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의 서울 강남역은 화려함이 극에 달합니다. 청담동 가는 버스를 탑니다. 버스 안에도, 정류장 광고판에도 거의 빠짐없이 눈길을 붙잡는 게 있습니다. 성형외과 광고입니다. 심지어 정류장 안내방송 뒤에도 성형외과 광고가 흘러나옵니다. 어느 기사를 보니 서울 강남에만 성형외과가 350곳이나 있다고 하네요. 요즘엔 ‘성형’이 졸업 선물이 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어느덧 성형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의사 선생님 한 분을 만나러 갑니다. 라는 책을 쓴 분입니다. 책의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무조건 성형하기보다는 되도록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을 찾으라는, 어쩌면 뻔한(?) 내용인데요, 한국 사회가 왜 이토록 성형 열풍에 휩싸이게 되었는지를 저자인 권용현 선생에게서 들어보려고 합니다. 좀 늦은 시각에 진료실에서 만나 바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존감보다는 자존심 강한 우리들” -한국 사람들 성형 많이 하죠.네. 얼굴 분야는 한국이 압도적인 세계 1위고, 몸은 남미 쪽이 1위예요. 그쪽은 엉덩이나 가슴을 많이 하죠. 지금까지는 신체 노출을 꺼리는 전통이 있어선지 몸보다는 가장 많이 보이는 부위인 얼굴을 주로 했는데, 이제는 다른 신체 부위로 확산돼가는 것 같아요.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요.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한국 사회가 너무 획일화돼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해요. 똑같아지는 것에 사람들이 익숙한 거죠. 심지어 미의 기준에서조차 그렇게 된 거죠. 얼굴도 ‘이게 예쁜 얼굴이야’라고 매체에서 규정해주면 그걸 따라하고 화장도 똑같이 하고, 헤어스타일도 따라해요. 성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얼굴형이 따로 있어요. 이른바 강남에서 유행하는 얼굴이라고 이것저것 다 합해놓은 얼굴이 있어요.
-왜 이렇게 외모를 중시하는지 궁금해요.미의 기준을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것 같아요. 어떤 직업에 맞는 사람을 구할 때 사실 그 일만 잘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굳이 거기에 ‘예뻐야 한다’는 기준을 집어넣는데 모든 분야에서 그래요. 왜 그렇게 외모에 집착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 사회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것 말고도 전반적으로 외모에 대한 오지랖이 넓어요.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 쉽게 말하죠.그냥 지나가면서 “쟤는 왜 저렇게 생겼어?”라고 말하잖아요. 몸이라는 게 굉장히 개인적인 영역이거든요. 그런 표현은 그 영역을 침범하는 건데 큰 거리낌이 없죠. 그 오지랖에 더해 비교하는 습성도 있어요. 항상 경쟁하고 비교당하는 것이 습관처럼 돼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도 쉽게 하죠.
-좋게 말해서 자존심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지기 싫다 이런 거.자존심은 경쟁에서 오는 거고, 자존감은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잖아요. 50명 중에 1등을 한 사람이 제일 자존심이 센 거고, 있는 그대로 가장 만족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강한 거죠. 그런데 우리는 자존심에 더 집착하죠. 차도 남들보다 좋은 걸 타야 하고, 집도 남들보다 좋아야 하고, 결혼하면 옆집 누구는 패물을 뭘 해줬다더라 하면서 비교하고요.
‘자존감’이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닿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자존감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우리 사회의 성형 시장은 외신에 보도가 될 정도로 커져 있고 그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성형 시장이 앞으로도 계속 커질까요.우리 사회 체제가 전반적으로 계속 소비해야 유지되는 사회잖아요. 성형외과도 사람들이 새로운 뭔가를 계속 하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양악수술은 굉장히 위험하고 큰 수술이고, 이전에는 기형을 치료하는 수술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미용 수술이 됐거든요. 일종의 시장 확대 노력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양악수술을 하니까 예뻐졌다는 걸 계속 보여주면서 이걸 하면 예뻐진다는 인식을 계속 심어주는 거죠. 그게 조작은 아니지만 대중의 욕망과 결합하는 거죠.
