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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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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들의 주거권 투쟁, 쪽방촌에 든 ‘공공’의 볕

서울역 건너 양동 쪽방촌 ‘선이주·후개발’ 이뤄내고 142가구 원룸 입주… 꼼수로 배제된 이들 구제 등 과제 남아
등록 2025-10-30 22:17 수정 2025-11-06 11:31
2021년 12월7일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그랜드센트럴 빌딩에서 열린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책을 공저한 최현숙 작가(맨 왼쪽)와 양동 주민들이 책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재임 제공

2021년 12월7일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그랜드센트럴 빌딩에서 열린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출간 기념 북콘서트에서 책을 공저한 최현숙 작가(맨 왼쪽)와 양동 주민들이 책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재임 제공


 

빌트인 세탁기와 냉장고, 침대 하나가 놓인 원룸. 건조대를 겨우 펼 수 있는 바닥. 평균연령 60~70살의 주민들은 이곳에서 남은 인생을 준비한다. 14㎡(약 4평) 영구임대주택. 서울역 건너 양동 쪽방촌이다.

60~70살 주민들 남은 인생을 담을 4평

볕이 잘 들어 양동이라 불렸지만, 이제는 호텔과 빌딩 그늘에 가려 그 이름이 무색하다. 1980년 남대문로5가에 편입된 이곳은 북창동 중국집에서 숙식하며 일하다 처음 방을 얻은 사람, 서울역 인력시장에 새벽마다 줄 서는 사람, 여인숙을 전전하다 정착한 이들이 서로의 가난에 기대어 살아온 동네다. 양동은 1978년 개발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수십 년간 멈춰 있었다. 다시 불붙은 건 2019년 말. 개발 움직임은 양동이 아닌 인근 후암동에서 시작됐다. 비어 있던 건물이 리모델링되며 창문마다 같은 가구가 나란히 놓였다. 서울시가 양동 주민을 이주시킬 계획으로 만든 원룸이었다.

애초 공원을 만들려던 양동 개발은 상업용 빌딩 건설로 계획이 바뀌었다. 도시정비법상 상업용 빌딩엔 임대주택을 포함할 의무가 없다. 서울시는 쪽방 주민들을 근처로 흩어놓으면 될 존재로 여겼다. 인근 동자동과 후암동의 고시원과 원룸으로 분산 이주시키려 한 것이다. 그 무렵 후암시장 상인들이 “후암동에 쪽방촌이 웬 말이냐”는 손팻말을 들었다.

개발이 피부로 다가온 건 집주인들의 퇴거 통보가 시작되면서였다. 재개발 이익을 위한 사전 퇴거였다. 건물이 하루아침에 낡은 것도 아닌데 어제까지 월세를 받던 집주인들이 안전진단, 업종 변경, 리모델링을 핑계로 주민을 내쫓았다. 공통점은 그 누구도 ‘재개발’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상은 없었고 “두 달간 월세를 받지 않겠다”는 식의 말로 선심 쓰는 척했다.

도시정비법상 재개발 구역의 세입자는 임대주택이나 주거이전비, 이사비 등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세입자가 없으면 그런 조치를 취할 의무도 사라진다. 법의 빈틈을 이용한 폭력이다. 그렇게 2019년 472명이던 양동 주민은 2021년 230명으로 줄었다.

사라진 이가 어디 200여 명뿐일까. 양동의 빛을 가린 빌딩들도 원래는 쪽방이었다. 개발의 역사는 쫓겨남의 역사였다. 과거 양동 쪽방촌의 일부가 연세빌딩으로 바뀔 때도 그랬고, 동자동 쪽방촌이 트윈시티 남산으로 바뀔 때도 그랬다. 반복된 퇴거는 저항보다 체념을 가르쳤다.

“우리가 살 집은 우리가 설계한다”

그럼에도 양동 주민들은 서로를 붙잡았다. “그나마 쪽방에서 주민들과 살 수 있게 됐는데, 개발과 돈놀이에 쫓겨나야 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며 “그저 살고 있는 곳에서 살게 해달라”고 외쳤다. 흩어지지 않게, 지금의 터전 위에 임대주택을 지어달라는 요구였다.

