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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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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자를 어떻게 교육하느냐다”

<한겨레21> 제1064호 ‘좋은 기자 프로젝트’ 보도 이후 공감·응원·따가운 비판 모두 높아… 견고한 언론권력 바꿀 현실적·구체적 대안 제시 필요
등록 2015-06-24 07:08 수정 2020-05-03 04:28

은 제1064호 표지이야기 ‘좋은 기자’ 프로젝트에서 전통 언론의 공개채용(공채) 제도를 비판했다. 한국 전통 언론이 50여 년 동안 유지해온 공채 제도는 기자 지망생의 어학(국어·영어), 상식과 글쓰기(논술·작문) 능력을 검증하는 데 집중한다. 각 언론사마다 1년에 한 차례 정도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십수 명을 뽑는다. 여기에 수천 명이 지원하므로 경쟁률도 높다.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공채 과정에서 예비 저널리스트들이 저널리즘적 자질과 능력을 훈련할 수 있는 이론적·실무적 기회는 많지 않다. 기회 자체도 제한적인데다, 이런 훈련이 언론고시 통과에 득이 될 거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2015년 6월14일 오전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한겨레신문 공채 24기 필기시험이 진행됐다. 한겨레 탁기형 선임기자

2015년 6월14일 오전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한겨레신문 공채 24기 필기시험이 진행됐다. 한겨레 탁기형 선임기자

언론이 자체적으로 저널리즘 원칙과 윤리에 충실한 전문적 교육을 하지도 않는다. 기자 지망생을 책상 앞 공부에 몰두하도록 한 공채 제도를 반세기 넘게 유지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은 수습기자 교육제도 역시 바꾸지 않고 있다. 공채 통과 뒤 3~6개월간 이뤄지는 수습기자 교육은 주로 사회부 경찰 출입 기자들이 일대일로 가르치는 도제식이다. 일주일 내내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경찰서 기자실에 붙박여놓고서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는 등 반인권적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도 사건 기사, 전통 텍스트 기사 교육을 위주로 한다.

대학을 포함한 저널리즘 교육기관도 언론의 공채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저널리즘 전공을 강화하는 대신 ‘언론고시반’을 운영해 독서실 같은 공간을 제공한다. 언론사가 운영하는 교육센터도 빠른 공채 통과를 위한 공채용 글쓰기 교육 위주다. 2000년대 후반에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이화여대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FJS)처럼 이론·실무 커리큘럼을 모두 갖추고 이를 구현하려는 교육기관이 생겼지만 영향력은 아직까진 미미하다. 그나마도 다른 대학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취약한 저널리즘, 기성 언론 책임 커

은 이런 문제의식으로 스스로 ‘좋은 기자 인큐베이터’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교육에 충실하고자 인턴 대신 ‘교육연수생’이란 이름을 쓰기로 했다. 1년에 두 차례 진행하던 기존 인턴기자 제도를 연중 상시 운영제로 바꾸고 저널리즘 교육기관과 연계한 추천형 교육연수생도 받기로 했다. 저널리즘 교육기관과 연계되지 않더라도 좋은 기자 되기를 고민하는 기자 지망생을 위해 공모형 교육연수생 제도는 그대로 유지한다.

보도 뒤 기자와 편집장의 전자우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언론인을 꿈꾸는 온라인 카페 ‘아랑’ 등을 통해 보도에 대한 감상과 의견이 전해졌다. 공감하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문제의 진단과 해결 방안이 잘못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특히 저널리즘 교육 문제에서 기성 언론이 누구보다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점을 강조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연장선상에서 공채 제도를 고치기에 앞서 기자 선발 뒤 수습 교육의 질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랑 카페에서 ‘르포르타주’란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은 ‘의 사스마와리에 반대합니다’란 제목의 글에서 “ 커버스토리는 ‘기레기’가 그득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낳은 원인 중 하나로 공채 제도를 꼽았다. 획일화된 기자 선발 및 교육제도 때문에 저널리즘 정신을 제대로 배우지도 구현하지도 못하는 기자가 붕어빵 찍어내듯 길러진다는 지적이다. 한국 언론의 모래알처럼 많은 문제점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를 잘 짚어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문제의 핵심이 기자 선발 뒤 받는 ‘사스마와리’로 불리는 수습기자 교육에 있다고 봤다. “ 기사는 기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언론사 입사 전-입사 후’ 단계 중 ‘입사 전’ 단계의 문제점(언론고시)을 지적하고 대안 역시 입사 전 단계(저널리즘스쿨)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 기레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오히려 ‘입사 후’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중략) 결국 진짜 문제는 기자를 ‘어떻게 뽑느냐’보다는 ‘어떻게 교육시키느냐(만들어가느냐)’에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설령 공채 제도가 바뀌더라도 언론사 내부가 바뀌지 않으면 해당 신입 기자를 “이전과 다르게 보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이고 저널리즘 정신이 충만한 ‘신인류’ 기자로 키워낼” 일이 어렵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저널리즘스쿨의 저변이 넓어지고 채용 방식이 바뀌려면 앞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저는 그 기간을 넋 놓고 기다릴 게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사스마와리를 없애고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중앙 일간지 5년차 기자인 ㄱ씨는 “저널리즘을 모르고 언론사에 들어와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생고생한 얘기를 더 다뤘으면 어땠을까 싶다. 기자 일을 할수록 내가 하는 일이 무서울 경우가 많다. 그럴 때 판단 기준으로 저널리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수습 교육은 ‘면피 잘하는 기자’를 길러내는 게 전부인 것 같다. 또 연차 낮은 기자들이 교육을 맡는데 교육 마인드는커녕 내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교육까지 맡으려니 쉽지 않았다. 교육을 하려면 교육자도 길러야 하는데 회사가 이 부분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5년차 기자 “입사 뒤 저널리스트 되려 생고생”
<한겨레21>은 제1064호에서 전통 언론의 공채 제도를 다룬 표지 기사를 21쪽에 걸쳐 보도했다. 한겨레

