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체질은 아니었네… 김영배 기자의 좌충우돌 롯데월드 공연팀 체험기
공연 시작 5분 전을 알리는 신호음에 또다시 허둥대기 시작했다. 다른 연기자들은 잡담까지 나눠가며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있건만 생초짜인 나로선 속이 바짝바짝 타는 심정이었다.
오른쪽, 왼쪽 옆걸음을 치며 팔을 머리 위에서 휘감아 돌리고 앞으로 뒤로 옮기는 발동작 연습을 해봐도 한번 헝클어진 마음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다. 이날 공연도 망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연습이 무슨 소용…
‘어린이 관객인데 뭐, 어때. 실수하더라도 못 알아챌 거야. 동작을 까먹으면 사탕 나눠주고 카드(크리스마스) 돌리는 동작으로 대충 때워도 된다고 했잖아.’ ‘아냐, 어제도 그 모양이었는데 오늘까지 또 그러면 안 되지. 어젯밤에도 봤지만 관객 중에는 어른들도 적지 않이 끼어있어서 실수를 금방 눈치챌 게 뻔해. 안 돼, 절대로…. 동작을 놓치면 안 돼.’
오만 가지 잡념이 이리저리 교차하는 가운데 야속하게도 5분은 휙 지나가고 운명의 시각 오후 2시는 어김없이 다가왔다. 퍼레이드(행렬)가 시작되는 ‘텐트’(출발 대기장소)의 대문이 열리고 롤러블레이드를 탄 연기자들이 손에 든 쇠막대기에 불꽃을 튀기며 먼저 분위기를 띄웠다. 뒤를 이어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마차, 왕비, 왕자와 공주, 시녀, 음식 접시를 든 남자들이 기다랗게 행렬을 이뤘다.
캔디 카트(손수레)를 밀고 가며 춤을 추도록 돼 있는 루드밀라(20·우크라이나 출신 무용수)와 나는 예정된 각본에 따라 초콜릿 모양의 캐릭터(인형 속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뒤를 따랐다. 텐트 정문을 나서자 길 양쪽으로 관객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와 곳곳에서 내지르는 환호성으로 정신이 어찔하다. 2박3일간 배운 무용 동작은 한순간에 다 잊혀지고 앞이 아득해졌다.
롯데월드 공연팀 체험은 화요일인 11월27일 시작됐다. 그 직전 토요일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를 방문, 한번 해볼 만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뒤였다. 롯데월드에선 마침 ‘월드 카니발’(세계 각국의 전통의상과 춤을 선보이는)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었다. 김기주 공연팀장의 설명을 들은즉, 화려하게 치장된 크리스마스트리와 마차 안에 놀랍게도 사람이 들어가 밀고 있다는 것 등 흥미를 끄는 구석이 많았다. 화려한 바깥 모습과는 또다른 고단한 일터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막연한 호기심과 함께.
일정이 꼬여 예정보다 하루 늦은 화요일 오전부터 본격적인 연습이 이뤄졌다. 롯데월드에서 낮(오후 2시), 밤(오후 7시 반) 두 차례씩 펼쳐지는 퍼레이드에 참여하기로 하고 배역은 연습 상황을 봐가며 정하기로 했다. 회사쪽의 배려로 공연팀 연기자 정승우(33)씨가 안무 지도를 맡아줬다. 정씨는 특이하게도 사학과 출신이면서 연극,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가 롯데월드 공연팀에 들어와 3년 반째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
100명을 웃도는 롯데월드 공연팀 소속 연기자들은 대부분 무용학과나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오디션을 통해 공개모집하기 때문에 무용을 전공했거나 춤이나 연기에 특출한 기량이 있어야 들어올 수 있다. 일부는 현장에서 연극,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가 들어온 경우도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곳 활동을 발판삼아 뮤지컬, 연극 배우로 성장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여기 생활을, 단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춤과 연기를 배워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는 김성훈씨는 얼마 전까지 벤처기업에서 일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뛰쳐나왔다. 김씨는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는 꿈을 갖고 있으며 지금 생활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숭의여대 무용과 출신인 김아무개씨는 “힘은 들지만 배우는 게 많다”고 활짝 웃었다.
