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수생’이란 단어는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인턴기자’란 호칭이 번번이 튀어나왔다. “‘실무교육 성격이 흐려지고 청년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받는 인턴제와 달리 본래 목적에 중심을 두려는 새 호칭”이란 부연설명을 하기 번거로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자주 써먹었다. 기자나 교육연수생이나 비슷했다. 첫 시도인 탓이다.
그래도 교육연수생과 인턴의 불편한 동거 덕분에, 편집국은 이 프로그램의 화두인 ‘좋은 기자’를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중심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낸 교육연수생 5명이 안수찬 편집장과 함께 프로그램에 대한 소회와 평가를 나눴다.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았다.
기사보다 완성해가는 과정안수찬(이하 안) 이 프로그램에 지원할 때 어떤 걸 기대했는지 궁금하다.
이선민(이하 이) 2년 전 한 언론사에서 4개월간 인턴을 했다. 그런데 첫 2개월은 연예·뷰티 관련 어뷰징 기사를 쓰는 일을 했고, 나머지 2개월은 원래 일정상 편집국에서 기자들과 어울려야 했는데 회사 사정으로 취소되고 전자책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직접 취재할 기회가 없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고 여겼다. 이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고 얘기한 걸 보고 지원했다. 맨 처음에 낸 취재계획서를 기사로 직접 실행할 수 있었던 게(제1075호 사회 ‘일급 6만원 불법을 감춘 꿀알바의 유혹’ 참조) 가장 큰 장점이다.
강남규(이하 강) 원래 을 즐겨 읽었다. 인턴기자 공모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다시 지원한 거다. 졸업까지 2학기가 남았는데, 대학 언론 6년 한 것 말고는 경력을 쌓은 게 없는 듯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웃음) 내가 정말 기자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서 일단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안 연수 과정의 핵심은 ‘반드시 기자를 하도록 만든다’는 것보다, ‘나와 기자가 맞는지 알아본다’는 의미도 있다.
홍연(이하 홍) 현직 기자들의 지도를 가까이서 받아보고 싶었고 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편집회의에 직접 참여해 기자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으면서 기사가 발전되는 걸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나도 기사를 쓰면서 막막한 부분이 생겼을 때, 멘토가 몇 마디 던지면 생각이 모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사를 작성해가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기초 공사 과정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지민(이하 지) 저널리즘스쿨 내 매체에서는 주로 문화행사 기사를 썼다. 처음으로 이해관계가 얽힌 주체들이 다양한 주제를 잡아서 써봤다(제1074호 기획 ‘몰카 찍는 몸통을 잡아라’ 참조). 관련자가 많으니까 기사에 대한 압박, 책임감을 크게 느꼈다. 관련된 입장을 가능한 한 많이 검토하면서 전문가 의견도 몇 번씩 다시 물어보는 과정이 전엔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김가윤(이하 김)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언론 중에서도 주간지에 관심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저널리즘스쿨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갈증이 있었다. 주간지보다 분량이 짧은 기사들로 훈련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험으로 갈증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
안 교육 과정에서 부족한 점은 뭐였나.
강 “전체회의 참관 뒤 선배들과 함께 하고 싶은 취재가 있으면 자발적으로 얘기하라”고 했는데, 먼저 선뜻 가서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전진식 기자를 따라 독립운동가 후손 인터뷰(제1074호 표지이야기 ‘대한민국이 배신한 밀양 삼대’ 참조)를 갔는데 질문 방법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안 기존 언론사 인턴들은 각자의 기사를 쓰게 하지 않고, 취재보도 경험을 제공한다는 명목 아래 형식적으로 현장에 보내 기성 기자의 잡무를 처리하는 등 폐단이 많은 것 같아서, 이번엔 원칙을 그렇게(자기 취재 프로젝트에 집중하도록) 세웠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부족함이 있었다.
홍 연수생의 자발성과 선배의 코칭이 잘 결합했다고 생각한 건 심상정 정의당 대표 인터뷰였다(제1073호 정치 ‘정의당도, 심상정도 준비됐다’ 참조). 우리가 직접 질문을 준비했지만, 송호진 기자가 인터뷰 전에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취재할지 알려주고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인터뷰가 어땠는지 곧바로 피드백해줬다. 그리고 교육 기간이 총 6주인데 첫 주 일정이 불확실한 게 있었다. 다음에는 5주로 줄여서 첫 주에는 선배들에게 배우고 둘째 주부터 기사 발제를 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하면 어떨까.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니(제1075호 레드 기획 ‘독자에게 월세 받아요!’ 참조) 교육 기간이 일주일 남아서 애매했다.