<한겨레21>은 제1064호에서 전통 언론의 공채 제도를 다룬 표지 기사를 21쪽에 걸쳐 보도했다. 한겨레

저널리즘스쿨 활성화도 기자 되기의 진입 장벽을 높인다는 점에서 문제의 주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표지 시리즈 중 ‘글로벌 스탠더드 만들어진 기자’에서 다룬 것처럼 저널리즘 교육의 제도화는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이 기성 언론에 진입하는 데 큰 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년이란 시간과 학비 등 기자 지망생들에게 시간적·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기업·대학 중심 방법이라는 비판이다. 연장선상에서 의 추천형 인턴제는 ‘특혜’란 비판도 나왔다.

아랑 카페 운영자이자 언론사 공채 관련 책을 다수 출판한 이현택 기자는 한국 사회 특성상 현행 공채 제도가 공정성·비용 측면에서 적합한 방식이라고 했다. “공채 준비할 때 돈이 없어서 한겨레(교육문화센터)가 운영하는 언론고시 수업을 듣지 못했다. 카페 운영에 참여하게 된 것도 돈 없고 빽 없는 친구들이 기자 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서다. 저널리즘스쿨은 로스쿨처럼 장벽을 높이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편으로는 ‘좋은 기자’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자신을 ‘언시생’이라고 밝힌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메시지에서 “저널리즘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을 지원해주려는 게 언론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면 찬성이다. 국내외 언론의 (수석 기자인) 대기자들을 보면, (과연 내가) 입사용 글쓰기 연습하다가 현장에서 구르기만 한다고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다”고 썼다.

또 다른 페이스북 이용자도 메시지에서 “처음에는 기자 지망생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보여서 화가 많이 났다. 지망생은 그 ‘기레기’도 되지 못해 눈물 흘리고 심지어 그들 중 99%는 이 길을 선택했다가 시험에 붙지 못한 대가로 남들보다 뒤떨어진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그들을 향해 ‘너희들 때문’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글을 계속 읽다보니 할 수 있는 곳에서부터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인 거 같다. 이전에 이 대학 언론들에 협업하자는 제안을 먼저 해온 것도 떠올랐다. 의 이번 실험이 취지대로 진행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저널리즘스쿨, 진입장벽 될 수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이라는 ㄴ씨는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ㄴ씨는 대학 언론고시원에서 1년여를 지내다 지난해 세명대에 입학했다. 그는 스쿨의 교육 역량이 현재보다 더 강화되어야 한다면서도, 지난해 세월호 참사 취재를 갔던 일을 들려줬다.

“현장 상황을 교수님께 보고하자 무리한 취재를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런 상황에서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는 게 스쿨에서 배운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ㄴ씨는 시간을 지체한다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막상 스쿨에 있으니 공채 준비를 못하겠더라고요. 스쿨에서 수업 듣고 과제하고 기사 준비, 수업 준비하면 다른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요. 토익 공부 못하는 친구도 많습니다. (시험에) 나올 만한 주제의 논술 외우고, 상식(을 집중적으로) 파는 등 빨리 공채에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뻔히 알다보니 스쿨에 있는 시간이 괴로웠습니다.”

문제에 대한 진단은 맞지만 한국 상황을 더 고려한 대안을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공채 제도가 문제라는 진단은 맞다. 언론고시 시스템은 명문대 출신의 어학 점수 높고 논술 잘하는 사람을 선발하는 정도다. 뉴스 제작 방식 자체가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디지털 숙련도, 공익 의식, 전문성 등을 갖춘 이를 공채로 선발하거나 회사 교육에서 갖춰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학비가 비싼 미국 명문대 모델보다 공적 개입을 접목한 모델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뉴욕시립대학교(CUNY)는 공동체(시민)의 돈으로 저널리스트를 키우고 해당 저널리스트가 지역에 있는, 형편이 어려운 언론사에서 1년 이상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한다. 저널리즘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양질의 기자가 양질의 뉴스를 만들고 결국 성숙한 여론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프로페셔널 저널리즘은 여전히 공적 차원에서 중요하다.”

실험, 언론문화 바꿀 계기

일부는 의 교육연수생 프로그램 실천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박재영 고려대 교수(언론학부)는 “한겨레신문 차원에서는 실패 부담이 크지만, 그보다 작은 조직인 은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실험이 가능한 장소다. 공채나 수습 교육이나 한국 언론의 오래된 관행과 문화의 문제라 쉽게 바꿀 수 없다. 교육연수생 제도를 완충지대로 잘 활용하면, 기자와 연수생이 서로 배우면서 기존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전통 언론의 저널리즘이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데는 목소리를 같이했다. 분명 공채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다만 손볼 곳은 너무나 많은데 언론 권력은 견고하다. 저널리즘 발전을 위한 언론 권력 비판과 현실적·구체적 대안 제시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독자들의 반응을 깊이 새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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