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못하면 망해야지, 안 그러면 못 깨달아

고려팔만대장경 전산화 매달려온 ‘불교 석학’ 종림 스님
“합의 절차 지키고, 결과에 책임지는 게 좋은 세상 만드는 길”
등록 2014-03-15 16:54 수정 2020-05-03 04:27
탁기형

탁기형

지난 2월27일 중앙승가대에서 명예 박사학위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1992년부터 20년이 넘도록 고려팔만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수행해온 종림 스님(70)의 공덕을 기린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한 뒤 1972년 전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종림 스님은 의 편집장을 지냈습니다. 해인사 도서관장 시절 1만5천여 권에 이르는 대장경 목록을 만드는 것을 시작한 이래 대장경 전산화라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지난해 불교계의 큰 상인 ‘불이상’을 받은 건, 그가 쌓은 업적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습니다. 스님의 관심은 서구 철학뿐만 아니라 뇌과학, 인지과학에까지 미칩니다. 하버마스 같은 서양 철학자나 과학자들과의 대화에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단골 초대손님으로 나선 배경입니다.

송장·초조·금장·재조… 대장경의 계보학 -축하드립니다. 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진행한 지 오래되었지요.

=지난해가 고려대장경연구소 창립 20주년이었지. 처음 시작은 해인사 팔만대장경부터 했는데 그 작업은 2000년에 마쳤어. 해인사 대장경은 재조, 즉 다시 만들었다는 뜻이니 어딘가 남아 있을 초조대장경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해 그 작업도 하게 됐지. 그러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훌쩍 흘렀네.

-초조대장경에 대해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팔만대장경 작업을 시작할 때 초조대장경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몰랐어. 국내를 다 뒤져봐도 300권 정도밖에 안 되었고 남아 있는 양이 워낙 적어 모두 보물급이었거든. 그러다 일본 교토 남선사에 2천 권 이상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본에 머물렀던 시절의 인연 덕에 남선사의 협조를 받을 수 있었어. 국내외 초조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마쳐서 총 3천 권 정도를 모으게 되었는데, 3년 전인 2011년이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지 1천 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서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지. 자연스레 고려대장경의 원본에 해당하는 송나라 판본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동아시아 대장경의 전체 계보를 만들어보자, 이렇게 계획하게 된 것이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대작업이었군요.

=그런 셈이야. 맨 처음 만들어진 대장경은 980년대의 송나라 대장경인데 이것을 보통 송판이라고 부르거든. 그로부터 30년 뒤인 1011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든 것을 초조대장경이라 하고. 송판의 오탈자를 모두 고쳐서 만든 것이라 이게 사실 훨씬 더 정교하지. 이후 금나라도 송판을 근간으로 대장경을 만들었는데, 이건 금장이라고 불러. 결국 송장, 초조, 금장, 재조 대장경 이런 순서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 계보는 이제 명확하게 밝혀진 셈이지.

-그 역사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위치는 어느 정도 되나요.

=불교가 중국에 처음 소개된 게 1세기 무렵이잖아. 이후 불경이 전래되고 한역되면서 그 내용도 조금씩 달라졌지. 이것을 집대성한 대장경들도 비슷한데, 이걸 모두 합해 책으로 만들어낸 것이 일본의 신수대장경이야. 신수대장경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문 불교권, 즉 동아시아 불교권의 기본 텍스트가 해인사 대장경이었으니 그 지위가 굉장했지. 일본은 자체적으로 대장경을 간행하지 못하고 우리 것을 얻어 써왔는데, 100년 전에 우리 것을 기본 골격으로 여러 논서들을 종합해서 책 형태로 만들어 대량생산을 시작해. 그게 신수대장경인데, 그걸 기화로 형세가 역전된 셈이지. 그때부터 동아시아 한역 불교의 기본 텍스트가 신수대장경으로 옮겨갔다고 할 수 있어.

-안타깝네요.

=기본적으로 우리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지.

일본 신수대장경에 넘겨준 정전의 권위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시작함으로써 디지털 시대를 다시 주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과 대만의 인터넷 대장경은 한국의 대장경 소스 코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을 정도라고 하네요.


“무엇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태어나 만들어가는 것, 즉 밥을 먹어서 내 몸을 만들고 책을 읽어 내 생각을 만들어내 그렇게 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세계도 결국 그 구성원들이 만드는 거라 생각해.”


