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아이가 아프면 온 가족이 아프다
1부 부모
① 엄마의 어깨
② 재활난민
③ 희망 긷는 법
④ 할머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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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1일 오전 10시 서울 구로동 ㅅ아파트. 특수학교인 ㅈ학교에서 나온 순회 선생님 김지연(가명)씨가 15살 예지 옆에 앉았다. “안녕, 안녕, 안녕 예지. 오늘은 6월21일 화요일입니다.” 선생님은 음악을 틀고, 어린이집에서 유아들에게 인사하듯 예지에게 인사했다.
누워서 초점이 분명치 않은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던 예지가 선생님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듯 보였다. 선생님은 천천히 예지와 인사를 나눈 뒤 큰 딸랑이를 예지 얼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예지가 딸랑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왔다갔다 했다. “눈이 잘 보이는지, 소리는 잘 들리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수업을 지켜보던 예지 외할머니 이상애(58)씨가 살짝 귀띔했다.
거꾸로 흐르는 예지의 시간예지는 돌 전후 영·유아 수준에 맞춰 오감을 자극하는 수업을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집에서 받고 있다. 우쿨렐레를 치면서 노래를 들려주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2시간 동안 예지는 눈을 끔벅이고 손을 움직이는 반응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렸다.
15살 예지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돌 무렵 예지는 잘 서고 잘 걸었다. 두 돌 때도, 세 돌 때도 그랬다. 서툴지만 뜀박질도 했다. 말은 좀 느렸다. 그래도 “물 주세요” “까르푸 가자” 등 두 단어 문장까지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증상들이 있었다. 15개월 무렵이었다. 잘 서 있다가 갑자기 뒤로 꽈당 넘어졌다. 그런 일이 반복됐다. 이후 발달이 더뎠다. 말은 두 단어 문장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4살 때부터 대학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발달장애·지체장애로 진단받고 소아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8살 때 뇌수두증을 발견하고 뇌수술을 하면서 예지의 몸은 점차 왼쪽으로 기울었다. 예지의 입에서 두 단어 문장마저 들을 수 없게 됐다. 12살이 되던 해, 예지는 주저앉아버렸다. 14살, 먹지도 못하게 됐다. 기도가 좁아진 듯했다.
15살 예지는 6개월 아기처럼 누워 지낸다. 젖병 대신 위루관(구강 섭취를 못하는 환자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위장관에 구멍을 뚫어 연결한 관)으로 영양제를 먹는 게 아기와 다를 뿐이다.
거꾸로 흐르는 예지의 시간 가운데 절반은 할머니·할아버지의 몫이었다. 예지의 엄마와 아빠는 2009년 예지가 뇌수두증으로 수술받던 해 이혼했다. 예지 엄마는 발달이 느린 데서 시작해 점점 걷지 못하고 아예 주저앉아버린 딸의 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할머니 이상애씨는 예지가 4살 때부터 좋다는 대학의 음악치료, 사설기관 재활치료 등을 받게 하기 위해 데리고 다녔다. 예지의 증상은 점점 나빠졌고, 예지 엄마와 아빠의 관계도 점점 나빠졌다. 아픈 아이를 잘 돌보지 않던 남편과 이혼한 예지 엄마는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 예지와 함께 죽을 생각만 했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상상하는 딸은 내버려두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이상애씨는 “딸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 못할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손녀는 예쁘기만 했다. 걸어다니다 대변을 봐도 “이놈의 자식”이 아니라 “아이고, 변을 봐서 시원하겠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예지가 걷지 못하고 아예 주저앉기 전, 자기 아픔을 참지 못해 주변 사람을 할퀴고 난동을 피울 때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지, 손녀가 밉지는 않았다.
이상애씨는 “내가 직접 (복지)기관이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관장이다. 나한테 맡겨라.” 엄마 이상애씨가 딸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상애씨가 손녀의 보호자가 된 이유다. 마음이 아파서인지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도 못하는 예지 엄마는 독립시켰다. 주말에만 집에 오라고 했다. 그렇게 8년 전부터 예지와의 생활이 시작됐다.
마음이 단단한 할머니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예지의 진짜 병명을 알게 된 뒤다. 예지의 병명은 신생아 2만5천 명 가운데 1명만 걸린다는 희귀난치성 질환 뮤코다당증이었다. 당단백질·당지질을 총칭하는 뮤코다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생기지 않아 신체 여러 조직에 뮤코다당이 쌓이면서 척추 변형, 보행 장애, 각막 혼탁, 호흡기 감염, 갈퀴손, 저신장, 심잡음, 짧은 목, 탈장, 조악한 얼굴 등의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병이다.
8년 만에 진단받은 병명병을 진단받는 데만 8년이 걸렸다. 2013년, 예지가 완전히 주저앉은 12살이 되던 해에야 병명을 알게 됐다. 2005년 더딘 발달로 병원에 다니기 시작해 8년 동안 정확한 병명을 모른 채 헛된 곳에 돈을 썼다. 수중치료를 받고, 좋다는 음악치료를 받고, 좋다는 병원에 입원해서 월 수백만원씩 치료비를 까먹었다.
