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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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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의 ‘복불복’ 학습권

특수교육 대상자 중 2.2% ‘건강장애’ 아동… 법으로 보장하는 학습권 있는데도 사각지대에 방치된 소수 중의 소수
등록 2016-09-22 15:35 수정 2020-05-03 04:28
9월3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주최로 열린 소아암 인식 개선을 위한 걷기 행사에 화상강의기관 학생과 학부모 2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최근 교육부가 실시간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소통할 수 있는 화상강의를 축소하는 대신 일방향으로 진행되는 사이버강의인 원격수업을 도입해 건강장애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려 한다”고 화상강의 축소 반대를 주장했다. 꿈사랑학부모회 제공

9월3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주최로 열린 소아암 인식 개선을 위한 걷기 행사에 화상강의기관 학생과 학부모 2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최근 교육부가 실시간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소통할 수 있는 화상강의를 축소하는 대신 일방향으로 진행되는 사이버강의인 원격수업을 도입해 건강장애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려 한다”고 화상강의 축소 반대를 주장했다. 꿈사랑학부모회 제공

수민(16·가명)이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3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백혈병을 진단받고 다음해 이식수술을 받았다. 2년간 항암치료 등을 위해 입·퇴원을 반복하다 지난해 7월 ‘치료 종결’ 판정을 받았다. 백혈병을 앓았던 아이들은 치료가 종결된 뒤에도 적어도 5년 동안은 주기적 검진을 통해 이식된 림프구가 몸을 공격하지 않는지, 혈소판·적혈구·백혈구 수치는 정상인지 등을 지켜봐야 한다. 항암치료로 몸의 항체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신생아 때 맞았던 예방접종도 다시 해야 한다. 열감기에 걸리면 수술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원 갈 일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생긴다.

한 학기 만에 자퇴 고민한 수민이

소아암, 희귀난치성 질환 등 ‘만성질환으로 3개월 이상 장기 입원하거나 통원치료를 하는 등 계속적인 의료 지원이 필요해 별도의 교육 지원을 받아야 하는 장애’를 ‘건강장애’라고 한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하 특수교육법)에서는 건강장애를 가진 경우 시각·청각·지적·지체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특수교육 대상자로 분류해 국가가 지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에 출석하기 힘든 건강장애 아이들은 병원학교 출석, 혹은 교육청이 운영하거나 민간에 위탁해서 운영하는 화상강의기관 4곳을 통해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 출석이 인정된다. 건강장애 아이들이 치료 기간에 유급되는 것을 막고 병이 나은 뒤 학교에 잘 복귀하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건강장애 아이들은 이렇게 법이 보장하는 ‘학습권’을 제대로 누리고 있을까.

수민이 엄마 강유진(46·가명)씨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화상강의와 학교 수업을 함께 듣는 ‘병행출석’을 원했다. 수민이가 오전 9시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는 고등학교 정규 수업을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돼, 서너 달이라도 학교 수업과 화상강의를 병행하며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 입장은 달랐다. 교감은 “학교와 화상강의는 병행할 수 없다”고 전했다. 담임교사는 “교육청 지침”이라고도 말했다. 결국 학교 출석을 강행한 수민이는 1학기를 마칠 때쯤 심각하게 ‘자퇴’를 고민해야 했다. 병원 치료와 체력 저하로 인한 잦은 조퇴·결석, 친구들의 따돌림 등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김정연 조선대 교수(특수교육) 등이 2013년 병원학교 재학생 부모 114명, 화상강의 시스템 재학생 부모 1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2.33%의 학부모가 ‘필요한 교육 지원’으로 “학교 복귀 후 한시적으로 화상강의와 소속 학교의 출석을 병행하여 인정하는 것”을 꼽았다. 김정연 교수는 ‘건강장애 학생 교육 지원 실태 및 개선 방안에 관한 질적 연구’ 논문에서 “소아암처럼 질환에 따라서는 치료 종료 이후 일정 기간 소속 학교와 병원학교, 화상강의기관의 학적 중복 허용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병행교육’에 대한 교육 당국의 태도는 매우 애매하다. 교육부 특수정책과 담당자는 “건강장애 아이들이 병을 치료한 뒤 학교에 잘 복귀하도록 지원하는 ‘학교 복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병행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일선 교육청에선 이런 방침이 지켜지지 않거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병행교육 방침 들쑥날쑥

ㄱ교육청 특수교육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육부가 ‘병행출석을 인정한다’고 이야기한 것이 지난 6월 전주에서 열린 건강장애 워크숍에서가 처음이었다. 그것도 ‘막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 전까지는 방침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일선 교육청에서 하려고 보면 생활기록부 기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관련 실행 근거가 전혀 없다. 법적 근거 없이 교육부의 ‘막지는 않는다’는 입장 하나만으로 병행교육을 허용하라고 일선 학교에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이 교육청 산하 ㄴ교육지원청 특수교육업무 담당자는 “건강장애 아이들이 화상강의를 듣다가 학교에 출석하면 건강장애 사유가 자동 소멸한다”며 “병행교육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ㄷ교육청 특수교육 담당자도 “건강장애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도 유급이 안 되는데 굳이 병행출석할 필요가 없다”며 “원칙은 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행교육을 허락하는 교육청도 있다. 대구시교육청 담당자는 “건강장애는 병마다 아이들의 특징이 다 다르고, 완치 뒤 유지 치료를 지속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이의 상황에 따라 병행교육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교육청도 학교 복귀 뒤 석 달 동안 학교생활 적응 기간으로 중복출석을 허락하고 있다.