-지금 하고 계신 작업은 어떤 건가요.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약점은 한문권에서 집필된 논서들이 없다는 거야. 보통 속장경이라고 부르는, 요즘 말로 하면 ‘주석서’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빠져 있어. 그 목록만 남아 있거든. 그래서 거기에 기초해서 논서들을 하나둘 찾아내는 작업을 또 시작했지. 목록에는 총 1010부 정도라고 되어 있는데 중국과 일본의 도서관, 서고를 모두 뒤져 모아보니 400종 정도를 찾았어. 이걸 마치면 고려대장경의 최소한의 구색, 즉 짝이 다 맞춰지는 셈이야. 그게 내후년까지 할 사업이지.

-그럼 모두 끝나는 건가요.

=아니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이미 1천 년 이전의 것들에 대한 작업이고 그 이후의 것들을 해야 하는 거지. 지난번 1천 년 기념학회 때 현대 불교 서적까지 포함해서 1천 개 정도 대표적인 것을 모으는 일을 해보자고 했는데, 앞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어.

‘집대성’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이럴 때 쓰는 모양입니다. 20여 년간 동아시아 불교에 관한 거대하고도 체계적인 도서관을 만드는 일을 묵묵히 해온 종림 스님과 연구자들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이 듭니다. 서양의 인문학과 철학에도 남다른 관심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스님이라 내친김에 평소 품고 있던 몇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착하거나 악하거나 또는 그 무엇인가요.

=본성? 타고난 것은 없어. 인간의 욕망에는 다만 그 변조만 있을 뿐이지. 인간이 타고난 욕망에는 진보라는 게 없고, 아니 애초 있을 수가 없어. 다만 역사, 기술 이런 것에는 진보가 있을 수 있지. 역사를 돌이켜볼 때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은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인간의 범주가 확장되는 문제이지. 예를 들어 그리스 시대에는 인간이라는 개념이나 범주가 달랐던 거야. 진정한 인간 그 자체의 발전을 이야기한다면 그 인간다움이 늘어나야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욕망, 즉 탐진치(貪瞋癡·욕심, 성냄, 어리석음)가 존재하는 한 변하지 않는 문제야.

-그럼 개인이나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나요.

=본성으로 이렇다 저렇다 되는 것이 없고, 그 인간이 태어나 주어진 이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무엇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태어나 만들어가는 것, 즉 밥을 먹어서 내 몸을 만들고 책을 읽어 내 생각을 만들어내 그렇게 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 세계도 결국 그 구성원들이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

삶은 선택의 결과, 거기에 책임져야


“토인비의 , 헤겔의 을 예전에 재미나게 읽었어. 들뢰즈의 은 요즘 나온 것 중에는 최고야. 수목(樹木)처럼 체계적인 게 아니라 움직이는 중심인 리좀을 이야기하고 있거든.”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에 따른 결과는 어느 정도인가요.

=인간의 자유의지는 주어진 환경과 순수한 의지의 중간에 허약하게 위치해 있어. 이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본성이니 하나님의 뜻 이런 걸 끌어들이게 되는데, 그런 전제를 깔면 삶이라는 게 그대로 밀려갈 뿐이지. 0.1%건 1%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해.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 나머지 주어진 99%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것인가요.

=굉장히 중요하지. 물론 우리에게는 주어진 역사가 존재하지. 그걸 부정할 수는 없어. 그러나 그것은 그냥 짐일 뿐이야. 역사는 누군가 밀면 미는 대로 치면 치는 대로 흘러가고. 역사 앞에 선 개인이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고 순간순간이 그러하거든. 개인적인 삶은 개인의 노력과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개인이 책임질 수 있어야 해.

내침김에 스님을 붙들고 계속 여쭤봅니다.-좋은 세상이란 어떤 세상을 뜻할까요.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니지. 그런 면에서 공화제가 의미 있는 게 아닌가 해. 구성원들이 제대로 합의할 수 있는 논의 구조를 먼저 갖추어야 해. 만약 합의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어떤 것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게 잘못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 중요한 것은 잘못되었을 경우 받아들인다는 책임 의식이라고. 그런데 다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합의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집착하지.

-현실에서는 합의가 쉽지 않고 힘의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있어요.

=그렇지.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야. 내가 하는 말은 이걸 강조하는 것이야. 이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이 세계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도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이다’라는. 그런데 그 구성원들이 시원찮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드물거나 없게 되고, 뭐 그러면 망하는 거고.

-평소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이나 꿈이 우리 삶을 뒤틀리게 한다고 말씀하였는데, 그런 믿음이 삶의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게 아닌가요.

