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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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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급 6만원 불법을 감춘 꿀알바의 유혹

단순 심부름 한다면서 알바생을 모집해 ‘환전 업무’ 시켜 불법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성인게임장
등록 2015-08-19 08:28 수정 2020-05-02 19:28

“어디 네가 앉아서 한번 해봐.”
2011년 7월 충북 청주의 한 게임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박수진(28·가명)씨는 고객이 휘두른 주먹에 정신을 잃었다. 무언가 번쩍하면서 섬광이 비쳤다가 일순간 거메졌을 뿐 아무 기억이 없다. 여러 차례 손찌검을 당했지만 그날은 정신까지 잃었다. 정신을 잃고 넘어진 그에게 고객의 폭행은 이어졌다.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서려고 할 때 다리 한쪽에 감각이 없었다. 다리가 들리지 않았다. 게임장 ‘가드’로 일하는 관리자들은 수진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수진에게 화풀이를 끝낸 고객은 자리를 떴다. 하루에 200만~300만원씩을 게임머니로 쓰는 고객이었다. 걷지도 못하는 수진씨를 일으켜 세운 건 마침 게임장에 있던 밥차 이모였다. 화난 VIP를 말리지 않는 것. 그것이 게임장의 룰이었다.

게임기 앞에 앉은 사람들이 게임 화면을 주시하고 있다. 게임기를 모아두고 게임물을 제공하는 이른바 아케이드 게임장들은 대개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게임등급 분류가 거부된 사행성 게임을 제공하며 불법 환전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겨레

게임기 앞에 앉은 사람들이 게임 화면을 주시하고 있다. 게임기를 모아두고 게임물을 제공하는 이른바 아케이드 게임장들은 대개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게임등급 분류가 거부된 사행성 게임을 제공하며 불법 환전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겨레

패키지로 이루어지는 ‘불법’

돈에 이성을 잃은 고객들 앞에서 아르바이트생(알바생)은 하찮은 존재였다. 고객은 종종 게임이 끝날 때까지 알바생을 붙잡아두곤 했다. “너 하나 믿고 여기서 게임하기 시작했는데 잃기만 했다. 돈 딸 때까지 너 퇴근 못할 줄 알아.” 고객은 돈을 못 따면 수진씨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잠 한숨 못 자 눈의 실핏줄이 터지기 일쑤였고 고객이 돈을 잃은 만큼 뺨을 맞기도 했다.

‘룰’이 중요했던 게임장은 불법이었다. 게임장은 일정한 장소에 시설을 갖추고 아케이드 게임물(일정 소프트웨어만을 공급하는 하드웨어를 갖춘 게임물)을 제공하는 곳을 뜻한다. 불법 게임장은 등급 보류된 아케이드 게임을 들여놓거나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곳이다.

이곳에 청소, 서빙 등을 하는 업무로 고용된 청년들은 불법 게임장의 ‘환전’을 여러 일 가운데 하나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실정법에 따르면, 환전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법 게임장 알바를 모집하는 공고는 이러한 불법을 감춘다. 포장은 솔깃하다. 하루 8시간 근무에 일당이 6만~7만원 수준이다.

수진씨와 같이 일했던 김동빈(27·가명)씨는 친구 따라 동네 게임장을 찾아갔다. “사장님은 구청에서 허가받은 합법 사업장이라고 소개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온 뒤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택배회사, 조선소 아르바이트까지 몸이 너무 고달팠다. 그때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게임장에서 일했다. 속칭 ‘홀맨’이라는 걸 해보라고 했다. 홀맨은 게임장 내에서 단순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다. “일급 6만원이면 하루 종일 물류창고에서 허리를 못 펼 때까지 택배를 날라야만 만질 수 있는 돈이에요. 식비 5천원까지 별도 지급됐어요. 이게 웬걸 했죠.” 바로 하겠다고 응답했다.

