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이었다. 1차 투표 결과가 그대로 결선투표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뒤집혔다. 지난 7월18일 마무리된 정의당 대표 선거 얘기다. 1차에서 득표율 12%포인트 차이로 노회찬 전 의원에게 뒤진 심상정 의원이 결선투표에서 5%포인트 차이로 노 전 의원을 누른 것이다. 이후 당 지지율도 소폭 올랐다. 7월24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이 7%로 나타났다. 5% 이하의 지지율에서 조금 상승한 것이다. 이변을 일으킨 결선투표의 흥행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듯 보인다.
묻고 싶었다. 청년정치, 진보정당의 미래, 야권연대, 그리고 정치인 심상정까지. 20대 초·중반의 교육연수생 4명이 7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심 대표와 만났다. 그는 바빠 보였다. 앞선 일정 때문에 인터뷰는 시작부터 지연됐고, 윤장현 광주시장이 대표 취임을 축하하러 의원실을 예방해 잠시 인터뷰가 중단되기도 했다.
“내가 요즘 이렇게 바쁘게 살아요.” 7월20일 대표로 공식 취임한 뒤 ‘이렇게’ 살고 있다는 심 대표와의 인터뷰는 1시간20여 분간 진행됐다. 심 대표는 “청년 정치 지망생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서 그 열기로 북적거리는 정당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청년 정치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정당이 발전하고 있느냐 판단할 때 차세대 리더들의 성장은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정당은 차세대 지도자들이 왕성하게 훈련되고 또 성장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표 선거에서 30대인 조성주 후보가 반향을 크게 일으켰는데, 역시 진보정치 태내에서 성장한 정치인이다. 그동안 20~30대의 차세대 리더들이 진보정당에서 많이 성장해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못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황순식 과천시의원은 조성주 후보와 나이가 같다. 30대로 시의회 의장까지 했다. 내년에는 우리 정의당이 청년들의 정치적 챔피언이 됐으면 좋겠다. 내년 총선부터 시작해서 가급적 많은 젊은 후보들을 입후보시키겠다.
다음 총선에서 정의당의 후보 중 청년 후보 할당을 얼마나 할 계획인가.청년 할당, 이건 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 당은 50대 미만이 전체 당원 중 80%다. 그중에 절반이 20~30대다. 할당이라는 건 일종의 소수자 우대 정책인데, 이번에 조성주 신드롬을 볼 때 청년 할당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청년 정치인이 북적대는 정의당을 만들면 당연히 청년 지도자들이 성장하지 않겠나.
이번 대표 선거에서 조성주 후보가 진보정치의 비전과 좌표를 어떻게 설정할 건지 화두를 던진 측면이 있다. 2세대 진보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지역구 국회의원이 (원내) 3개 정당 중엔 나 한 사람이다. 당원들에 의해 비례대표가 됐을 때 만났던 분들과 지금 지역구에서 만나는 분들이 전혀 다르다. 비례대표 할 땐 노동조합 조합원, 시민단체, 촛불시민을 (대부분) 만났다. 지금은 주로 삶 속에 있는 분들을 만난다. 학교 가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이나 진로 교육을 하는 곳, 경로당 등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봉사단체들 김장하는 데 가서 만나기도 한다.
조성주 후보가 얘기하는 ‘광장 밖의 시민’이 얼마나 많고, 그분들이 정치의 따뜻한 손길을 얼마나 기다리는지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임대아파트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가면 야당이 없다. 여당에 대한 부질없는 기대만 있다. 그런 분들께 의지가 되는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진보정당의 기반이 조직노동 또는 시민운동이었다. 그 밖에 있는 시민들의 삶에 착근해야 한다는 큰 문제의식을 수용하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해 오늘은 청년들한테 ‘미안하다’는 말로 대신하려고 한다. 나름대로 향후 구상이 있다. 그 구상이 단순한 선언이나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구상을 구체적으로 다듬는) 쉼표가 필요할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우리 정의당이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정당이 되어 있을 거다. 올해 안에 회의가 아니라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착실히 준비해나가겠다.
