 12시쯤 잔다. 그나마 견딜 만할 때에야 이런 생활이 가능하고, 체력이 떨어지고 통증이 심해서 잠조차 들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병원에서는 그동안 좋아했던 모든 것을 할 수가 없다.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강우는 친구들이 요즘 어떤 고민을 안고 지내는지,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부분 전해들을 수가 없다.

한때 키 175cm에 몸무게가 98kg까지 나갔던 강우는 무엇이든 잘 먹는 편이었다. 엄마는 강우에게 몸에 좋은 것이라면 뭐든 먹이고 싶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치료 과정 중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병원 음식을 제외하곤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멸균한 음식만 섭취할 수 있다. 끓이고 익힌 음식이어도 바깥 음식은 잘못 먹으면 균에 감염돼 폐렴에 패혈증까지 이어질 수 있다. 강우의 지금 체중은 70kg 정도다. 초밥, 스테이크, 햄버거. 평소에 좋아했던 모든 음식이 지금은 먹어선 안 되는 것들이다.

일상생활의 갑작스런 제어보다 더 마음을 어렵게 하는 것들이 있다. 한참 몸과 마음이 자라고 병을 얻은 강우는 걱정이 많다. “병원비도 걱정되고요. 엄마가 여기 계속 계시니 거의 아빠랑 지내는 동생도 걱정되고요.”

꿈사랑학교, 마음 기대는 친구들

눈앞에 그려지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자면 가장 마음이 무겁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할 생각이었던 강우는 병원에 있으면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대학에 가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막상 진학을 결정해도, 밀도 있게 공부하는 병원 밖 친구들과 경쟁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난해 학교에 가지 못해 첫 중간고사를 치르지 못했는데, 학교에서는 전 과목을 꼴찌 처리했다. 대학 입시가 걸려 있다보니 아예 시험을 치르지 않은 아이를 배려해줄 수 없다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었다. 이후 시험을 치러 학교에 가긴 하지만 여기저기 구멍이 난 배움을 메꿀 길이 아득하다. 엄마는 좀 늦어도 괜찮다고 다독이지만, 사실 치료를 마치고 난 다음 강우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당장 눈앞의 병을 치료하는 데 급급한 환자와 가족이 긴 터널을 지나고 현실에 돌아왔을 때, 이들을 위한 보호 장치는 어디에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강우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지금 제 성적으로 어디를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중학교 때는 중간 정도 했는데….”

강우에게 병원 생활을 하면서 즐거운 순간이 있었는지 물었다. 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노니까 안 좋아?” 다시 물었다. “사람이 병원에 와서 좋은 점이 어디 있어.” 강우가 말했다.

그나마 유일한 기쁨은 화상강의 수업인 ‘꿈사랑학교’에 참여하는 시간이다. 강우처럼 긴 기간 병동 생활을 하는 ‘건강장애’ 아동들은 특수교육 대상으로 분류돼 병원학교, 화상강의 등의 교육을 지원받는다. 현재 강우는 학교 수업을 못 듣지만 학교와 꿈사랑학교에서 병행 학습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강우 엄마는 “이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는 처지”라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학교 수업과 화상강의를 함께 듣는 것이 가능하지만, 병원에 갇혀 있는 강우에게 아무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해준 적이 없다(관련기사 ‘아픈 아이의 ‘복불복’ 학습권’ 참조). 엄마는 “학교를 잠깐이라도 가게 되면 꿈사랑학교 수업은 자동으로 못 듣게 된다는데, 예산이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강우는 화상강의 시간에 만나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마음을 많이 기댄다.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작은 화면 속 친구들은 서로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병상 동료들이다. 강우가 듣는 꿈사랑학교는 오전 11시 초등학교 수업부터 시작한다. 고등학생인 강우는 오후반이다. 4, 5, 6, 7교시 수업을 듣는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4과목을 배운다.

강우는 치료 시간이 겹쳐 부득이하게 빠질 때 빼고는 거의 꼬박꼬박 수업에 참여한다. 채팅으로 서로 질문과 답변도 주고받고, 이야기도 나눈다. 1년 넘게 같은 수업을 듣는 10여 명의 친구들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제법 친해졌다.