2019년 홈리스행동 등 12개 단체가 참여한 ‘홈리스주거팀’이 실태조사를 했다. 재개발 이후에도 이곳에 살고 싶다는 응답이 83%를 넘었다. 동네가 익숙하고, 이웃이 있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였다. 빈곤의 상징으로 불리는 쪽방이지만, 주민들에게 이곳은 분명히 관계의 공간이었다. 같은 시기 서울시 조사에서도 양동 주민들의 평균 거주 기간은 10년에 달했다. 전국 임차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이 3년 남짓임을 고려하면, 주민은 누구보다 이곳에 정주해온 이들이었다. 그만큼 이들의 주거권이 존중돼야 함은 마땅했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요구하며 싸웠던 주민들은 2021년 조직을 만들었다. 이름은 ‘양동쪽방주민회’. “개발 이후에도 서로 돕고,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다짐으로 시작했다. 주민복지를 맡는 조직위원회, 투쟁을 담당하는 사업위원회, 이웃의 죽음을 함께 배웅하는 장례위원회를 두었다. 거창한 조직도와 달리 일상은 느리게 흘렀다. 전입신고를 못한 이웃의 서류를 대신 써주고, 글을 모르는 이의 수급 신청을 함께 돕고, 누군가 아프면 요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기자회견 날엔 무릎이 아파 서 있지 못한 채, 바닥에 앉아 발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가장 바쁜 건 장례위원회였다. 매해 스무 명 가까이 세상을 떴다. 주민회는 골목에 부고를 붙이고, 공영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떠난 첫 야유회에서 그들은 ‘우리가 살 곳은 우리가 설계한다’라고 직접 만든 펼침막을 내걸었다. 집은 행정이 정해주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이 함께 그려야 할 삶의 형태였다.

오세훈 시장의 자축, 정작 주체는 주민

2021년 여름, 오세훈 서울시장이 폭염 대책 점검차 양동을 찾았다. 주민회는 “폭염이 문제라면, 원인은 열악한 주거에 있다”며 항의했지만 시장은 공연히 골목에 소방수를 뿌리고 돌아설 뿐이었다.

이후에도 주민회는 집회와 문화제를 이어갔다. 2021년 12월, 마침내 개발계획이 변경돼 쪽방 주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182호가 포함됐다. 쪽방 옆 시유지에 기부채납으로 아파트를 짓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설명은 부족했고, 이주를 앞두고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주민회는 역할을 놓지 않았다. 사전 퇴거를 막을 것과 정확한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최저주거기준을 간신히 맞춘 14m² 대신 베란다를 갖춘 넓은 평형을 요구하기도 했다. 임대주택 입주 자격도 문제였다. 정비계획에 따르면 입주 대상은 공람일 3개월 전까지 거주하던 사람, 전입신고가 된 사람, 기초생활수급자, 독립생활이 가능한 사람으로 한정됐다. 현실과 동떨어진 자격들이었다. 민간 시행사가 쪽방 전입신고를 막아 임대주택 입주자격을 박탈하고 있을 때였다. 주민회는 이에 대응하며 독립생활이 어려운 주민에게 입주자격을 부여하고 활동지원과 돌봄서비스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2025년 9월 입주가 시작된 서울시 중구 양동 공공임대주택 외관. 이재임 제공

2025년 9월 입주가 시작된 서울시 중구 양동 공공임대주택 외관. 이재임 제공


 

2025년 9월, 142가구가 임대주택으로 이주했다. 입주식에는 오세훈 시장이 참석했다. 오 시장은 “강제 퇴거 없는 약자와의 동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거 공간으로 민관의 적극적 협력으로 주거취약계층에게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제공한 모델”이라 자축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업은 오 시장 취임 이전부터 추진됐고 공공의 개입을 끌어낸 주체는 주민이었다. 양동의 임대주택은 서울시의 시혜가 아니라 주민들의 투쟁이 만든 결과다. 2019년만 해도 서울시는 이들을 후암동·동자동 고시원으로 흩어놓으려 하지 않았나.

‘모두의 집들이’와 ‘서로 돌봄’의 그날 위해

서울시가 주관한 입주식은 끝났다. 하지만 양동쪽방주민회는 아직 ‘모두의 집들이’를 기다리고 있다. 사전 퇴거로 주소를 옮기거나 전입신고가 되지 않아 입주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이 여전히 주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회와 홈리스주거팀은 이주대책과 입주에서 배제된 이들을 연결하고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동료 주민들에게서 인우보증(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특정 사실에 대해 틀림이 없음을 증명함)을 받아 서울시에 제출했으나 아직 응답이 없다. 주인도 들어오지 않은 집에서 섣불리 집들이할 수는 없다.

주민회는 새로운 고민에 닿아 있다. 쪽방이 아닌 공간에서 어떻게 서로를 돌볼 것인가. 서울시립 쪽방상담소를 통해 지급되던 식권과 사우나 이용권 등의 지원이 중단될 예정이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주민들은 회의를 열고 새롭게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그저 서비스의 수혜자가 아니라, 스스로 생활을 조직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공공’의 의미를 다시 짓는 길 위에 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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