지금 정의당은 청년들에게 ‘미안한 정당’이다?지금까지는 (그렇다). 대표에 출마하면서 청년학생위원회 간부를 만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당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고 물으니 그러더라. “미래가 불확실하다. 정치에 올인하고 싶은데 일단 군대를 다녀오기로 했다.”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박빙의 인생을 사는 청년들이 미래가 불확실한 정당에 ‘올인’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젊은 정치 지망생들이 자기의 열정과 투혼으로 이 당과 함께 승부를 볼 수 있게 하는 그런 당으로 만들어보겠다.
지난 3월 당대회에서 (천호선 당시 대표와 함께) 힙합 공연을 했다. 언론에선 젊은 이미지를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닥친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구체적 해법보다는 (당과 정치인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정치권이 젊음의 이미지만 소비하는 게 아닌가란 의견도 있었다.당대회 때 힙합 공연을 한 건 당원들과 호흡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당에 젊은 당원이 많으니까. 청년들의 목소리는 ‘내 얘기를 일단 들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청년세대를 다양하게 만나서 쭉 들어볼 생각이다. ‘톡톡 튀는 문화, 젊은 감각, 통통 튀는 아이디어 한번 내봐라. 재기발랄한 프로그램 만들어봐라’, 그런 식으로 청년들을 호명하진 않으려고 한다. 우리 당이 청년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을 벤치에만 앉히지 않고 직접 플레이어로서 그라운드에서 뛰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청년정치학교’를 정의당 당원이 아니어도 꼭 한번 와보고 싶은 우리 당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
정의당이 좋은 당인 줄은 알겠는데 확실한 매력 포인트가 없는 것 같다. 인지도 있는 기존 정치인(심상정·노회찬)이 계속 정의당의 이미지를 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그래서 심상정이 매력이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웃음) 노회찬·심상정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있기 때문이 아니고, 이 둘만 있기 때문에 문제다. 친화력을 갖는 대중 정치인이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고 본다.
유럽의 진보정당과 젊은 리더들에게 우리나라 언론이 많이 주목하고 열광한다. 하지만 젊은 리더들이 성장하도록 10년, 20년 동안 기반을 닦는 리더들에게는 주목하지 않더라. 정치인이 젊어지는 게 아니라 당 자체가 젊어져야 한다. 젊은 리더들이 맘 놓고 자기 비전을 펼칠 수 있도록 기틀을 놓는 당대표가 되겠다.
“연합정치는 원칙이고 일상이다”‘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해왔다. 무엇이 대중적 진보정당인가.‘진보는 지향이고 대중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중적 힘이 필요하다. 이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말은, 이제는 우리 당이 진보적 가치와 합리적 정책 대안을 가지고 시민 일반, 노동하는 시민, 비정규직 시민, 여성 시민, 그리고 청년 시민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다. 운동권 정당, 노동운동, 시민운동의 한계 속에만 있는 정당이 아니라.
내년 총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연대에 대한 심 대표의 입장이 궁금하다.옛날에는 진보정당 내에서 연합정치가 옳은지 그른지, 야권연대를 할 건지 말 건지가 굉장히 중요한 쟁점이었다. 지금은 현대 민주정치에서 ‘연합정치는 원칙이고 일상이다’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우리 당에서) 논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연대라는 것도 당익에 부합하고 정치발전에 득이 될 때 의미 있는 거다.
의미 있는 야권연대는 세 가지 단계로 생각하고 있다. 우선 ‘자강’에 성공해야 한다. ‘정의당이 강하고 매력적인 정당이다’라는 신뢰를 빠른 시일 내에 얻어야 한다. 또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에 성공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 논의가 가능하다. 국민들이 ‘우리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실패하는 거다. 두 번째는 진보(세력의) 결집을 통해 당 지지율을 두 자리까지는 올려놔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의미 있는 야권연대가 가능하지 않겠나. 세 번째로는, 그런 토대 위에 연대 전략을 구체화시켜나가겠다. 여러분들이 올해 말 정도 다시 나를 인터뷰하게 된다면 세 번째 주제에 집중해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잘한 건 ‘당 대표 선거’ 도전청년 일자리 증대를 위한 방안이 있나.우리나라의 행정공무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볼 때 적지 않은데, 복지서비스 분야를 포함하면 평균 100만~130만 명이 적다. 복지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를 정부가 나서서 대거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다. OECD 평균으로 보면 공공분야에서 100만 개 정도 더 창출할 수 있다. 교육·의료·복지·보육이 그렇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가는 전략과 함께 맞물려서 진행돼야 한다.