경찰 조사 뒤 사장의 솔깃한 제안

동빈씨가 일한 지 고작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게임하던 손님이 돈을 많이 잃자 홧김에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 달려온 경찰에 붙들렸다. 끌려가는 와중에 게임장 주인은 경찰 조사를 “형식적인 것”이라며 “겁먹지 말라”고 속삭였다. 경찰은 ‘가담 정도’를 따져물었다. 단순 알바생이라고 계속 말했다. 경찰의 반응은 차가웠다. “적발된 애들 다 그렇게 말해.” ‘희생양’이 필요했다. 진짜 사장 대신 ‘바지사장’도 나타났다. 사업장 등록할 때부터 빌린 이름이었다. 어떤 관계인지는 모른다.

동빈씨는 지금도 억울하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서야 그게 불법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빈씨는 단순 심부름 말고도 현금을 게임 머니로 바꿔주는 일을 했다. 벌금을 대신 내준 게임장 업주는 솔깃한 제안을 던졌다. “일급을 13만원까지 올려줄 테니 경찰 단속에서 항상 총대를 메봐라.” ‘홀맨’에서 ‘부장’급으로 승진시켜준다는 뜻이다. 전과를 담보로 한 도박. 동빈씨는 거절했다.

수진씨도 불법인 줄 모르고 일을 했다. ‘알바생’ 수진씨는 승진이 빨랐고 많은 일이 맡겨졌다. 수진씨 때문에 일부러 게임장을 찾는다는 고객들이 생기자 업주는 다른 알바생보다 수진씨의 일급을 더 쳐줬다. 석 달 만에 얼떨결에 얼굴마담이 되었다.

환전 창구는 간혹 게임장 내에 들어와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게임장 밖 외진 골목에 환전상을 따로 둔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뿐 아니다. “아예 손님들 카드나 통장을 받아 기계(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직접 뽑아오기도 했으니까요.” 하루 수익금을 은행에 입금하러 가는 일도, 영업용 ‘대포폰’ 전화비를 내러 가는 일도 수진씨의 몫이었다. 업주가 신분 노출을 꺼려 알바생을 ‘활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수진씨는 “알바생이 게임장 일에 꽤 익숙해졌다 싶으면 업주가 알바생 명의로 통장과 휴대전화를 개설하려고 든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집계한 2013년 전국 사행행위등규제및처벌특례법 위반 검거 건수는 1476건, 인원은 2536명이었다. 이들은 불법 사행성 게임장 업주와 종업원이다. 2012년(2096건, 3362명)과 비교해 건수는 30%, 인원은 25% 줄었지만 여전히 게임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많다.

2015년 1월 대전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계,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대전 서구의 한 불법 게임장을 단속하고 있다. 불법 사행성 게임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주택가와 공장단지로 숨어들어 적발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월 대전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계, 광역수사대 형사들이 대전 서구의 한 불법 게임장을 단속하고 있다. 불법 사행성 게임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주택가와 공장단지로 숨어들어 적발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부경찰서의 한 경찰은 “지하나 창고를 빌려 위장 운영하는 게임장은 누가 봐도 불법이다. 그런데도 어린 알바생들이 현장에서 종종 검거된다”고 말했다. 초범에 가담 정도가 매우 가볍다면 신원조회만 간단히 받고 끝나기도 한다. 운이 좋은 경우다. 하지만 부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고액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솔깃해 몇 번 적발되고도 계속 게임장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알바생들은 처벌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영훈(26·가명)씨가 그랬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늘 ‘신원조회’ 두려움

“밖에 나가도 딱히 할 일이 없어요. 최저 시급 정도로는 먹고살지 못해요.” 영훈씨는 벌써 ‘전과 2범’이다. 두 번은 벌금형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적발될 때는 벌금형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년간 게임장에서 일하며 숱한 적발 위기를 넘긴 그는 26살의 나이에 영업부장직에 올랐다. 영훈씨는 “부장으로 승진된 뒤 청소나 담배 심부름 같은 잡일에선 바로 제외됐다. 대신 손님 데려오는 일을 전담한다”고 했다. 밖으로 돌아다니며 손님을 데려오고 한 명당 5만~10만원의 수당을 받는다고 했다. 난동을 부리는 손님에게 눈치껏 택시비를 쥐어주며 내쫓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고액 일당’은 사람을 바꿨다. “손님들이 챙겨주는 ‘뽀찌’까지 합치면 하루 15만~20만원은 우스웠어요.” ‘뽀찌’는 게임으로 딴 돈 중 일부를 얻는 것을 말한다. 수진씨는 당시 갈수록 대담해졌다고 회고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발각된 경우도 있었다. 경찰이 톱으로 게임장 문을 자르기 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게임장 밖으로 빼돌리고는 다시 게임장 안으로 들어왔다. 불법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이다. 모두 두둑한 일당이 만들어낸 배포였다.