안 맨 처음에 취재계획서를 요구했다. ‘우리가 여러분을 가르쳐주겠다’라기보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기사가 있다면 쓸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였다. 다만 여러분 입장에선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위로부터의 교육을 바랄 수 있다. 조정이 필요한 것 같다.
김 다른 의견이 있다. 나는 (일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교육과 연수가 붙어 있어서. 월요일엔 전체회의에 참여하고 화·수요일 이틀은 (특강) 공부를 해야 했다. 개인 프로젝트를 취재하는 게 매우 여유롭진 않았다.
안 특강은 어땠나.
강 저널리즘스쿨 경험이 없기 때문에 특강에서 저널리즘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기대했다. 그런데 기자들의 경험담 위주라 기대와는 달랐다. 저널리즘의 객관성·공정성 등 원칙에 대해 강의한 안수찬 편집장의 특강 같은 게 오히려 신선했다.
추천형과 공모형의 사이 좋은 비율은안 취재론·저널리즘 원칙 등 테마별 특강과 탐사보도 사례 등 기사별 특강이 함께 제공될 필요가 있겠다. 특강을 매번 기사로 쓰느라 수고 많았다. 언론은 기사를 통해서만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게 아니다. 교육연수 프로그램은 이 실천하는 일종의 저널리즘 행위다. 그 내용을 독자에게도 적극 공개하려고 했다. 시작 전에 저널리즘스쿨 추천형 선발 계획을 밝혔을 때 논쟁이 많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이 공모형으로도 선발하겠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반발한 이유는 어쨌든 추천형 때문에 공모형 선발 인원이 줄어들 가능성 탓이 아니었을까. 저널리즘스쿨에서 이미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인데 또 교육해주려 하느냐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좋은 기자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대로라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기회를 열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다.
김 추천형으로 뽑힌 처지에서 말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여기 와서 겪어보니,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FJS)은 교육 개념이 많았다면 여기에는 교육만이 아니라 연수도 많다. 스쿨에서 배운 걸 현장을 뛰는 기자들에게 많이 물어볼 수 있는 기회였고 특강에서도 이론적인 것보다 실제적인 걸 많이 배웠다. 공모형에 비중을 더 둬야 하는 게 맞겠지만, 아예 교육 쪽으로만 가면 ‘한겨레 스쿨’ 같은 게 생기는 게 아닐까.
홍 나도 추천형이지만, ‘중복 수혜’라는 데 일정 부분 동의한다. 스쿨에서도 교육받고 여기서도 교육을 받으니까. 그런데 스쿨이 이론이었다면 여기는 현장이다. 둘을 접목해 (저널리스트)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게 좋은 점이다. 추천형에서 논란이 되는 건 공정성인데,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추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낮다고 보진 않는다. 이런 실험을 지속하면 새로운 채용 제도를 위한 고민과 토론의 장이 열리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안 그동안 혹시 바뀐 게 있다면 무엇일지.
이 ‘기자가 되는 것’ 자체가 제1의 목적이었는데, ‘(나는)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가’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홍 저널리스트의 전문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기자는 ‘남이 말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사람’, 정보를 짜깁기해주는 직업인 걸까 회의가 들었었는데, 여러 분야에서 탐사보도를 한 기자들의 특강을 들으며 사안의 맥락을 제대로 전하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가 안 돼도 인생에 도움이 된다김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버스킹 관련 기사를 썼는데(제1073호 레드 기획 ‘버스커와 버스커, 시민과의 거리를 고민하다!’ 참조), 비슷한 때 다른 매체에서도 보도가 나왔다. 그것보다 내 기사가 덜 읽히는 이유가 뭘까. 기사의 질을 떠나 긴 글과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강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는데 기자 되면 뭐하나’ 같은 회의가 있었는데, 그 회의를 돌파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 처음엔 이 경험이 언론사 입사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공채 시험 준비를 못해서 (공채에)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웃음) 다만 취재를 다양하게 하느라 많은 취재원을 만났고, 그런 게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되지 못해도 인생에 도움이 된다. 강추! (좌중 웃음)
안 그동안 고생 많았다. 시행착오가 많아서 미안하다. 직접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과정도 준비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주로 심층탐사 보도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보도록 유도한 건데, 그런 기사들을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더 확산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적용하는 기회를 앞으로 마련해보겠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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