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간 엄청난 개그다. 땅콩 하나가 보잉기를 돌렸다니, 과학자들도 수식화가 어려워 대충 용어만 만들어놓았다는 나비효과인가, 아니면 활의 아교를 풀어지게 하는 습도까지 고려해 구국의 결단을 했다는 위화도회군인가. 어쨌든 땅콩 하나 때문에 현대 과학의 집결체인 보잉기가 항로를 바꾸고, 자기 돈 내고 탑승했던 몇백 명의 승객은 영문도 모른 채 난생처음 비행기 후진을 체험했다니, 정윤회 스캔들 개그는 냉큼 물렀거라. 하지만 어떤 개그에도 논리가 필요한 법, 한바탕 웃고 난 뒤에 찾아오는 이성이여, 이 개그의 논리적 비밀을 찾아주오.
이 개그의 논리적 비밀
이게 웬 떡. 힌트는 사건 직후 대한항공이 사과문이랍시고 던진 글에 이미 나와 있구나야. “대한항공 전 임원들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첫째 가설은, 조현아가 건강염려증자라는 것이다. 그녀는 땅콩 포장지에 손이 베일 것을 걱정한 게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한 뒤 그 상처는 공기 중에 떠다니던 미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급속히 곪기 시작하고, 비행기를 되돌리려다가 이미 늦음을 발견한 나머지 태평양 한가운데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다가 탑승객 전원이 사망할까봐, 그들의 “안전”을 걱정한 게다. 두 번째 가설은, 조현아가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비밀요원(코드네임 마카다미아)이라 착각하고 있다. 그날은 테러범들이 신개발 폭탄을 챙겼다는 첩보를 입수해 승객으로 잠입근무를 하고 있던 도중, 땅콩 포장지로 감쪽같이 위장된 은박지 폭탄을 보고 놀라서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비행기를 회항시킨 게다. 세 번째 가설은, 그녀가 연예인병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한 기업의 수장이 현장 노동을 체험하는 리얼리티쇼)에 출연 중이다. 그리고 땅콩이 포장지째로 나오자, 매뉴얼까지 챙기는 자신의 철저한 직업정신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연기한 것이다. 탑승객들을 관객으로 착각했다면, 그녀는 자신의 연기력 난조 때문에 상처 입을 탑승객들의 미학적 “안전”을 걱정한 셈이다.
네 번째 가설은, 조현아가 이 비행기의 주인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한항공의 소유주이고(회장님, 사장님 쏘리), 비행기는 대한항공의 소유물이므로, 고로 나는 비행기를 소유한다는 개쩌는 삼단논법. 이 가설에 따른다면, 조현아는 기장의 판단력과 그가 관리해야 할 항로마저 쥐락펴락할 수 있고, 탑승객의 권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 가설은 수령님 가설이다. 수령님이 모든 권력의 주체들을 넘어서 권력 총체를 주무르듯, 조현아는 탐승객들의 권리를 넘어서 항로를 주무를 수 있다. 승객의 “안전”과는 무슨 관계냐고? 수령님이라면야 땅콩 포장지를 뜯다가 짜증이 나서 태평양 한가운데에 비행기 추락 명령을 내릴 수도 있으니, 승객의 안전을 대단히 걱정해주신 셈이긴 하다.
아직 남한 재벌은 행복하다가장 유력한 가설은 단연 네 번째 것이다. 사실 앞의 세 가설은 모두 오류들이 있다. 땅콩 포장지에 손이 베일 확률이 극히 낮고, 은박지로 전기폭탄을 제작하기 위해선 별도의 외장형 배터리가 필요하다. 조현아가 평소 예술과 패션에 관심이 많았기에 연예인병 가설이 유력해 보이지만, 그녀가 원정출산 악플러 3명을 고소한 바 있는 전적을 고려해볼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 진짜 연예인은 그렇게 쪼잔한 짓은 잘 안 하기 때문이다. 반면 네 번째 가설은 “사무장이 없어도 된답니다”라는 당시의 교신 내용과, “임원으로서 문제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이라는 사과문이 상당한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수령님이 내리라면 내리는 것이다. 수령님의 용안 앞에 항공보안법 따위는 꺼져버렷.
종북 레퍼토리의 요새 주인공은 신은미다. 그녀가 북한을 찬양하는 수령님빠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수령님빠는 여기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족벌세습이란 점도 북한을 닮아 있긴 하다. 물론 차이도 있다. 김정은은 사퇴도 못하지만, 조현아는 최소한 사퇴는 할 수 있다. 최소한 도망은 갈 수 있으니, 아직 남한 재벌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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