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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보다 해로운 ‘개인’들

이주의 키워드/ 관제서명
등록 2016-01-26 21:08 수정 2020-05-03 04: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

1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가 끝나자 대한상공회의소 등 7개 경제단체와 24개 업종별 단체가 모였다. 그들은 ‘경제살리기 입법 촉구 국민운동추진본부’를 구성한 뒤 “범국민 서명운동에 착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천만명 서명운동’이란다.

다른 국적의 관찰자가 보기에 참 기이한 풍경일 수 있다. 영어 사전에 등재된 무소불위의 경제권력 ‘재벌’(Chabol, Jaebeol)이 왜 저런 짓을 벌이는지 궁금할 것도 같다. 반면 같은 국적 관찰자의 눈엔 부끄럽고 참담한 광경이다. 선진국 기업들은 환경을 살리기 위해 기부하거나 빈곤 국가를 돕는 데 천문학적 돈을 쓰는데, 한국의 세습·족벌 기업들은 국민을 상대로 서명운동이나 조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서명운동에 나선 거다. 재벌들은 ‘우리가 부탁한 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속사정이야 어찌됐건 서명운동의 지침과 구체적인 홍보 전략 문건들이 폭로됐고 서명을 강요받았다는 증언도 속속 나오고 있다. 재벌과 대통령이 같이 움직이니 당연히 ‘관제운동’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이승만·박정희 시대 관제데모가 떠오른다”고 비판했다.

요즘 세대에겐 ‘관제데모’라는 말이 생소할지 모른다. 과거의 기록물이나 보도를 보면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시대의 관제데모, 즉 ‘관’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민’을 동원해 만들어낸 집회 또는 궐기대회는 일상이었다.

‘이승만 3선을 지지하는’ 1956년의 대규모 집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정희 시절 수많은 반공집회들도 일종의 관제데모였다. 특히 박정희는 ‘언플’(언론플레이)의 달인이어서, 정권을 지지하는 집회뿐 아니라 정부에 반대하는 데모를 기획·지시하기도 했다. 1965년 차지철이 주도한 베트남 파병 ‘반대’ 집회가 그것이다. 파병 반대 여론을 핑계로 미국으로부터 많은 걸 얻어내려는 의도에서 조작된 ‘가짜 반전집회’였다. 그로부터 50년 뒤인 2016년, 딸 박근혜는 아비의 관제운동 전술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부전여전이다.

혹자는 되물을 수 있겠다. 대기업과 대통령은 ‘개인 자격’으로 서명운동도 못하는가? 서명운동에 개인이 참가하는 게 왜 잘못인가?

먼저 서명운동이 주장하는 ‘경제와 민생 살리기’의 내용의 실상이 ‘재벌과 기득권 살리기’라는 점이 지적돼야 한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반민주성’이다. 재벌, 행정부 수반과 국무총리 등이 절차에 의하지 않고 서명운동 같은 수단을 동원해 입법부를 압박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개인 자격’으로 서명 인증샷까지 공개했는데 정작 인증샷은 총리실이 배포했다. 자연인 황교안이 개인적으로 하는 일을 왜 총리실이 나서서 홍보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리더, 고위 공직자가 개인 자격을 강조하는 건 매우 좋지 않은 신호다. 책임을 회피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이 남용되고 있거나 언론과 시민사회로부터 제대로 견제받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러 가는 일본 정치인들이 늘 하는 소리가 ‘개인 자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을 합사한 신사에 공인이 참배하는 행위는 단순한 참배가 아니다. 자체로 역사적·사회적 상징성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지지 세력을 규합하는 정치 행위다.

공인은 헌법상 보장된 자유도 없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그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공적 자원이 동원되거나 민주주의 원칙, 공공성이 침해된다면 당연히 그것은 규제돼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권한을 지니고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공직자의 자유는 일반적 개인의 그것보다 제한되기 마련이다. 형식 민주주의가 장착된 사회의 법은 예외 없이 공인의 권한과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힘센 ‘개인’들이 주도하는 이 서명운동은 무엇을 뜻하는가. 결국 저들, 저토록 막강한 ‘개인’들은, 허술한 민주주의 시스템과 무력한 시민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일베’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저들은 일베보다 훨씬 해롭다. 일베는 저들처럼 힘이 세지 않다. 게다가 서로 간의 ‘친목질’도 ‘극혐’한다.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재벌과 대통령과 총리에 비하면 일베가 차라리 청결해 보일 지경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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