연습 때는 무엇보다 스트레칭(몸풀기)이 우선이다. 베테랑 연기자들도 공연 전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친다. 공연 도중 자칫 다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무용수 출신의 전문 연기자들이 다리를 일자로 쫙쫙 찢는 가운데 나무토막같이 뻣뻣하게 굳은 나는 어설픈 ‘국민체조’를 거듭했다. 정씨의 지도에 따라 한쪽 다리를 굽히고 다른 쪽 다리를 최대한 길고 낮게 뻗으려 했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몸 마디마디에선 가끔씩 뚜둑, 딱딱 소리가 났다.
어설프게나마 몸을 푼 뒤 오후부터 본격적인 무용 연습 ‘워크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롯데월드 테마송(주제곡)과 크리스마스 캐럴에 맞춰 춤을 추는 기본동작이다. 오른쪽, 왼쪽으로 번갈아 옮겨다니며 몇 가지 손동작을 취하고 앞뒤로도 이동하는 것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자, 보세요. (오른쪽 손을 머리 위로 한 바퀴 돌리면서) 이렇게 손을 돌리고, 발은 이렇게. 두팔을 앞으로 뻗어 펼 때는 ‘뒤쪽’발에다 힘을 실어야 됩니다.” 정씨의 주문과 달리 번번이 방향이 어긋나고 겨우 방향을 맞추면 엉뚱한 쪽 손이 올라가고…. 또 발을 맞추면 손동작이 엇갈리고, 손동작을 겨우 맞추면 박자가 늦거나 빨라 틀리는 일이 반복됐다.
“무슨 역을 맡겨야 하나. 기수를 하기엔 키가 모자랄 것 같고. 얼굴이 드러나는 페이스팀은 대부분 다양한 동작을 익혀야 하는데….” 스탭진과 이런저런 논의 과정을 거쳐 결국 떨어진 배역은 캔디 카트를 밀고 가는 사탕장수 역이었다. 갖가지 장식으로 치장된 손수레를 밀고 가다 중간에 세워놓고 140명 안팎으로 꾸려진 퍼레이드단에 섞여 한바탕 율동을 선보인 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역할이다. 그런 뒤에 행렬에 따라 수레를 밀고 원래 자리에 돌아오면 된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퍼레이드 도중에 선보이는 율동을 제대로 익히면 어느 정도 배역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국인 연기자들의 ‘한철 장사’
첫날 오후에는 내내 워크 프로덕션을 익혔다. 그렇지만 곧바로 공연에 들어가기는 어려워 첫날 저녁에는 제일 쉬운 크리스마스트리 배역을 담당하기로 했다. 트리는 녹색, 흰색 두 가지인데 내가 맡기로 한 흰색 트리는 행렬의 맨 뒤를 따른다. 트리를 미는 데는 연습이 그다지 필요치 않다. 뒤꿈치를 다치지 않도록 종종걸음을 쳐야 한다는 점만 명심하면 된다. 이 때문에 이 역할은 갓 들어온 신입 연기자나 아르바이트생(여기선 ‘협력사원’이라고 부르는)들이 맡는다. 퍼레이드에 동원되는 모형 트리는 사각뿔 모양 철제 뼈대에 두터운 압축 스폰지와 은박지를 덧씌운 것이다. 밖에선 잘 보이지 않도록 창이 나 있어 운전사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트리 운전은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를 연상하면 된다. 물 속 오리발처럼 트리 속의 사람도 끊임없이 종종걸음을 쳐야 한다.
롯데월드 공연팀의 또 하나 특이한 풍경은 외국인 연기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내 연기자들과 함께 공연팀의 두축을 이루며 어디를 가나 쉽게 눈에 띈다. 생김새로 보아 러시아인이겠거니 했는데, 뜻밖에도 우크라이나 출신이 훨씬 많았다. 외국인 연기자 35명 가운데 러시아인은 11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대부분 현지에서 무용수나 발레리나, 극단 감독으로 일하던 이들로 현지 오디션을 거쳐 지난 11월에 한국에 왔다.
