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번에는 라응찬(77)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꼬리’만 자르고 끝내지 않으려는 걸까?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이선봉 부장검사)는 지난 2월6일 라 전 회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라 전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08년 남산에서 이상득 전 의원으로 추정되는 정치인에게 3억원을 전달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 불법 차명계좌를 운용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자사주를 거래했다는 의혹, 2010년 신상훈 전 신한은행 사장을 축출하기 위해 관련자들의 계좌를 불법 조회했다는 의혹 등등. 참여연대는 자본시장법, 금융실명제법,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라 전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라 전 회장은 그동안 검찰의 수사망을 교묘하게 피해다녔다. 2009년 대검 중앙수사부는 라 전 회장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원을 준 사건을 내사하는 과정에서 차명계좌의 존재와 증여세 포탈 사실을 확인하고도, 세금을 자진 납부하는 선에서 수사를 끝냈다. 이번 참여연대 고발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은 라 전 회장이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라는 이유를 들어 소환조사를 차일피일 미뤄왔다(제1033호 이슈추적 ‘언제까지 라응찬의 꼬리 끝만 자를 건가!’ 참조).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라 전 회장과 검찰의 ‘스텝’이 꼬였다. 지난 1월29일, 농심은 주주총회를 소집하면서 라 전 회장을 새 사외이사 후보로 공시했다. 라 전 회장이 신한금융지주 회장으로 있을 당시, 이상윤 전 농심 대표이사(부회장)가 2004~2008년 신한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맡는 등 농심과 신한은 돈독한 관계였다. 농심 쪽은 “금융 분야에 오래 몸담았던 경험을 접목하고자 선임했고, 건강은 많이 회복된 걸로 안다”고 밝혔다.
농심의 해명이 오히려 기폭제가 됐다. 참여연대는 지난 2월3일 “농심이 소환조차 응할 수 없는 치매 중증 환자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리가 없다. 검찰이 라응찬을 봐주기해왔다는 의혹이 더 짙어졌다. 이래도 검찰은 라응찬에 대한 소환조사와 사법처리를 마냥 미루기만 할 거냐”는 성명을 발표했다. 검찰은 그날 저녁 바로 해명 자료를 냈다. “라 전 회장의 알츠하이머 여부에 대해 주치의 서울대병원 의사에게 확인한바, 외견상으로는 정상인과 유사하게 보이나 기억력 테스트 검사 결과에 의하면 기억력 저하가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에 조사 진행에 따라 알츠하이머 상태 등을 정확히 확인하여 소환조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소환조사를 할 수 없다고 한 바 없다.”
결국 라 전 회장은 스스로 농심 사외이사 후보에서 물러났다. 농심은 신규 선임 후보자도 정하지 못한 채, 서둘러 ‘라응찬 사외이사 후보자 자진 사퇴’를 정정 공시했다. 낯뜨거워진 검찰도 라 전 회장을 전격 소환했다.
검찰의 의지, 그것이 문제로다이제 남은 의문은 2가지다. 첫째, 라 전 회장은 진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을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발간된 ‘신한은행 동우회 소식지’를 보면, 그는 지난해 말 동우회 송년모임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그가 서진원 신한은행장을 시켜서 참석자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등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를 골프장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둘째, 검찰은 과연 라 전 회장을 형사처벌할 의지가 있을까? 검찰은 지난 1월부터 ‘남산 3억원’에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그래도 판단은 이르다. 라 전 회장 소환조사가 ‘꼭지’를 따려는 것인지, ‘라 전 회장의 기억력이 진짜 좋지 않더라’는 핑곗거리를 만들기 위한 것인지는 미지수다. “원래 모든 범죄인은 수사받을 때 기억력이 안 좋은 법”(이헌욱 변호사)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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