그 다음에 청년들의 벤처기업 입사나 창업을 위한 지원사업도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컨설팅 또는 기술훈련 지원, 이런 프로그램들을 정부가 나서서 확대 제공해줘야 한다. 그다음에 조성주 후보가 중요하게 제기한 정책 중 하나가 청년들에게 실업수당을 줄 수 있도록 고용보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거다. 청년들 같은 경우는 직업이 없어서 보험료를 못 내니까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다. 몇 개월이라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일자리도 알아보고, 교육훈련 기회를 가져서 더 좋은 일자리 찾을 수 있다. 그런 기회를 지원해주기 위해 청년 실업수당을 줄 수 있도록 보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다음 총선까지 20석 확보가 목표라고 했다. 그 계획을 말해달라.그건 영업비밀이지. (웃음) 중요한 것은 교섭단체(현행 의원 20명 이상)가 돼야 정당으로서 유의미한 활동을 할 수 있고, 교섭단체가 돼야 책임질 수 있는 정당이 된다는 거다. 유명한 정치학자가 얘기했다. “유력 정당이 정당이고,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소수 정당은 압력단체다.” 우리는 압력단체로서 정당의 역사를 마감하고 이제는 유력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게 목표다.
선거제도 개혁만 해도 현재 수준에서 교섭단체가 된다. 두 번째로 교섭단체의 높은 장벽(기준)을 절반으로 줄이기만 해도 전망이 밝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정의당의 전략은 당 그 자체다. 당을 좋게 만들고 (그것을) 확인하게 되면 국민들은 최소한 두 자릿수 이상 의석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정치 인생을 중간평가 해달라.벌써 중간평가를? (웃음)
이 결정은 후회하지 않는다거나, 이 결정은 과오였다거나.지금까지 한 정치적 결정 중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이번에 대표에 도전한 거다. 주변에서 다 말렸다. 질까봐. 그래도 정치를 시작한 이래 좋은 정당을 만드는 일에 열정을 바쳐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그동안 기회가 없었다. 특히 내년 총선, 그리고 대선까지 이어지는 이 국면은 진보정치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다. 이런 시기야말로 정말 당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과오는 정말 많다. 진보정치의 역사가 오류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오류가 많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정의당도, 심상정도 준비됐다는 거다.
글 강남규 교육연수생 slothlove21@gmail.com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심상정 대표는 정의당을 “지금까지 청년들에게 미안한 정당”이라고 했다. 청년을 벤치에 앉히지 않고 플레이어로 뛰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았다. 청년 할당제를 넘어서는 뚜렷한 가치(대안)가 있으면 좋겠다.
내게 지금까지의 정의당은 ‘좋긴 좋은데 도무지 뭐가 좋은지 알 수 없는’ 정당이었다. 심 대표는 젊은이들에게 애매모호함을 던져줘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더라. 매력적이지 않았던 과거를 쿨하게 인정하고 미래를 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어서 정의당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길!
심 대표는 보좌관이 밤새 정리했을 모범 답안지를 거의 보지 않다가 나중에는 손에서 내려놓았다. 진심을 전달하려는 노력과 정치(국회) 경력 10년의 노련미가 반씩 엿보였다. 심 대표처럼 정의당도 팔딱팔딱 뛰는 열정과 유능함을 고루 갖춘 정당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0년 지방선거는 내 첫 선거였다. 심상정 대표는 경기도지사 후보였고 나는 유권자였다. 그 선거에서 결국 나는 아무도 찍을 수 없었다. 그 얘기(심 대표의 경기지사 후보직 사퇴)를 듣고 싶어 중간평가를 요청했지만 듣지 못했다. 140자로 풀 수 없는 생각들이 복잡하게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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