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상남도 통영시에 다녀왔다. 통영생협 조합원들이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생활정치를 고민하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처음 통영시에 가보는 거라 하루 일찍 가서 바깥에 많이 알려진 동피랑마을에 들렀다. 원래 통영시의 재개발 정책으로 철거가 예정된 동네였는데 사람들을 불러모아 담과 길에 그림을 그려서 마을이 보존된 지역이다. 허름하고 좁은 골목길에 여러 벽화가 생기면서 관광객이 즐겨 찾는 마을이 되었다. 철거 예정지에서 연간 100만 명이 찾는 관광지로의 변화로 동피랑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2014년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동피랑마을은 대안적인 재개발의 방안으로 얘기되기도 한다.
사는 마을과 보는 마을일요일에 들러서인지 동피랑마을 밑의 중앙시장 주변은 관광버스와 자가용들로 북적거렸다. 먹을거리와 물건을 파는 상점들도 인파로 가득했고 동네가 들썩거렸다. 동쪽 비탈이라는 이름답게 강구안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동피랑마을은 아름다웠다. 벽화를 계속 새로 그리기 때문인지 애니메이션 의 주인공들도 보였고, 예상치 못했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의 벽도 눈에 띄었다.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한 벽화들,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느낄까 궁금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을 만나기는 어려웠고 사람이 사는 듯한 집의 문은 꽁꽁 닫혀 있었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줄지어 골목을 오르는 관광객이 보였고,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마치 창처럼 셀카봉을 치켜들고 사람들이 계단을 재빠르게 이동했다. 마을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동피랑마을의 절경을 즐기는 관광객 사이에 주민들의 자리는 없어 보였다.
물론 주변의 가게에서 먹고 마시는 관광객이 지역경제에 보탬을 줬을 것이다. 자급이 불가능해져서 개발을 쉽게 선택하는 지방의 사정을 고려할 때, 동피랑마을은 분명 새로운 경우의 수를 만들었다. 문제는 마을의 지속 가능성이다. 가을이라 문을 열어놓은 곳이 거의 없었지만 더운 여름이라면 주민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에 주민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마을 어귀와 곳곳에 적힌 ‘쉿!’이라는 그림은 주민들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듯했다. 소리만이 아니라 훑고 지나가는 수많은 시선은 또 어찌해야 할까? 이런 변화를 견디지 못해 마을을 떠난 가구도 여럿 있다고 한다.
그리고 들썩이는 지역경제가 주민들에게도 혜택을 줄까? 동피랑마을로 올라가는 길 곳곳에 자리잡은 가게들은 마을 주민들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2013년 3월에 마을 주민들은 ‘동피랑 사람들’이란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마을 정상에서 점방과 구판장을 운영해 수입을 얻고 있다. 이 협동조합이 마을 일에 쓸 공동자원을 마련하고 있으니 주민들에게 혜택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혜택이 지금의 낡은 집이나 골목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을 모두 대신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협동조합 운영과 관련해 갈등이 있다고도 한다.
매력적인 대안의 분명한 한계하지만 어느 마을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이런 사실만으로 마을의 가능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다만 마을이라 불리는 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손님은 주인과의 관계를 전제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관광객과 다르다. 주인이 손님을 환대하는 만큼 손님도 주인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 도리다. 그런데 동피랑마을에서 관광객은 많이 보였지만 손님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극단적인 예지만 마을 아래의 커피전문점 화장실에 붙은 문구와 번호자물쇠가 그런 관계를 증명하는 듯했다. 이런 관계는 외지인을 마을에 관심을 둔 손님보다 돈을 쓰는 관광객으로만 맞이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관광객으로서 외지인들도 돈을 쓰는 만큼 이곳을 관광지로 향유하게 된다. 마을 곳곳에서 찍은 사진을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기뻐하겠지만 관광지 이상의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 혹시 마을에 다시 재개발이 계획되면 방문했던 사람들이 그 개발에 관심을 가지며 맞서려 할까? 동피랑마을을 돌아본 뒤 자기 동네에서 벌어지는 재개발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대안적인 방법을 찾게 될까?
사실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는 개발을 지역 주민들의 힘만으로 막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마을과 마을의 만남이,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는 관계가 참 소중하다. 그런데 이런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대할 때에만 가능한 변화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고 있을까?
하루 지낸 외지인의 눈으로 마을의 역사를 가늠하는 건 오만한 태도다. 분명 폭력적인 재개발을 다른 방식으로 막아냄으로써 원주민들은 마을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원이 부족한 곳에서 자급자족을 외칠 수는 없기에 외부의 자원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개발 반대와 무조건적 보존을 피해간 마을의 선택은 매력적인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안이 모든 마을에서 통용될 수 있을까?
동피랑마을은 통영시 내에서도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기에 보존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동피랑 주변 마을의 사정은 어떨까? 통영의 다른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동피랑마을은 어떤 느낌일까? 동피랑에서 내려다보이는 한 곳에서는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그 동네에는 지킬 만한 것이 없었을까?
다음에 다시 통영을 찾는다면여러 대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전형적인 토건국가 한국에서 마을의 위치는 계속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통영시가 추진하는 중화항 개발사업이나 경상남도가 추진 중인 남부내륙철도는 그 지역의 마을에 또 어떤 변화를 줄까? 그래서 한 마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마을이 위치한 지역을 보는 눈과 마을 간의 연대도 필요하다.
다음날의 생협 강의는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시작되었다. 경상남도 홍준표 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발언에 뿔난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여하느라 시간이 늦춰졌다. 동피랑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인상에 남았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며 지역 일에 관심을 쏟는 조합원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다음에 또 통영을 찾게 된다면 아마도 풍경보다는 사람 때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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