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헌책방을 운영하던 지인이 영업을 접었다. 아기자기 공들인 사업이었던 터라 나도 덩달아 심란했다. 하지만 점포를 비워야 했기에 켜켜이 쌓인 책들을 빼내는 일에 손을 보탰다. 낡은 책들이라 얕본 게 화였는지 일을 시작하자마자 종이에 금세 손을 베고 말았다. 세월이 흘렀어도 날이 선 종이에 베인 상처는 깊고 아렸다. 어릴 적 억새풀을 갖고 놀다 베였을 때도 그랬다. 이렇듯 부드러운 존재가 입히는 상처는 더 쓰리다. ‘문화’라는 것도 그렇다.
부드러움이 입히는 상처가 더 쓰리다문화는 사전적으로야 인간의 모든 행동양식을 뜻한다지만 대개 무언가 고상하고 한가로운 행위를 지칭하곤 한다. 노동과 분리되면서 하나의 소비재로, 산업으로 변화된 것도 사실이다. 홈리스에게 문화는 어떤 의미, 어떤 존재일까? 비단 10월이 ‘문화의 달’이라서 갖는 의문은 아니다. 요즘 들어 홈리스를 둘러싼 상황이, 문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불편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로 ‘문화융성’이라는 기치를 걸었다. 지난 7월에는 ‘문화융성위원회’를 구성했고, 향후 ‘자율·상생·융합’을 실현하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실현된다면 더없이 반가울 것만 같다. 무엇보다 ‘생활밀착형’ 문화라면, 문화산업만 비대해지는 게 아니라 지급 능력이 없거나 현저히 떨어지는 홈리스 같은 이들도 생활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다면 말이다. 하나, 현실은 정반대다. 과거 홈리스행동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거리 홈리스 중 취미나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전체의 42%에 불과했다. 더욱이 그들 중 문화 행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경우는 25%에 불과했다. 삶이 곧 전투인 노숙 상황에서 문화라는 고상한 것이 자리잡을 수 없었던 거다. 그러나 거리에 터를 둔 홈리스라고 하더라도 일상의 매 순간을 긴장하며 견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생을 이어온 빈곤, 사업 실패, 정리해고, 이혼 그리고 작금의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막막함…. 이런 상흔들로부터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 돌릴 곳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안전한 도피처를 찾기는 어렵다. 영화? 콘서트? 옅은 지급 능력으로 접근 가능한 문화상품은 기껏해야 소주 한 병, 경마장 입장료 따위에 불과하다. 중독과 사행을 논하기 전에 홈리스의 절망을 들여다보고 그들에게 허락된 공공재로서의 문화가 준비돼 있는지부터 생각해볼 일이다.
사극 시청권마저 뺏긴 서울역 홈리스들홈리스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많지 않다. 무가지나 몇몇 지하철역사에 설치된 컴퓨터 따위가 고작이다. 그중 철도역사에 설치된 TV는 꽤나 유용한 도구다. 리모컨 조작을 할 수는 없지만 TV마다 방영되는 방송이 다르기에 발품을 팔면 원하는 방송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9월26일 MBC 프로그램을 내보내던 서울역 대합실 3층의 TV가 열차 도착 안내 문자방송으로 바뀌어버렸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하겠지만, 저녁 시간에 유행하는 사극을 보는 것을 영화 감상만큼의 낙으로 삼던 홈리스들에겐 일대 사건이었다. 50대의 한 홈리스는 “통탄스럽다”고 할 만큼 서운한 일이었다. 철도공사 서울역의 속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홈리스들은 사극 때문에 TV 주위로 홈리스가 몰리니 서울역 쪽이 돌연 안내방송으로 바꾼 것이라 진단하고 있다. 물론 그전에도 TV 시청이 허락된 건 아니었다. TV 주위의 벤치는 일찌감치 치워져 젓가락처럼 서서 TV를 봐야 했다. 그나마도 홈리스들이 TV를 보고 있으면 직원이나 특수경비용역이 나타나 열차를 탈 건지 확인하고 내보내곤 했다. TV는커녕 대합실 출입조차 거절당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용모나 행색의 문제가 아니다. 근무자들에게 얼굴이 알려지는 순간, ‘노숙자’로 판명되는 순간 서울역 출입은 어려워진다. ‘문화역서울 284’로 개명한 옛 서울역사에서는 문화의 달을 맞아 갖가지 행사가 벌어졌다. 그러나 이곳 역시 홈리스를 금기시하는 건 마찬가지다. 실종된 서울역 문화방송, 접근 금지를 알리는 화분으로 둘러싼 문화역서울 284, 홈리스들에게 생활밀착형 문화란 여전히 신기루다.
서울시, 빅이슈코리아, 주거복지재단 등의 공동 주최로 ‘민들레문학상 공모대회’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설과 거리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들이 글을 쓰고 이들 중 우수작을 선발해 내달 초 ‘민들레문학상’을 수여하겠다는 것이다. 첫 단계로 서울시는 민들레 문학특강 프로그램을 시설들에 위탁해 진행했다. 그 뒤 특강 수강생들의 글이 후보작으로 출품됐고, 빅이슈코리아를 중심으로 주거복지재단, 문화예술위원회 등의 기관들은 선정 등 실무를 진행했다. 일정에 의하면 현재 수상작이 선정된 상태다. 주최 쪽은 이 행사의 목적을 “노숙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도모”하기 위함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인식을 개선해야 할 것은 일련의 주최들로 보인다.
결정적 문제는 민들레문학상이 임대주택과 보증금 50만원을 부상으로 걸었다는 데 있다. 뭐가 문제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엄청난 공모사업임이 틀림없다. 너나 할 것 없이 집 몸살을 앓는 이때, ‘집’을 상품으로 걸 실력을 갖춘 문학 공모전이니 말이다. 그것도 보증금은 시민모금으로, 집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매입임대주택을 활용하니 푼돈 말고는 돈 들일 일도 없다. 비아냥은 이쯤하고 한번 따져보자. 이 기관들 중 매입임대주택을 부상으로 걸 자격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서울시? 착한 기업 빅이슈코리아? 아니면 매입임대주택 운영 실무를 담당하는 주거복지재단?
글 재주 부려 새치기하라는 공모전이들이 제공하겠다는 매입임대주택은 국토교통부 소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에 따른 주택으로, 쪽방·고시원·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의 몫이다. 문학에 소질이 있든 없든, 한글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해당 지침이 정한 배점 기준에 따라 공급돼야 하는 주택인 것이다. 또한 이것은 홈리스의 주거권을 최초로 정책화한, 그러기까지 수많은 홈리스 당사자들과 단체들의 수고가 투여된 주택이기도 하다. 국토부 계획의 절반 남짓한 물량만이 공급되는, 10년 만기 퇴거자에 대한 대책도 없는 상처투성이 정책이기도 하다. 노숙의 아픔을 토해내듯 글을 썼을 수상자에게, 글을 잘 썼다는 이유로 다른 홈리스 동료들을 새치기하게 하는 것은 ‘민들레’에게도, ‘문학’에게도 미안한 일 아닌가?
‘문화’ 때문에 심란했던 10월이 지나간다. 11월은 다를까? 11월 첫날, 서울역 인도육교가 철거된다. 그곳에 의탁했던 10명 남짓한 거리 홈리스들도 함께 철거된다. 11월은 무슨 달이 될까? 무엇 때문에 아팠던 11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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