“다양성 존중하는 방향으로 갈 것”-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환자가 되는 거네요.그렇죠. 지금은 얼굴에서 몸으로 가고 있어요. 점차 몸을 두고 외국인들의 체형과 비교하고, 거기에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개개인의 욕망이 개입하고요. 그래서 평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내 가슴은 너무 작아’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오는 거죠.
-의료와 비의료의 경계도 흐릿해지는 것 같아요.전통적 의료에는 해결해야 할 대상이 있어요. 옛날에는 감기에 걸렸든 뼈가 부러졌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미션이 끝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조금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하고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해결할 문제도 없고 끝도 없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문제는 없어요, 주관적인 문제는 있지만.
-의사의 역할이 바뀌겠네요.사람들이 이미 코수술, 눈수술 같은 것들을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미국 같은 곳에서는 이미 의사가 바뀌고 있어요. 세일즈맨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고 일종의 테크니션(기술자)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이야기를 듣자니 문득 성형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사실 인간에게 신체를 바꾸는 일은 오랫동안 금지돼 있던 영역이었지요. 의료과학이 발달해 신체의 변경이 가능해졌다는 말은 곧 인간이 그만큼 결정적 통제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는 뜻인데, 바로 그 순간 다른 힘에 의해 오히려 자율성과 자존감을 잃게 된다는 건 굉장한 아이러니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통제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이걸 제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죠. 개인이 스스로 통제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남의 욕망을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개인적으로 사람들은 더 높은 차원의 욕망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높은 차원의 욕망이라는 게 뭐죠.에이브러햄 매슬로라는 심리학자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 5단계의 욕구를 갖는데요. 일반적 상태에서 가장 낮은 건 생존욕이고, 제일 높은 건 자아실현과 관련된 거죠. 그 중간 정도에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는데 예뻐지고 싶은 욕망, 즉 성형 욕구도 거기에 해당하죠. 그보다 더 높은 단계로 가려면 남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저는 그쪽으로, 즉 서로 긍정받고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로 갈 거라고 생각해요.
-성형술 자체가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도 포함하나요.그런데 실제로는 성형으로 안 예뻐지고 그냥 ‘성형인’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성형 미인’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을 지구인이 아니라 화성인으로 만드는 게 올바른 일인가 하는 거죠.
“의사는 환자의 자존감 드높여줘야” -진정 어울리는 성형을 찾으라는 말인가요.책을 썼는데, 문자 그대로 성형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사실 성형의사라는 직업은 컨설팅에 가까운 일이거든요. 컨설팅을 하면서 그 사람에게 좋은 방법이 있는지 찾아주는 거죠. 성형을 원하는 고객들의 목적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만족도와는 조금 다른가요.네. 관점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기존의 자기 모습을 다 부정하고 시작하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되 좀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르거든요. 후자라고 보는 거죠. 자존감이 충족돼 있으면 남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쓰잖아요. 자존감이 떨어지니까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 건데, 의사는 그 자존감을 드높여주는 쪽으로 도와줘야 해요.
-실제 찾아온 환자를 돌려보내기도 하나요.얼굴살을 빼고 싶다고 오신 분이 있었는데 살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거울을 보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고 돌려보냈죠. 생각해보니까 정상인데도 자신이 못생겼다고 여기는 ‘추형장애’가 있는 분 같더라고요. 정신질환의 일종이죠.
책을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궁금해요.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가요.미인의 요소라는 게 피부나 대칭미 말고도 감정적 요소가 있거든요. 사람들에게 긍정적 감정을 전달해주는 게 중요해요. 살아 있는 표정, 풍부한 표정을 가진 얼굴이 좋죠.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들은 표정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것을 훈련하잖아요. 그리고 사실 그렇게 즐거울 일도 별로 없죠. 나라가 이 모양인데. (웃음)
-특히 남성들이 그래요.여성보다 남성이 즐거운 감정도 슬픈 감정도 표현을 못하도록 더 훈련받으니까요. 그래서 어색한 표정을 많이 짓고 웃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가리려 해요. 원래 웃으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자연스럽고 예쁜데, 자세히 보면 웃으면서도 입꼬리가 내려가요. 활짝 웃으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으니까 웃으면서 눈치를 보는 거죠.
-웃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죠.배우 안성기씨요. 주름이 많지만 그 주름이 정말 멋있어요.