병행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졌을 때 아이가 받는 만족감은 크다. 선천성 대사이상으로 단백질을 잘 분해하지 못해 몸이 피곤하면 구토를 하고 심할 경우 의식불명·뇌손상을 입는 메틸말론산혈증을 앓는 도현(12)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화상강의기관을 통해 온라인 수업만 들었다. 도현이가 4학년이 될 때까지 어느 담임교사도 도현이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5학년 때 특수반 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도현이 집을 방문해 도현이가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걸 보고 “컨디션이 괜찮을 때 학교에 나올 것”을 권유했다. “친구들한테 도현이에 대해 이야기해둘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며칠 뒤 도현이가 3교시에 맞춰 학교에 갔을 때 엄마 김하나씨는 반 아이들이 박수 치고 환호해주는 목소리를 들었다. 도현이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5학년 때를 즐겁게 기억한다.

그러나 교육 당국의 지침이 일선 교육청에 적극적으로 안내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장애 아이들의 병행교육 및 배려와 돌봄은 ‘인식이 있는 교사를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헌법(제31조)과 교육기본법(제3·4·18조), 특수교육법 등에서 보장하는 건강장애 아동의 학습권이 뽑기처럼 ‘복불복’으로 주어지는 셈이다.

학교로 돌아가 두 번 상처 받은 아이
건강장애 청소년인 장은솔(15)양이 집에서 화상강의를 보고 있다. 박수진 기자

건강장애 청소년인 장은솔(15)양이 집에서 화상강의를 보고 있다. 박수진 기자

건강장애 아이들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한 마당에 정서적 돌봄은 먼 나라 얘기다. 4살 때 백혈병으로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은 뒤 이식한 림프구가 몸을 공격해 구토, 피부색소침착 등 여러 후유장애 치료를 받고 있는 김채영(9·가명) 어린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친구를 사귀고 싶고 학교생활이 너무 궁금해서” 등교를 결정했다. 그러나 2주 만에 화상강의만 듣기로 결정했다.

담임교사는 채영이를 ‘수업 방해 요소’로 여겼다. 1교시 뒤 몸이 힘들어 엎드리거나 의자에 기대어 앉는 채영이가 반 분위기를 흐린다는 것이다. 아이가 구토를 하자 교사는 토사물을 치우면서 “앞으로는 네가 직접 치워”라고 말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채영이의 병과 항암치료로 머리가 짧아진 것을 설명해주지 않아 “너는 왜 마스크를 쓰고 있어?” “목이 왜 얼룩덜룩해. 때 꼈어.” “너는 왜 머리가 짧아? 남자야?” 등의 질문을 들어야 했다. 9살 채영이 마음에 2년 전 친구들의 질문과 선생님의 눈길은 상처로 남았다.

교육 내용 및 평가 방식도 허술하다. 채영이는 1학년 때를 제외하고 수행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채영이 엄마 권혜주(50·가명)씨는 “1학년 때는 담임교사가 ‘수행평가 자료를 준비해둘 테니 며칠까지 와서 가져가라고 하면 가져와서 작성한 뒤 제출했다. 2·3학년 때는 그런 안내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학기가 끝난 뒤 담임교사가 집으로 전화해 “어머님, 채영이 성적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교사가 학생의 성적 처리를 학부모에게 묻는 식이다.

화상강의기관에서 수업을 듣는 건강장애 중고생의 경우 시험 때면 난감하다. 화상강의기관에 교육을 위탁한 상태로, 기존 일반학교 소속 아이들은 중간·기말 고사를 학교에 가서 치러야 한다. 그런데 화상강의기관 교재와 진도가 소속 학교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학교 3학년 장은솔(15)양은 “화상강의 수업에서는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다섯 과목을 들을 수 있는데 진도나 교재가 다 달라서 영어·수학은 따로 공부방에 다니며 보충하고, 그 외 과목은 EBS 수업을 듣고 문제집을 사서 혼자 공부해 시험을 치른다”고 말했다.

박재국 부산대 교수(특수교육)는 “건강장애 아동이 특수교육 대상자에 포함된 것이 2006년으로 10년밖에 안 됐다. 대상 수도 적고 개념 자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교육청이 건강장애 아이들을 병원학교 등에 위탁해서 교육하기 때문에 아이가 학교에 복귀할 때 아이의 상태를 알고 적응을 돕도록 지속적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 업무가 많고 건강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2015년 현재 특수교육 대상자 8만8067명 중 건강장애 아동은 1935명으로 2.2%를 차지한다. 특수교육법 제8조에는 “특수교육 교원의 자질 향상을 위해 정기적으로 연수를 실시하고 그 내용에 특수교육 대상자 인권 존중 부분이 포함돼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장애 학생 담임교사의 연수는 자율사항으로 ‘건강장애’가 뭔지도 모르는 채 학생을 맡는 경우가 많고, 건강장애 안내는 대부분 공문으로 대체된다.

학교 복귀 여부 실태조사 시행된 적 없어

제13조에는 “특수교육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라고 정한다. 연구자들도 건강장애 학생의 학교 복귀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등 실태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정부 차원의 ‘건강장애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제22조에는 특수교육 담당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4명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수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011년 1인당 5.2명에서 2015년 1인당 4.8명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건강장애 아이들만 따로 분류해보면 병원학교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15.8명, 화상강의기관 강사 1인당 학생 수는 14.3명이다.

부모는 아이가 아픈 것만으로도 서럽다. 게다가 법정 교육권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은 더욱 서럽다.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아이들만 봐도 한동안 눈물을 보이던 은솔이 아빠 장연우씨는 “특수교육 대상자 중 건강장애 아이들은 소수여서 더욱 차별받는 것 같다”며 “법치국가에서 법이 정한 것만이라도 제발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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