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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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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전복 아이템을 제안드리노니

등록 2013-10-12 17:47 수정 2020-05-03 04:27

얼마 전 국가 전복 기도 혐의로 현역 의원이 구속되는 사건이 뉴스 시장을 석권했더랬다. 평소 그런 ‘카인드 오브 뉴스’를 즐겨 수집하는 필자는 그 진위를 떠나, 이 뉴스의 진부함과 식상함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하여 필자는 유관 기관들의 대오각성과 일대 분발을 촉구하며, 책임 있는 애호가의 일원으로서 국가 전복 기도 음모 아이템 하나 제안드리는 바다.

세계에서 가장 만만한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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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현재 자녀를 가질까 말까 고민하는 무자녀 가정 및 예비부부 제위여, 절대로 자녀를 가지지 마시라. 그리하여 이 나라의 출산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까지 끌어내리시라.

자, 내란음모에 좀더 상세히 예비해보자. 이 나라에는 자녀를 가지면 빡세게 고생하는 유자식 개고생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비돼 있다. 그 시스템은 심지어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작동하는데, 예컨대 ‘당신의 소중한 아기에게 초음파 촬영 따위로는 잡아낼 수 없는 각종 에브리 기형과 이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항시 존재하는데, 그거 알아보는 데 저희 검사만큼 좋은 게 없지만, 그 검사가 또 100% 정확도까지 보장하는 건 아니어서, 거기에 100 정도만 더 얹으시면 99.9% 확실한 검사를 받으실 수도 있고…’ 등등의 우려를 사칭한 겁주기가 갖가지 루트를 통해 흘러들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모르는 거 많고 걱정 많은 예비부모들은 별의별 생각이 든다.

아이가 나오면 부모는 더욱 만만해진다. 아이를 낳자마자 병원에서는 팸플릿 하나 쥐어주는데, 여기에는 또다시 신생아에게 생길 수 있는 무슨무슨 병 등 별의별 희한한 이상 증상이 줄줄이 나열돼 있고, 그걸 진단하는 검사를 안 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사망하고 어떻게 영구장애를 입게 되었는지 등 에피소드들이 충실히 실려 있다. 방금 전 태어난 아기 얼굴을 본 부모, 즉 세계에서 가장 만만한 봉들 중 이런 검사를 거부할 강심장은 없다. 참고로, 앞에 말한 검사들은 모두 의료보험에서 제외된다.

대충 이런 식이다. 아기를 낳으면 나라에서 집어준다는 십 몇만원이야 안 주는 것보다야 땡큐라지만, 요즘 분윳값·기저귀값 생각하면 장난하나 싶은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거기에 자녀 보육에 세금 쓰면 국가재정이 파탄 난다느니, 무상보육 같은 건 종북좌빨들의 공산당적 획책이라느니 별의별 밭다리 걸어대는 세력들은, 멀쩡하게 잘 있는 강 파고 땅 뒤집고 호화 유리빌딩 올리는 데 세금 펑펑 갖다 쓰는 판에다, 그 주모자들의 대개는 분윳값 따위는 동전지갑에도 안 넣고 다닐 만큼의 재산을 꼬불쳐서는 자기 자녀들을 바다 건너 아메리카국 독수리로 보육하는 경우가 태반이니, 됐다, 무상보육 그딴 거 더러워서 안 받고 말지, 싶은 생각이 안 들려야 안 들 수 없는 것이다.

‘무자식 어버이 연합’을 기다려라

물론 자녀의 탄생이 주는 기쁨과 행복이야 세상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아이를 낳아야 아는 거지, 안 낳으면 아예 알 수도 없다. 이 나라에서 그런 건 그냥 모르고 지내는 편이 상팔자다. 결정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양육에 드는 노력과 시간과 비용 모두 그대로 굳는다. 탐욕의 사교육 업자들과 사학재단에 피 빨릴 일도 없다. 그러니 부디 그 돈으로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시라.

쓸쓸한 노후가 걱정된다고? 걱정 마시라. 현 추세의 기발함으로 미뤄볼 때 필시 20년 안에는 ‘무자식 어버이 연합’ 같은 단체도 결성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고 나니, 이 음모의 결정적 하자가 보인다. 아무래도 이 나라는 그리 간단히 망할 것 같지 않다. 맞다. 불철주야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국가 전복 세력 박멸에 일로매진하시는 각종 어버이 결사들의 존재와 파워를, 필자, 간과했다. 죄송하다. 그분들께서 온몸 던져 이 조국 끝까지 수호해주실 것이다. 제아무리 인구 줄고 평균연령 높아진 최고령 조국이라도.

한동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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