게임장을 벗어났어도 후유증은 남는다. 수진씨는 VIP 손님에게 맞고 게임장을 나온 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 게임장을 벗어난 지 4년이나 지났지만 그때의 악몽을 아직도 꾼다. 연고지를 떠나 멀리 나왔지만 게임장 고객을 마주칠까봐 불안에 시달린다.

게임장에서 일하다 벌금형을 받은 지 6년이 지났지만 김동빈씨는 지금도 불안하다. 지방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그는 직장을 옮길 때마다 늘 ‘신원조회’의 두려움에 휩싸인다고 했다. 벌금형을 받은 기록이 취직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을 알지만 불안하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번에 바뀐 건 없나 싶어서 인터넷 검색창에 ‘신입사원 범죄 조회’를 쳐보고는 한다. “도박방조죄를 고용주가 알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동빈씨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불안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모두 처음에는 알바생

벌금 전과가 생기면서 영훈씨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그러나 하루하루 손에 쥐는 돈이 많아질수록 발을 빼기 힘들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영훈씨는 말했다. 게임장에서 맛본 달콤함이 그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아닐까. 세상 안으로 돌아오려 해도 그 길이 끊겨버린 것은 아닐까.

맞으면서도 수진씨는 1년6개월을 일했다. 영훈씨는 전과자가 되고도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모두 처음에는 알바생이었다. 불법 게임장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고액 알바’를 내걸고 오늘도 알바생으로 ‘첫발’을 내딛기를 유혹하고 있다.

이선민 교육연수생 qmfkqh6@naver.com
좌충우돌  취재기


일주일  만에  메신저가  도착하다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을 텐데. 처음에는 고액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여름방학, 대학생들을 위한 ‘꿀알바’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하루 8시간 근무에 6만~7만원 당일 지급. 구인·구직 사이트 2곳에 올라온 게임장 아르바이트 공고의 조건은 놀랄 만했다. ‘게임장’으로 검색하자 예상외로 공고가 많았다. 서울 영등포구·구로구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충북 청주 등 지역도 다양했다.
취재를 위해 직접 취직하고 싶었다. 면접을 가서 만난, 카운터를 지키는 부장은 “하루 8시간 근무, 일주일 두 번 쉬고 담배 심부름이나 청소 같은 단순한 일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대학 졸업하고 왜 취직 안 하고 왔냐”고 한 뒤 앞뒤 맞지 않게 덧붙였다. “요즘 중소기업 취직하느니 여기 와서 일하는 게 낫지.” 그러나 합격 전화는 오지 않았다.
게임장 주변에서 취재원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알바생은 담배나 은행 업무 심부름을 하러 외출할 때를 빼고는 게임장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구인·구직 사이트에 글을 남겼다. 사행성 게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현재 일하는 알바생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이 될 때까지 전화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지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일주일째 되는 날 자정이 넘은 시각, 인터넷 메신저로 수진씨가 말을 걸었다. “많은 친구들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수진씨와의 대화는 이틀간 계속됐다. 메신저(카카오톡)로는 한계가 있어 전자우편으로 질문을 보내면 수진씨가 답했다. 그는 성실히 말해줬다. 수진씨는 1년6개월간 게임장에서 일하며 또래 알바생을 많이 만났다. 함께 일했던 영훈씨와 동빈씨 이야기도 들려줬다. 게임장을 떠난 수진씨는 “비록 150만원짜리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옛날보다 마음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수진씨와 동빈씨 둘 다 게임장에서의 삶을 후회하는 듯했다. 그러나 영훈씨는 오늘도 그곳에 머물고 있다. 세 사람 모두 가명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기사화하는 데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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