-안성기씨 말고는?이효리씨요. 예쁜 여배우들이 많죠. 그리고 다들 예쁘게 웃으려고 하잖아요, 즐겁게 웃는 게 아니라. 그런데 이효리씨는 즐겁게 웃어요.
“자기에 대해 아는 게 제일 중요”예쁘게 웃으려 하지 말고 즐겁게 웃어라. 마음을 울리는 말입니다.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아름다워지는 구체적인 방법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표정은 당연히 감정에 많은 영향을 받아요. 내가 오늘 좋아 보이는 것도 감정 때문이고 싫은 것도 감정 때문이죠. 그러니까 늘 즐겁게 웃으면 아름다워지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은 때가 많죠. 그럴 때 자기가 갖고 있는 부정적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추적하는 거예요. 몸이 아프고 기분이 안 좋다, 왜 그럴까. 나는 왜 경쟁에 밀린 걸 갖고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추구하는 게 이런 것인가. 이런 식으로 파고드는 질문들이 있어요. 그렇게 하나씩 해소하면서 찾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그 감정의 진폭이 줄어들면서 표정이 편안해지는 거죠. 구체적으로는 신체의 혈 자리를 두드리면서 부정적 감정을 줄이는 요법(EFT·Emotional Freedom Techniques)이 있어요.
-음… 그렇게 어려운 것 말고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할 수 있는 일로요. (웃음)거울을 볼 때 너무 집중해서 한 부분씩 따로 보지 말고 전체를 봐야 해요. 누구라도 눈만 들여다보면 자기 눈이 이상하게 느껴지거든요. 전체를 봤을 때 뭔가 자신에 대한 느낌이 오죠. 그걸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요. 그런데 모든 단어에는 양면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 다들 동안이 좋다 하지만 어려 보인다는 건 어떻게 보면 미숙해 보인다는 것일 수도 있고, 섹시해 보인다는 건 좋은 말 같지만 기가 세 보인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죠. 자신이 받은 느낌을 표현한 단어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으세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손바닥을 비벼서 얼굴을 마찰하는 것도 좋아요.
권용현 선생은 의사인 아버지와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미술에 재능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연히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가 의과대학에 들어가서야 다른 삶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문신을 배워 문신예술을 하고자 했으나 가족의 반대와 화해 과정 속에서 비수술 성형(시술)의 영역을 택했다고 합니다. 대화 속에서 예술에 대한 애정과 사람에 대한 지극히 낙관적인 태도를 읽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18세기 인간형, 계몽주의가 가져다준 합리적이고 자치가 가능한 인간을 상정하고 있는데, 성형 영역에서의 인간이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현장에서 목격한 현대인이란 어떻다고 한마디로 할 수 있을까요.자신의 욕망을 필요로 합리화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러면 항상 ‘만족’이라는 게 없다는 문제가 있어요.그렇죠. 이 세계가 반드시 한계가 있고 모든 사람이 욕망을 다 실현하고 누릴 수 있는 구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어디선가 조정이 되겠죠. 예를 들어 지금의 경제체제하에서 사회적 기업들이 확산되는 건 그런 쪽이라고 생각해요. 욕망을 줄이기보다는 욕망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쪽으로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는 인간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웃음)
-이런 시대를 주체적으로 산다는 게 참 어려운 일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자기에 대해 아는 게 제일 중요하죠. 저는 삶이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욕망에 대해 솔직해지는 게 주체적으로 가는 길인 것 같아요. 욕망이 단지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거죠, 필요가 아니라.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2시간이 넘는 대화를 마쳤지만 거리에 나서는 제 머릿속이 아직도 알쏭달쏭합니다. 아름다워지려는 욕망은 아마도 끝이 없을 듯한데, 미의 기준을 두고 차고 넘치는 대화와 상술, 매스미디어의 범람에 대해서는 결코 경계심이 풀어지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갖고 싶거나 이루고 싶다는 것은 사실 타인의 욕망에 기초해 있고 결국 끝없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함으로써 주체성을 상실하는 게 인간이 아닐까요. 권용현 선생의 신념대로 우리는 다양성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될까요. 아니면 더욱 값싸진 성형술의 대가로 서로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까요. 미래 세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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