=기본적으로 죽음 이후 따위에 얽매여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봐. 왜냐하면 지금 내가 하면 되는 건데 그걸 안 하게 만들기 때문이거든. 자기 스스로 여기서 열심히 하면 더 좋아질 텐데 말이지. 결국 엉뚱한 데다 투자하는 것이야. 내세에 지향점을 두고 움직인다는 것은 내가 현재를 충실하게 살지 않고 내 삶을 유예한다는 뜻이지. 그러면 내 삶도 아니고 현실의 삶도 아니게 되지.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현실을 성실히 사는 사람도 많은데요.

=헛된 노력이라고 생각해. 사후에 무엇이 있을 것이라든가, 인간 본성이라든가 이런 것을 전제로 삼아 이야기하는데, 그런 건 없어. 여기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이 세계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해.

-절대적인 옳음은 없는 건가요.

=없어. 자연 자체에는 옳고 그른 것이 하나도 없어.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 속에서 나하고 맞느냐 안 맞느냐에서 옳고 그름이 결정될 뿐. 밖에도 없고 내 안에도 없어. 다만 그 관계 속에서 삐딱한 게 있는 것, 그 차이, 내가 볼 때는 거기서 선악이 결정되는 거지. 여기 있는 것도 아니고, 저기 있는 것도 아니라 그 중간인 관계에서.

과학적 사실이 삶의 의미 주진 않아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과학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줘도 우리가 가진 인생의 목적이라든지, 가슴앓이 이런 것에 답을 줄 수는 없어. 과학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을 다룰 뿐이지. 진실이라는 건 우리가 사는 삶 속에서 가슴과 머리가 포함되어 나오는 개념이기 때문에 거짓말이라도 때로 진실일 수 있어. 때때로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거짓말이 있어. 우리 삶에는 이게 필요해. 우리가 과학적 사실을 안다고 해도 그 사실이 우리한테 삶의 의미를 주지는 않아. 다만 편리하게 해줄 수는 있을 뿐.

-과학 발전에 따라 생명윤리 문제도 제기되고 있어요. 기존의 부모 개념을 벗어난 아이가 태어나거나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 걸까요.

=상관없다고 봐. 다만 책임의 문제가 커질 뿐이지. 생물학적인 부모의 개념이나 내 자식보다는 내 생각, 내 관념을 잘 키워준 후세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이 더 중요해. ‘내 새끼’ 그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내 유전자의 50%밖에 안 돼. 한 세대 더 지나가면 25%, 12.5% 이렇게 더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그건 ‘내’가 아니야.

-서양철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줄로 압니다. 그 특징을 무엇으로 보고 계시나요.

=서양철학에서 중요한 핵심의 하나는 신이라는 개념에 있어. 도덕이든 뭐든 최종적으로 신에 근거를 두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문제 해결도 못하지. 현대 서양철학의 흐름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려는 과정 속에 있다고 봐.

-서양과 서양철학에서 불교를 어떻게 본다고 생각하시나요.

=자기식의 불교를 만들고 있다고 봐.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야. 우리는 불교를 개념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은 실제 자기 삶에서 느끼고 생각해 따져봐도 안 되니까 불교적인, 연기(緣起)적인 생각으로 흐르고 있어. 즉 실험적인 근거들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의 한계에 봉착해서 시작한 것이라서 우리보다 훨씬 생기가 있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줄 알지. 내가 볼 때 그들은 우리 불교와는 다른 불교를 만들어내고 있어.

-다독가로 유명하신데 흥미롭고 좋았던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토인비의 , 헤겔의 을 예전에 재미나게 읽었어. 들뢰즈의 은 최근 나온 것 중에는 최고야. 수목(樹木)처럼 체계적인 게 아니라 움직이는 중심인 리좀을 이야기하고 있어. 하나의 호수를 지나고 또 지나서 끝나지 않는 생각들, 그게 천 개의 고원인데, 각기 다르면서도 어찌 보면 또 하나의 고원이기도 하다는 것이 좋았지. 최근에는 스피노자의 를 재미나게 봤고.

길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스님을 향한 질문은 생태계 파괴나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문제,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로 인한 여러 사회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담담하게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값을 치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고, 결국 인류가 적응해가는 단계에서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가닿으면 바뀌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먼저 그 문제를 깨닫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마구 궁금해집니다.

-세상의 불의에 항거해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

=절대적인 불의라는 것은 없어. 그런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해. 불의는 다만 관계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야. 그러니 관계라는 것, 즉 연기를 제대로 살펴봐야지 무턱대고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이런 식으로 봐서는 안 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거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미리 정해진 길은 없어. 길이라는 것, 삶의 의미나 목적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야.

정연순 변호사,녹취 나해리 인턴기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