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밤이면 아파트 단지를 돌고 또 돌았다. 속으로만 쌓인 분노와 원망을 털어낼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불법 복제된 휴대전화가 자신을 위치추적 했음을 알았다. 노조 결성과 관련된 이들이 똑같이 당했다. 누가 봐도 회사 짓이 뻔했다. 그래서 고소를 했더니 회사는 업무와 전혀 무관한 작업장에 그를 배치했다. 그것도 추운 겨울 컨테이너박스에 혼자 근무시켰다. 부당노동행위로 대표이사를 고소하자 동료들은 ‘사장을 고소한 사람은 식당에 들어올 수 없다’며 점심시간에 식당에도 못 들어가게 했다. 검찰은 위치추적 사건은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선 회사 쪽에 무혐의 결정을 내려주었다. 회사는 물론이거니와 검찰, 노동부 어느 곳 하나 믿을 수 없었다.
삼성을 사랑했던 노동자의 이름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동료들의 태도였다. 그 시절 남자는 내가 회사를 나가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라며 악에 받쳤다. 회사에서 당하면 바로 사회적으로 공개했다. “그쪽에서 한번 치면 나도 한번 때리는 식으로 말이죠. 한번은 회사 간부가 전화한 것을 녹음해 방송으로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죄가 아무리 미워도 못할 짓을 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2년을 싸우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고깃집을 열었는데, 회사는 사람들을 보내 그를 감시했다. 10년이 지난 오늘에야 끔찍한 시절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는 남자의 이름은 강재민, 삼성SDI 수원공장 노동자. 기능직으로 입사해 아직도 입사 사번을 외우는, 삼성을 사랑했던 노동자의 이름이다.
남자는 돈으로 사람을 관리하는 회사가 싫었다. 돈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남자는 삼성SDI 천안공장에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던 핵심 멤버였다. 그와 함께 노조를 준비했다 ‘발각’ 난 동료들은 퇴사하거나 해외사업장으로 전출 됐다. 남자는 10월9일 납치·감금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사라졌다가 11월3일에야 회사로 돌아왔다. 술 한잔 먹자는 회사 주임의 연락을 받고 나가서 한 달 동안 강원도 강릉·정동진·낙산·춘천, 경기도 수원, 충남 아산, 부산, 경남 남해, 전남 광양, 내장산, 서울 등지로 끌려다녔다. ‘납치’한 사람들은 노조 때문에 시끄러우니 남자를 멀리 격리시키라는 회사의 지시에 따랐다고 말했다. 해외사업장이나 다른 계열사로 옮길 것을 강요했다. 남자는 거절했다. 도중에 민주노총이 회사 쪽을 감금 혐의로 고발한 것을 알았다. 충남 천안 변두리의 한 파출소에서 ‘납치·감금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진술을 해주었다. 중간관리자들이 피해 입는 것을 원치 않아서였다. 회사로 복귀하자 바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상사에 대한 폭언과 폭행, 업무방해, 근무지 이탈과 근무태만을 사유로 들었다. 남자는 해고되었다. 해고된 날, 사원증을 반납하고 혼자 마곡사로 갔다. 그리고 끝없는 눈물을 토해냈다. 2000년이었다. 누구도 적으로 돌리지 못하지만 13년째 회사와 싸우고 있는 그의 이름은 김갑수다.