우크라이나 국립발레단에서 1년 반 정도 감독으로 일하다 이번에 한국으로 온 세르게이(24)는 “매운 음식말고는 힘든 게 별로 없다”며 한국 생활에 비교적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르게이는 부인과 6개월 된 딸을 고국에 남겨두고 혼자 떨어져 생활하고 있으며 빨리 돈을 벌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겠다는 게 꿈이다. 남편과 함께 일하는 올가(23) 역시 우크라이나 무용수 출신. 올가는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할 때에 견줘 수입이 몇배 많다”고 활짝 웃었다. 이들은 기량에 따라 월 700∼1800달러를 받고 있으며, 롯데가 제공한 서울 문정동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다. 보통 6개월 단위로 계약해 한 차례 연장하며, 1년 뒤에는 고국에 돌아가거나 제3국으로 진출한다. 이들에겐 서울 생활이 한몫잡는 기회인 셈이다.
아이고, 민망해라!
“언니, 여기 분장 좀 해줘요.” “여기도 바빠요.” “내 구두는 어디 간 거야.” 공연 시작 1시간 전쯤이면 사무실이 있는 4층은 갑자기 부산해진다. 복도를 가득 메워 대형 미용실을 연상시키는 분장실 곳곳에서 연기자들이 얼굴을 매만지고 기기묘묘한 분장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어 라커룸(탈의실)에서 공연옷 의상으로 갈아입느라 또 한바탕 난리가 난다. 공연 30분 전 연기자들은 모두 연습실에 모여 개인별로 예행 연습을 한다. 이어 감독이 간단한 주의사항과 지시를 내리고 ‘출발’ 신호를 내리면 연습실 뒤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1층 텐트로 줄지어 내려가 대기해야 한다.
첫날 저녁 공연 때 맡은 트리 역할은 그럭저럭 잘 끝났다. 좌우로 좀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드디어 관객 앞에 나서는 둘쨋날 저녁. 첫 공연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내게 정씨는 걱정할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냥 편하게 하세요. 동작 틀리면 당황하지 말고 태연한 척 자리로 돌아와 사탕을 나눠주면 됩니다.” 이날 낮 공연 때 퍼레이드 코스를 돌면서 해당 배역을 현장에서 지켜본 뒤였다. 그렇지만 정씨의 격려도 소용없이 공연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막상 1층 공연장(거리)으로 나가자 율동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오른쪽, 왼쪽으로 몇번 이동하다가 갑자기 멍해졌다. 황급히 자리로 돌아와 사탕, 카드가 담긴 봉지를 들고와 위기를 벗어나긴 했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여기저기서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떻게 공연이 끝났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처음하는 것 치고는 잘했다”는 의례적인 인사말이 위로가 될 수는 없었다.
체험 마지막날 낮 공연 직전까지 반복 연습을 했지만, 그다지 차이가 없다. 한번 경험한 바여서 좀 좋아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장으로 나가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1만5천개의 눈동자(구경꾼 7천∼8천명)에 질려 자꾸만 동작이 흐트러졌다. 결국 이날도 율동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다른 연기자들이 율동을 선보이는 와중에 수레 손잡이에 걸어둔 사탕 주머니를 들고 나왔다. 겸연쩍게 행렬 이곳저곳을 돌며 고사리손들에게 사탕과 카드를 나눠주며 정해진 시간을 때우느라 곤욕을 치렀다. 전날보다 조금 나아졌다면, 사탕 나눠주는 모습이 약간 더 자연스러워졌다는 정도랄까. 아무래도 ‘무대 체질’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모양이다.
퍼레이드를 마무리지은 뒤 벙어리 장갑을 벗고 이마의 땀을 씻어도 시원하다는 생각보다는 민망한 마음이 앞섰다. 한편으론 무대에 서는 부담을 덜었다는 마음에 홀가분했다. 무대 출연을 앞둔 사흘은 대단히 길었다.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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