“(뮤코다당증은) 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임상 양상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조기에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여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뮤코다당증 진단과 치료의 최신 지견’, ver 12. no.2, 맹세현·진동규, 2012)
예지는 조기진단을 받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
뮤코다당증은 부족한 효소의 종류에 따라 일곱 유형으로 나뉜다. 예지는 그중에 3형이다. 1형, 2형, 6형은 조기에 발견하면 효소대체치료를 통해 완치는 아니더라도 예후가 좋아지기는 한다. 4형도 초기 단계지만 최근 치료법이 개발됐다. 예지가 앓는 지능장애 등 중추신경계 증상이 나타나는 3형은 치료약이 없다. 그래서 예지의 병은 심화될 뿐 나아지지 않는다.
약도 없다는 예지의 병명을 듣고 그동안 헛된 치료를 해왔다는 허무감에 할머니도 스트레스성 신경장애를 앓았다. 예지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없이 나긋나긋한 할머니의 평소 말투는 잠을 자다가 잠꼬대를 할 때 변한다.
“자다가 막 싸운대요. 막 퍼붓는대요. ‘죽여버릴 거야’ 이런대요.”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면 흔들어 깨워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싸워요.” 예지 할아버지 표재묵(66)씨가 조용히 거들었다.
손녀 바지 지어 입히는 할아버지표씨는 40여 년 기름밥을 먹으며 자동차 부품을 조립해 두 딸을 키워냈다. 2009년 정년퇴임을 하고 시골로 내려가 화분 키우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낚시 다니고, 텃밭 일구고, 여행 다니는 노년의 삶을 꿈꿨다. 노부부의 꿈은 아픈 손녀 예지를 돌보는 일로 한없이 미뤄졌다.
하루 종일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한 예지를 아내에게만 내맡길 수 없어 할아버지 표씨도 같이 돌보고 있다. 거의 온종일 손녀 곁에 붙어 있는 아내만큼은 못하지만, 아내가 나가야 할 때는 표씨가 그 역할을 한다.
표씨는 손재주가 좋다. 재봉틀로 예지의 바지를 직접 지어 입히기도 한다. “시중에 파는 바지는 편한 게 없어서요.”
예지는 이혼 뒤 연락 한 번 없는 아빠와 마음이 아픈 엄마의 보살핌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지낸다.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예지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예지야, 할미 어딨노.” 예지 앞을 왔다갔다 하며 손뼉을 치며 예지를 부른다. 순회교사가 집에 와서 딸랑이로 예지의 시각-청각 협응을 확인하듯, 할머니는 손뼉과 목소리로 예지가 눈이 보이는지,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며 예지와 놀아준다.
일주일에 세 번은 아침 8시45분까지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재활병원에 예지를 데리고 간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지만 제때 오지 않으면 그 거리를 휠체어에 태워 걸어서 간다. 내버려두면 근육이 경직되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예지를 휠체어에 태워 1시간씩 산책한다. 키 154cm, 몸무게 36kg의 예지는 또래보다 작지만 자기 몸을 전혀 가눌 수 없어 할머니·할아버지가 안아서 휠체어에 태우는 것만도 언제나 벅차다.
할머니에겐 그보다 더 힘든 일이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다. “내 자식 내가 돌보는 건 누가 칭찬하거나 인정해줄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엄마가 멀쩡히 있는데 왜 끼고 있냐, 자기 신세를 스스로 망치는 거다’라고 비아냥대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요.” 이씨가 말했다. ‘네가 원해서 하는 건데 뭐가 힘드냐’ ‘한 달에 얼마 받아? 돈도 안 받는데 왜 봐줘?’ 이런 말들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그래도 할머니이자 엄마인 이상애씨는 ‘내가 보길 잘했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3년 전에는 뮤코다당증 아들 둘을 20년간 돌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엄마의 소식을 뉴스로 들었다. 예지보다 1살 많은 어느 뮤코다당증 환아 부모는 아예 아이 치료를 포기한 채 무기력하게 지내기도 한다. 완치되지 않고 계속 상태가 나빠지는 뮤코다당증은 환자 본인은 물론 보호자의 삶의 질도 끝없이 떨어뜨린다.
“그저 내 옆에 살아만 있어주렴”주말마다 집에 오는 딸에게 엄마 이상애씨는 말한다. “네가 내 옆에 살아줘서 고맙다.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해줘도 괜찮다. 그저 내 옆에 살아만 있으면 된다.” ‘가려진 우울증’을 앓고 숨어지내는 딸을 위해, 손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할머니 이상애씨는 딸과 손녀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복지기관’이 되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후원 계좌: 농협중앙회 10573964784416 (예금주 어린이재단)
후원문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1588-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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