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엿 드셈

등록 2014-12-09 15:36 수정 2020-05-03 04:27

며칠 전 데모당이 영양댐건설반대공동대책위에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댐 건설을 반대하는 경북 영양군 주민들이 2013년 4~8월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중엔 ‘엿 먹어라. 영양군수, 영양댐, 국토부 잡놈들아!’라고 쓴 현수막도 있었다. 군수를 조롱하고 명예를 훼손한다는 핑계를 대며 군청이 사전 통보도 없이 게시된 현수막 36개를 훔쳐가는 일이 벌어졌다. 새벽에 기습적으로 마을을 돌며 2번에 걸쳐 현수막을 떼어내 트럭에 싣고 도망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데모당이 반말과 욕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현수막을 철거하지 못하도록 존댓말 ‘엿 드셈. 영양군수, 영양댐, 국토부 잡님들아’로 제작한 현수막을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도둑은 멀쩡하고 도둑맞은 사람만 법정에

주민들이 “훔쳐간 현수막을 내놓으라”며 군청으로 2번 달려갔다. 이 과정에서 군청 직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첫 번째는 군청 과장과 부군수가 현수막 훔친 사실을 인정하며 대책위에 현수막 1장당 4만원씩 보상했지만 두 번째는 배째라며 버텼다.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0월29일, 도둑질한 공무원들은 멀쩡한데 항의하러 갔던 농민들만 줄줄이 법정에 끌려가 중형을 선고받았다(죄명도 무시무시한 특수공무집행방해죄, 공동주거침입죄, 일반교통방해죄, 공용물건손상죄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 1명,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1명,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 1명, 벌금 500만원 1명, 벌금 300만원 5명, 벌금 150만원 1명).

영양댐은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 없는 사업으로 판명 났고 환경부조차 댐 건설 장기 계획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영양댐을 계획에서 빼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영양군은 하류 안동댐과 임하댐에 이미 18억t의 물이 있는데도 물을 추가로 확보해 180km나 떨어진 경산에 공급하겠다며 건설 계획을 취소하지 않고 강행했다. 이로써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사향노루, 산양, 수리부엉이, 수달, 담비, 삵, 쉬리 등 천연기념물의 서식이 위협받고 있다.

현재 국제대형댐위원회(ICOLD)에 등록된 우리나라 대형 댐(높이 15m 이상) 수는 1200여 개에 달한다. 댐 개수로 세계 7위, 국토면적당 댐 밀집도는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그야말로 ‘댐왕국’이다. 지구상에 댐을 위해 공기업(한국수자원공사)을 만들어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미국은 기존 댐을 허물기 시작해 1천여 개가 사라졌다.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에선 댐과 같은 인공 구조물을 짓거나 강바닥을 준설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하고 있다. 이런데도 국토교통부는 시대를 역행해 지리산댐, 달산댐, 지천댐, 오대천댐, 피아골댐 등 14개 댐을 추가로 건설하려 한다. 국책연구기관마저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를 내린 댐을 용도까지 바꿔가며 추진하는 이유가 뭘까? ‘토건 마피아’의 효자인 ‘댐 마피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주된 원인이다. 댐을 건설·유지해야 부처를 유지·확산할 수 있는 국가기구와 토건자본, 지방자치단체장, 설계회사, 지주의 탐욕이 주민들의 생존권과 우수한 생태환경을 수몰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향 없는 나라에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고향 없는 나라에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댐 반대를 계속할 것입니다.”(영양군 주민의 최후 변론 중) 평생을 흙을 일구며 살아온 순박한 농민을 범죄자로 내모는 영양군의 댐 건설 계획을 반대한다. 그들의 삶을 수몰시킬 수 없다. 데모당은 지난해 만든 현수막을 다시 보낼 것이다. “엿 드셈, 영양군수, 영양댐, 국토부 잡님들아!”

이은탁 데모당 당수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