아픔과 고통까지 불가피한 희생인가집안 내력에도 없던 급성 골수성 백혈병(혈액암) 진단을 받았을 때 딸의 나이는 21살이었다. 건강했던 딸이 갑자기 희귀병에 걸리자 아버지는 당황했다. 딸이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오퍼레이터로 일한 지 1년8개월 만이었다. 딸과 같은 공장에서 2인1조로 일했던 동료도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산업재해임을 확신했다. 20대 인구 중 10만 명당 4.2명밖에 걸리지 않는 희귀병인데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공정에서 일한 2명이 백혈병에 걸린 것은 우연일 수 없었다. 그러나 회사는 산재를 인정하는 대신 사표를 요구했다. 치료비 5천만원을 지원해줄 테니 당장 사표를 써달라고 했다. 빈 종이 반을 접어서 딸에게 이름과 주민번호를 쓰라고 했다. 그게 사표였다. 사표를 쓴 뒤 병이 재발한 딸에게 다시 찾아온 회사는 돈 500만원을 던지며 퇴사한 딸과 회사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당신이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도 물었다. 2007년 3월6일, 아버지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뒷좌석에 앉은 어머니 품에서 딸은 숨을 거두었다. 그 뒤 아버지의 삶은 달라졌다. 병의 원인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많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거절당하고 박대당해도 멈추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을 만들었다. 거짓말같이 피해자가 마구 나타났다. 역학조사를 마친 회사는 아버지를 찾아와 “10억쯤 해드릴 테니까 다른 사회단체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도 말고, 아무한테도 (산재)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거절했다. 아버지는 행정소송에서 딸의 병이 산재임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딸과의 약속을 일부만 지켰다고 생각한다. “삼성에 노조만 있었더라면 우리 유미가 그렇게 허망하게 가지는 않았을 거예요”라는 것이 그에게 다시 약속이 되었다. 죽은 딸 유미를 마음에 안고 사는 아버지. 또 다른 유가족 최종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부인 곁에서 삼성 본관 앞을 지키고 있는 그의 이름은 황상기다.
누군가는 삼성 무노조 경영이 일류가 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말하기도 한다. 무노조 경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들을 딛고 섰는지 제대로 듣거나 보지 않는다. 그래서 무노조라는 비인격적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얼굴을 들여다봐야 한다. 김갑수, 강재민, 황유미만이 아니다. 삼성SDI 울산공장 송수근, 삼성에스원 김오근, 삼성코레노 노경진, 삼성전자 박종태, 삼성에버랜드 조장희, 삼성전자서비스 위영일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 삼성코닝 하청업체, 삼성르노자동차, 산재로 만난 삼성에버랜드 이주노동자와 죽어간 사육사. 그들이 당했던 아픔과 고통조차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 가족이 겪고 있는 현재진행형 상처 앞에 삼성의 태도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에서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었다. 비인격적 언어 뒤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 실종된 평범한 사람이었다. 책은 악의 평범성을 언급했다. 과한 비유일지 모르나 삼성에 대해 우리는 때로 아이히만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산재를 은폐하고 무노조를 지키려고 어마어마한 범죄와 반인권적 행태를 지속하는데도 용서한다. 갤럭시S4의 화려한 성능에 감탄하고 삼성의 성공이 한국의 성공이라 등치시킨다. 일류가 되면 모두 용서가 된다는 무의식적 원인을 내재화했다. 삼성이 저지른(저질렀다는 주체조차 삼성 노동자들인) 민주주의 유린과 범죄, 반인권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은 한국 사회가 이런 사실을 집단적으로 묵인하는 것이다.
돈으로 채워질 수 없는 인간다움 위해부적절한 관계의 사내 연애로 해고된 노동자가 찾아왔다. 회사는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자 여성노동자의 기숙사 방과 다이어리를 뒤져보았다고 한다. 그녀는 취조실처럼 생긴 무서운 방에 끌려가 자술서를 쓰고 사직을 강요당했다며 자신에게 닥친 상황의 부조리함을 설명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삼성은 사회의 주요 권력기관과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것도 모자라 정보기관 취조실 같은 어두운 방을 관리하고 노동자의 사생활을 관리한다. 심지어 회사 내 모든 조직, 하물며 계모임과 상조회도 관리한다. 또는 조직하지 못하도록 지시한다. 시장이 권력을 잠식한 국가에서 이제 자유조차 사적 소유가 되었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는 그래서다. 임금과 성과급, 복지로 채워질 수 없는 인간다움을 채우기 위해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시급하다.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와 품위조차 유보당하며 침묵한 대가가 밥줄조차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2차 세계대전 참상에 대한 반성으로 만들어졌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세계인권선언일을 창립기념일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지금까지 벌어진 인권유린과 탈법,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 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왔다. 자본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우리 모두 결국 인간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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