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삼성상회로 출발한 기업가 이병철은 삼성재벌이라는 기업군을 만든 뒤 죽기에 앞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절대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 죽음을 앞두고서 자신이 쌓아온 부나 업보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기업가 이병철은 노동자의 헌법상 기본권인 단결권마저 전면 부정하는 유언을 남겼다. 죽음 앞에서조차 돈벌이에 문제가 되는 노동조합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탐욕스러운 유언이 아닐 수 없다. 그 뒤 삼성그룹과 계열사들은 무노조 경영을 최고의 경영 방침으로 삼아왔다. 삼성은 노조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갖가지 만행을 저질러왔다.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직원들에 대한 납치, 감금, 폭행과 협박, 해외 발령, 미행, 사찰, 도청, 경비용역을 동원한 직접적 폭력,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 복제폰을 이용한 위치정보 수집, 자주적 노조 설립을 저지하기 위한 유령노조(페이퍼 노조) 설립, 꼬투리잡기식 사유를 통한 해고, 일명 ‘대관작업’이라고 불리는 공무원들과의 일상적 유착과 삼성장학생 만들기, 지역협의회와 미래전략실 같은 독립적 노무 담당 조직 운영 등 삼성이 벌여온 노조 설립 방해 행위와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노조 파괴 전문 업체라고 해도 될 만큼 조직적이고 악랄한 것이었다.
그대로 시행된 노조 파괴 전략지난 10월14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서 폭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의 실체가 드러났다. 문건을 통해 세상에 민낯을 드러낸 무노조 경영의 실체는 우수한 기업문화 창달을 통해 노조 없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룹의 전 역량을 동원해 ‘노조 설립 상황이 발생되면 (전 부문 역량을 집중해) 조기에 와해시키고 조기 와해가 안 될 경우 고사시킬 것’을 지시하는 노조 파괴 시나리오 자체였다. 매년 삼성그룹 차원에서 노조 파괴 전략 문건을 만들고 모든 계열사의 고위 임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노조를 조기에 와해시키고 고사시킬 것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삼성그룹은 무노조 경영을 관철하기 위해 문제인력 분류 및 개인정보 수집 관리, 노조 설립시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 사실 채증 지속, 사내건전인력의 확보와 점조직형으로의 운영, 기존 친사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근거로 신규 노조와 단체교섭 거부, 주동자는 해고·정직 등 격리 조치하고 단순 가담자는 지인과 부서장 면담 등을 통해 탈퇴 유도, 고액의 손해배상 및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해 활동을 중단시키고 식물노조로 만든 뒤 노조 해산 유도, 이를 위한 총력대응체제 가동 등 총체적인 노조 파괴를 위한 전략으로 구성돼 있다.
문건에서 열거한 노조 파괴 전략은 삼성에버랜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 과정에서도 그대로 시행되었음이 확인된다. 삼성재벌은 삼성노동조합을 준비하던 삼성에버랜드 노동자들을 미행하고 자택에까지 인사팀 직원들을 파견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던 노동자들에게 진급과 사업 지원 등으로 회유하다가 이것이 여의치 않자 인사팀 직원들을 앞세워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폭행했다. 삼성에버랜드는 임직원들을 동원해 삼성노동조합 노조 간부들이 노조 소식지를 배포하는 것을 수차에 걸쳐 방해하고 근무지임에도 불구하고 출입을 봉쇄했다. 또한 삼성노동조합 설립 직전인 2011년 6월20일 친사 노조를 만들고 같은 달 29일 단체협약을 급조해 삼성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사전에 봉쇄해버렸다. 이어 삼성노동조합 설립 이틀 전인 2011년 7월11일 노조 설립을 주도하던 조장희 부위원장을 업무상 배임 등 여러 사유를 들어 해고했다.
상상을 초월한 경찰의 집회 방해삼성의 무노조 방침에 따라 직원들은 동물농장의 동물들처럼 감시 대상으로 전락하고, 문제인력과 사내건전인력으로 각각 분리돼 직원들 사이의 인간관계도 파괴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삼성 직원들은 회사와 사용자를 향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무권리자가 되고 말았다. 돈 버는 기계처럼 재벌 총수 일가를 위해 이윤을 창출하는 사고만 해야 할 뿐 경영 세습을 위한 범죄행위에도, 부당한 인적 구조조정이나 사업 조정에도, 백혈병을 유발하는 위험한 작업환경에도 결코 비판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 되고 있다.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공권력과 공무원들의 직무를 심각하게 타락시키고 있다. 삼성 본관 앞 집회에 대한 경찰의 방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경찰은 집회 신고 단계에서부터 비좁은 장소로 집회 공간을 제한하고 그 장소마저 통제선을 쳐 집회 참가자들을 분리하고, 통제선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잦은 경고방송으로 집회의 맥을 끊기 일쑤다. 또한 집회 참가자들 바로 앞에 병력들을 세워 장벽을 쌓고, 찬 시멘트 바닥에 깔 은박지 자리조차 빼앗아버리는 등 집회를 보호하기 위한 경찰의 책무는 잊은 채 사소한 위반을 꼬투리 삼아 집회를 방해하고 봉쇄하는 데 모든 경력과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충성스러운 경찰의 집회 봉쇄로 삼성은 사실상 치외법권 지대처럼 보호를 받고 있다. 경찰은 노동3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조직적으로 침해하고 파괴하는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일을 자신의 임무인 양 여기는 심각한 전도 현상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 또한 명백한 위장도급에 대해서조차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주고,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도급제 방식의 임금체계나 노조 설립 및 활동과 관련해 반복되는 노조 파괴와 부당노동행위를 방치함으로써 삼성이 더 노골적으로 위법행위를 자행하고 노동3권을 유린하도록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무원들의 직무가 삼성의 불법행위를 감싸주는 역할로 타락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삼성왕국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문건이 공개된 직후 전 사원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언론에 보도된 자료는 2011년 말 고위 임원들의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바람직한 조직문화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 만든 초안”이고 “그룹은 종업원을 존중하고 아끼는 기업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나갈 것”이라는 해괴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반성하고 사과하기는커녕 노조 와해 및 고사 작전을 ‘종업원을 존중하고 아끼는 바람직한 기업문화’인 양 사원들을 기망하고 있다.
마치 거대한 범죄조직을 연상케 해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법질서를 유린하고 노동자들의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하는 초헌법적 삼성의 불법경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삼성이라는 일개 사기업이 자본의 힘을 믿고 헌법 체계를 능멸하며 파괴하고 있다. 나아가 사내건전인력을 점조직형으로 운영하며 문제인력에 대한 불법사찰과 채증, 조합 활동 방해 행위에 동원함으로써 직원들을 노조 파괴와 인권침해의 협력자, 아니 범죄자로 만들어가고 있다. 삼성그룹은 마치 거대한 범죄조직을 연상케 한다.
권영국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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