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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과 질의응답 중계 “배워서 새것을 만들어보겠다고 꿈꿔야”
등록 2016-01-31 00:44 수정 2020-05-03 04:28

넥스트저널리즘스쿨 수강생들의 질문은 차고 넘쳤다. 질의응답 시간은 20분인데 이를 넘기기 일쑤였다. 차고 넘치는 이야기 가운데 안수찬 편집장과 수강생이 나눈 질의응답을 옮긴다. 안 편집장은 ‘사실과 의견, 객관성과 공정성’ ‘한국 기자상 수상작 분석과 함의’를 강의했다.
Q  지역에 있는 기자는 소수다. 소수이기 때문에 (기사의 객관성을) 권위 있는 책임자에게만 검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기자가 기계적 객관주의를 어떻게 타파할 수 있을까.

넥스트저널리즘스쿨의 한 수강생이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이완 기자

넥스트저널리즘스쿨의 한 수강생이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이완 기자

A  한국의 많은 문제가 서울 집중 현상과 관련 있다. 그래서 언론에 국한해 해결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다만 지역에 근거한 매체는 지역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때 글로벌하고 일반적인 사안을 지역과 밀착시키는 게 필요하다. 지역 매체는 주로 구청·구의회 등을 취재한다. 그런데 지역 주민들도 이상 한파 등을 걱정한다. 구 단위로도 기상 관측 자료가 누적돼 있다. 예컨대 지구온난화와 대전시 동구의 기온 변화 역사를 연결해 보여준다고 생각해보라. 매개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청과 구의원을 쫓아다니는 방식을 지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중앙 언론보다 인력이 더 부족한 게 지역 언론이다. 이런 상황을 비평할 생각을 하지 말고, 내 문제로 접근하면 어떨까. 어떤 문제를 취재·보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기자가 있다면, 시키는 일 하고 나서 제 시간을 헐어서 쓰는 것이다. 그게 이기적 차원에서 도움이 된다.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니까. 개척이란 누군가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줘서 하는 게 아니다. 조건과 환경이 미비해도 조금씩 도모하는 게 개척이다. ‘기사 쓰고 싶어, 기자 되고 싶어’라고 소망하는 것은 개척이 아니다. 기성 언론이, 조건이,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도 지금 당장 나의 꿈을 구현할 틈새를 확보하는 게 개척이다.

Q 기성 언론은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취재원과 출입처가 있다.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하면 뭐든지 새로 쌓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를 꿈꾸는 지망생이 뉴미디어를 만드는 건 어떻게 보면 가시밭길이다. 이게 가시밭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A  가시밭길이다. 당연하다. 그런데 기성 언론에 들어와도 똑같은 상황이 펼쳐질 거다.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는 백에 하나 정도다. 기성 언론들이 몸부림쳐도 잘 안 되는 것과 똑같이 여러분이 스타트업을 해도 잘 안 될 거다. 하지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소망하는 직장이 현대, 삼성 등이다. 월급 많이 주고 정년을 보장한다니까. 미국에선 어떨까.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인기 직장이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정년보장을 꿈꿀까. 좋은 조직에서 무엇인가 배운 다음, 그 창업자인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나도 새로운 기업을 만들겠다고 꿈꾸지 않을까.

좋은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좋은 조직을 만드는 게 모든 인생에 있어 최고의 꿈이다. 정치로 치면 그저 국회의원이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구현할 새 정당을 직접 만드는 게 최고의 야심이다. 기업으로 치면 창업이다. 언론으로 치면? 내 언론사를 만드는 거다. 는 해직기자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돈 모으고 사람 모아서 만들었다. 도 해직기자들이 후원금을 받아 만들었고, 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 만들었다.

기성 언론에 들어가고 싶다는 꿈은 좋다. 대신 그 꿈의 진짜 내용은 기존 매체의 기자가 되겠다가 아니어야 한다. 예컨대 지금은 입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언젠가 를 대체할 품격 있는 보수매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꿔야 한다. 그런 꿈이 있어야, 그리고 그 꿈을 구현할 실력을 지금부터 갖춰야, 그 언론사 안에서 의미 있는 분수령이나마 만들 수 있다. 그 꿈을 접거나 타협하면 언론사에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가서도 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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