강우 엄마는 강우가 꿈사랑학교 수업을 들으며 친구들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좀 놓인다. “학교 친구들은 아무래도 강우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가 많이 없잖아요. 얘네 학교에서 강우가 유일하게 아프거든요. 근데 화상강의의 같은 반 친구들은 언젠가 완치되기를 바라면서 함께 이겨내는 친구들이니까.”

“스무 살쯤에는…”

1시간 조금 넘게 이야기를 나눈 강우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치료를 마치면 무얼 하고 싶냐는 마지막 질문에 한참 단어를 고르던 강우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잠시 뒤 눈을 끔벅이며 말을 이었다. “대학에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스무 살쯤에는.” 인터뷰를 마친 강우가 수액이 걸린 링거 거치대를 밀며 병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어린이  병원비  국가  보장  서명  운동  시작


상처  내보이며 모금하지  않을  내일


8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병원비 당사자 가족증언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가가 아픈 아이들의 건강을 돌볼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8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병원비 당사자 가족증언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가가 아픈 아이들의 건강을 돌볼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8월30일 오전, 국회 본청 223호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정의당,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가 연 ‘어린이 병원비 당사자 가족 증언대회’ 현장이었다.
준비해온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건우 엄마 주경숙(44)씨는 복받치는 서글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부산에 사는 건우(11)는 한국에 5명밖에 없는 희귀 난치성 질환인 카무라티엥겔만증후군이란 병을 갖고 태어났다(제1122호 ‘놀고, 친구 사귀고, 공부하고 싶어요’ 참조). 몸의 근육이 줄어들면서 뼈가 뒤틀리는 이 질병을 건우와 엄마, 동생 하영까지 가족 셋이 앓고 있다. 병원비 마련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숱하게 해오던 말이었다.
건우 엄마는 그동안 몸과 마음이 아파 얻은 생의 상처들을 토닥일 틈 없이 자꾸만 까발려 보여줘야 하는 현실이 어떤 순간에는 “치욕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얘기해야만 했다. 상처 위에 딱지가 단단하게 내려앉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응어리들이 이날 한꺼번에 터졌다. 뼈가 뒤틀려 점점 걷는 게 고통스럽고 힘든 건우를 떠올리며 엄마는 “다른 아이와 같이 걷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말했다. 늘 마음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사는 아픈 아이의 엄마지만, 걱정과 염려를 공언하듯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떨리는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다.
충북 청주에 사는 공아무개(48)씨의 아들 은준(10)이는 신증후군을 앓는다. 몸에 단백질을 저장하지 못하고 배와 양쪽 볼에 물이 찬다. 통증이 매우 심하다. 경련을 할 때도 있다. 복수와 부기를 빼러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1개월 이상 긴 입원을 할 때도 있다. 은준이는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키는 3살 아이만큼 작다.
은준이 아빠는 미처 준비해온 말이 없다며 한참 말을 골랐다. 아빠는 무슨 말을 꺼내도 터지는 울음을 감당할 수 없었다. “11년째” “20일 입원하고 나니 병원비 1200만원” “구급차”와 같은 말이 쏟아졌다. 띄엄띄엄 이어가는 문장 사이에 슬픔이 검은 계곡처럼 깊숙이 패어 있었다.
더운 바람이 차츰 물러나고 있던 날씨 때문이었는지 은준이 아빠는 몇 번이나 “소풍이라도 가는 것 보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고 말했다. 아이의 병원비를 혼자 벌어 감당하고 있는 아빠는 일정을 마치자마자 일하러 돌아가야 한다며 청주로 가는 차에 올랐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김종명 정의당 건강정치위원장은 “건강보험 누적 흑자가 17조원이다. 곧 소진되거나 일시적으로 머무는 돈이 아니라 여기에 더 누적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기서 3%만 떼면 (0~15살 어린이 병원비 본인부담금을 지원할) 5152억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아픈 아이가 마음 편히 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이 돈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정의당은 9월8일 어린이 병원비 국가 보장 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 storyfunding.daum.net/project/5864)에 0~15살 아이들의 병원비 국가 보장을 촉구하며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 대부분은 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조성한 기금 ‘호호펀드’로 이관돼 의료비가 시급한 가정에 배분됩니다.


후원 계좌: 농협중앙회 10573964784416 (예금주 어린이재단)
후원 문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1588-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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