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또 저의 자존감을 찾기 위해서 저 스스로 대한항공을 관두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골리앗의 갑질 횡포 앞에 마주선 다윗, 박창진 사무장은 과연 어떻게 될까. 예고된 운명을 감지했는지 그는 스스로 관두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아주 작은 소망 하나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고독과 불안. 2014년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핵심 감성이다.
2014년은 난민의 시대
난민이란 정치적 박해를 피해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등장했지만 국제법상 보호 대상이 되는 난민의 범위는 점차 확대돼왔다. 경제난민, 기후난민 등 꼭 정치적 박해가 아닐지라도, 꼭 자국을 떠나지 않았더라도 국가의 온당한 보호를 기대할 수 없고 절박한 생의 위기에 처해 있다면 난민으로 보는 셈이다. 이런 정의에 비춰보면, 2014년은 가히 박창진 사무장을 비롯한 ‘난민의 시대’라 부름직하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와 함께 304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삼켜버린 세월호 참사는 피난짐도 아닌 여행가방을 메고 있던 이들의 난데없는 죽음이었다. 의 독일 하멜른이 기아로 숨진 아이들의 잔혹 도시였다면, 경기도 안산은 250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수장(水葬) 도시가 되었다. 아이의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한 유가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거리로 나앉았고 갖은 모욕에다 사생활까지 탈탈 털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온갖 산고 끝에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에 집권여당은 정권의 안전을 도모할 ‘입’들을 심어넣었다. 한꺼번에 여럿이 죽은 사고는 그나마 세간의 이목이라도 끌 수 있었건만, 일상의 대형 참사는 소리도 없이 이어진다. 집계된 수만 한 해 2천 명에 이르는 산재사망 노동자의 목숨은 ‘당연한 손실’처럼 취급된다. 대법원마저 칼을 꽂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침낭 하나 둘러메고 70m 높이의 굴뚝에 올랐다. 고작 회사와 대화 자리 한번 갖기 위해서. 같은 날, 쌍용차 해고노동자 또 한 분이 생을 마감했다. 26번째 희생자다.
이 참담한 죽음들 앞에 ‘보통 사람들’의 난민 신세는 명함조차 내밀기 힘든 판국이다. 주민 수백 명을 사장으로 모시고 일한다던 서울 압구정동 경비노동자들은 분신한 동료의 죽음까지 겪고서도 모조리 해고됐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시장은 혐오세력 앞에 머리를 조아려 정통성마저 부여해버렸다. 20만 명에 달하는 ‘탈가정 난민’(가출 청소년)은 오늘 밤 어디에서 몸을 뉘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가난한 노인들은 홀로 장례를 준비하는 유서를 쓰고 있다. 의 오 차장은 올해 최고의 ‘썸’을 타며 장그래를 구원하려 모험에 나서지만, 현실의 수많은 ‘장그래’들에게는 위험을 함께 감수해줄 오 차장이 없다. 밑바닥 노동을 전전하는 알바들에겐 화려해진 연말이 더 서럽다. 돌아갈 곳도, 약속을 잡을 친구조차 없는 시설의 장애인들은 원치도 않는 후원 물품을 들고 와서는 사진을 찍어대는 이들의 잦아진 방문에서 겨우 연말 분위기를 느낀다. 그 어디에도 국가의 보호는 존재하지 않았다. 야트막한 위안조차.
국가의 보호는 없다, 야트막한 위안도
이 외롭고 불안한 삶들에 유일한 위안은 운명의 연결됨을 간파한 이들이 내민 연대의 손길이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시민들이 해고자를 위한 노란 봉투를 띄워 보냈고, 전남 진도에서 정신을 놓은 가족들을 보살폈던 이웃들은 이제 안산에서 유가족을 위한 밥을 짓고 마을을 돌본다. 고압 송전탑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경남 밀양의 할매와 할배들은 한뎃잠을 자며 버림받은 노동자들을 껴안으려 나섰다. 국가에 의해 버려진 난민들이 다른 난민을 돌볼 유일한 피난처가 되는 이 강렬한 역설 속에 2014년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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